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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폐허들 II
글 / 쉐마미술관 큐레이터 한영애
<원형의 폐허들>은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의 거대한 시류 속에서 자신만의 독창적 세계관을 만들어 나가는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로 기획되었다. 미술사와 하위문화, 신화, 철학 등의 자양분을 믹스된 형태로 받아들인 작가들은 각자의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데 그것이 마치 장르 소설가 같기도 하고 신화를 재창조하는 음유시인 같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세계에 갇혀 자신만의 세계 속에 살아가며 어쩌면 너드한 이미지를 풍긴다.
이번 전시는 자신만의 서사적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에 주목하였다. 그것이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그러한 서사성이 지금의 시대에 가져다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사가 배제된 모더니즘의 세계에 반하여 작금의 시대에는 유사 신화적 하위문화가 지지를 받으며 열광 받고 있다. 디즈니의 마블시리즈나 패션, 심지어 미술작가의 서사까지도 콘텐츠로 이용되는 시대에 서사의 힘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어쩌면 반모더니즘적인 자신의 서사적 세계를 자신감 있게 만들어 가는 작가들을 선정하고 주목하려 한다.
전시 제목인 <원형의 폐허들>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 작품에 나오는 단편이다. 그곳에는 어느 알 수 없는 남자가 꿈을 꾸고 꿈속에서 자신의 아들을 열망하고 만들게 된다. 원형의 폐허 속에 머물고 있던 남자는 알 수 없는 신의 힘을 받아 아들(꿈)을 실체화하게 되며 후에 그 아들이 자신은 꿈속에서 탄생한 환영이라는 사실을 잊게 하기 위해 망각하게 한다. 그러나 종국에는 자신 역시 그러한 꿈속의 자식(환영)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단순한 스토리의 나열로서는 그 풍성한 이미지와 꿈의 개념과 컨셉을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꿈이란 열망과 환영, 실제가 뒤섞여 있다. 어쩌면 그(마법사)는 꿈을 꾸는 존재, 꿈을 꾸어 세계를 만들어 내는 존재, 알 수 없는 신, 그 자체가 환영인 존재, 물리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예술가가 아니었을까?
예술가들은 종종 자신의 열망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흙을 빚는다. 어설픈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고 그것에 대한 꿈을 꾸고 그들이 살아갈 터전을 꿈꾸며 만들어 간다. 예술의 원형에는 이러한 꿈과 환영에 대한 물리적 실험이 존재했으리라 생각한다.
새롭게 부수어야 할 시대정신이 사라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서 이러한 원형에 가까운 창조의 핵심은 어쩌면 꿈과 열망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시대는 과연 어떤 것을 꿈꾸고 물질적으로 실험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 이번 기획의 목표이다.
알 수 없는 상징과 물질의 단서들, 혹은 형상들의 단서들로 다시 꿈을 꾸길 반복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예술가들은 과연 어떤 세계를 만들고 있으며 각각의 원형의 폐허들(작가들의 세계)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혹은 연결되지 않은 독립적 대륙으로 남게 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쉐마미술관은 이러한 관점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혹은 꿈을 꾸는 실험을 하는 작가들 원형의 폐허들1부에서는 손희민, 이재석, 이환희, 정성진 작가를 통해 그들의 세계를 엿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