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한국 미술계에는 이전 시대의 민중미술이나 극사실주의와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를 달리하는 신세대 구상미술 작가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 작가들은 대부분 민주화 항쟁의 잔재가 남아있던 시기에 미술대학을 다녔지만, 2000년대 참여정부 시기의 대안공간이나 신진작가 지원제도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일상적 자리였던 서울에서 본 풍경과 인물을 그렸고, 디지털카메라가 상용화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사진을 활용하면서도 회화 작가로서의 뚜렷한 자의식을 가지고 그리기를 모색했다는 공통된 특성을 지닌다.
본 전시에서는 9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사진과 그림 사이에서 그리기를 시도했던 2000년대 한국 구상미술의 경향을 조명한다. 이 작가들은 현실을 보고 있지만 카메라를 통해 관찰자적 시선을 견지하면서, 민중미술이 투신했던 치열한 현장으로부터 심리적 거리를 확보했다. 집단적 서사에서 벗어나 현실을 회화적 장면으로 변환하기 위해 카메라의 시선을 활용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극사실주의와 달리 사진적 리얼리티를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사진을 회화를 위한 스케치처럼 사용하며 회화성을 모색했고, 그 결과 그들이 현실에서 제각기 체감한 개별적 정서가 투영된 회화적 시공간을 창조했다.
‘서울 오후 3시’는 이 전시 참여 작가들이 현실에 대해 취한 태도를 상정한 제목이다. 오후 3시는 현실 안에 여전히 있으면서도 그로부터 벗어나 다른 곳을 향하고 싶어지는, 오전의 계획과 규범과 생산성으로부터 멀어지는 시간대이다. 영문 제목으로 덧붙인 ‘cloudy’는 이들의 그림 속에 스며있는 미세한 정서를 지시한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미진한 정서는 아직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를 시대적 변화에 대한 중립적 관점에 기반하며, 민주화 투쟁 세대에 대한 부채감. 여전히 잔재하는 긴장과 불안, 향수, 혹은 새롭게 시작되는 희망과 개인적 공간 속에서의 상상을 결코 과잉되지 않은 상태로 포괄한다. 그것이 바로 2000년대에 이들이 감각한 현실의 기후이자, 그들이 일상에서 그림의 대상을 발견하고 작업실에서의 시간을 투영하여 조형해 낸 이미지의 온도일 것이다.
이은주 (독립기획자, 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