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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한국화전

  • 전시기간

    2005-08-24 ~ 2005-08-30

  • 참여작가

    이상희

  • 전시 장소

    토포하우스

  • 문의처

    02-734-7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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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숨결을 그리다


박영택│미술평론, 경기대교수


세밀한 연필소묘로 재현된 식물의 한 편린을 확대해서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식물채집을 통해 공들여 표본을 만들고 점차 수분이 증발되면서 마르고 까실한 생명체의 미라로 결정되고 있는 과정을 대하고 있다는 인상, 혹은 단서처럼 주어진 실루엣이나 부분을 통해 실재 자연풍경을 소요하거나 체험하는 듯한 환각 같은 것들이 멀미처럼 일어서는 것은 그 뒤를 잇는 감정이었다. 제목은 ‘숨결’이다. 숨, 숨결이란 자연을 대하는 상당수 작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제목이자 주제다. 자연이란 대상, 사물을 망막으로 확인하고 그려내기 보다는 그 너머에 자리한 맥박, 숨소리, 세포들의 부산한 생명활동까지도 보고 싶다거나 느끼고 싶다는, 그런 것을 그리고자 하는 바람의 선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몸의 모든 감각을 호출한다. 그러기에 식물을 근거리에서 확대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그 존재 자체만을 전면적으로 독대시켰을 것이다. 또는 대를 보듬고 쓰다듬듯이 그리거나 그 숲 안으로 걸어 들어가거나 하늘을 쳐다보는 시선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결국 작가가 그린 것은 특정 자연대상, 사물을 빌어 그 생명체의 은밀한 숨결을 가시화하고자 한 것이고 관자들에게는 작가 자신의 체험을 공유케 하려는 배려이다.




보는 이들이 눈앞에는 특정한 대상, 분류와 배제에 따라 편의적으로 네이밍(naming) 된 식물이 아니라 보편적인 생명체로서의 식물이미지가 주어졌다. 그것이 배추나 파, 대나무나 소나무거나 이름모를 꽃인들 별 상관은 없어 보인다. 이 작가는 주변에 산재한 자연/생명체들을 찬찬히 살피고 그 생김새와 구조, 질감과 조직 등에 경이로운 눈길을 주었다. 그곳에 완벽한 조형의 세계가 응축되어있다. 아울러 기이하고 신비스런 생명의 외경도 놓여있다. 또한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영원한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인간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없다. 자연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좋은 작가란 자연계에 내재한 그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해주는 존재,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그 사람에 의해서만 발견되고 드러나 그렇게 구현된 이미지를 실현시키는 자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작가는 자연계의 여러 형상과 조직, 질감을 마른 붓끝에 묻힌 먹으로 촘촘히 찍어가면서 화면에 올려놓았다. 종이의 단면과 붓의 수직으로 만나 이룬 궤적이다. 마치 점선들이 도열해있듯, 세포들의 자취를 따라가듯, 생명의 호흡을 음표로 번안하듯 말이다. 그것은 그러니까 대나무나 대숲의 재현이나 추상화와도 다른 그림이다. 점이 선이 되고 점들이 모여 형상을 이루고 그러면서 다시 그 모든 형상은 낱개의 점으로 흩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보는 이들의 눈은 형태에 가닿다가 이내 무로, 여백으로 마구 쏠려간다. 그것은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오랜 노동과 시간을 축적(자연의 숨결을 헤아리고 받아들이고 기록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느림)하고 있는 이 점/선은 동양화 모필의 전형적인 쓰임을 의도적으로 물리친다. 붓끝이 지면에 닿아 이루는 가장 최소한의 영역이 그대로 선/점이 되고 형상을 이뤄간다. 그래서 먹과 붓의 또 다른 독특한 효과가 나온다. 기존의 먹의 쓰임과는 조금 다른 먹 맛 또한 보여준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연필이나 판화, 혹은 인쇄된 듯한 효과를 내면서 흑색의 또 다른 묘미를 드러낸다. 덧붙여 다소 건삽한 이 먹색이 정서적인 뉘앙스(쓸쓸하고 아련한 그런 느낌)역시 부풀려준다



그런가하면 여기에는 모든 생명체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음에 대한 은유가 얹혀져 있다. 나무의 일부분을 정교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가 온전한 형태를 보여주기를 그치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그런 예다.
결국 작가는 우리에게 새삼 자연을 보는 눈을 가르쳐준다. 그것은 외피에 머물지 않고 생명현상의 근원을 헤아려보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보고 듣고 간직해야 할 것에 대한 것들이다. 이미지를 넘어선 이미지의 세계! 그림은 그림에 불과하지만 그림을 빌어 보이지 않는 세계, 눈으로 볼 수 없고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세계에 가닿게 하고자 한 것이 결국 동양화의 세계였을 것이다.
대숲에서 하늘을 본 체험, 대나무 밭에서 댓잎들의 수런대는 소리와 아득한 지층 아래서 끌어올리는 수액의 박동, 무럭 거리는 세포들의 약진에 귀기울여보라는 권유다. 대나무 사이로 안개처럼 머물다 사라지는 바람도 느껴보고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봤을 때 현기증과 함께 하는 덮치는 하늘색상의 변화도 만나보라는 것 같다. 그러니까 대숲에서 노닐던 기억을 떠올려보게 하고 대숲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을 한 번 쐬라는 표현이다.




근작은 이전 작업에 비해 자연계에서 받은 감동과 느낌이 보다 고양되어 있다. 형상에서 좀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인지 그림이 무척 ‘심플’해졌다. 여백의 활용도 과감해져서 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은 부분과의 긴장이 극화되어 있다. 다만 자연에서 받은 감흥과 느낌이 너무 앞서다보면 그것은 이미지의 영역을 훌쩍 벗어나게 된다. 자칫 관념적으로 그림이 되면서 자신이 내밀한 체험을 선가적으로 던져놓을 때 소통은 불가피하게 약화될 수 있거나 감정의 고양이 너무 누수되면 그림은 속되기 쉽다. 그런 아쉬움을 피해나간다면 자연을 바라보고 이해해보고자 하는 이 깊은 시선은 동양화의 재료체험이나 주제의식을 또 다른 차원에서 고양시키는 의미 있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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