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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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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미술관 기획초대전
관조의 세계와 표현의 깊이
신금례의 작품세계


오광수│미술평론가


신금례의 첫 개인전(72년) 팜플렛에 화병에 꽂힌 꽃을 모티프로 한 정물화가 표제로 실려 있다. 작품의 목록은 <해바라기>, <사루비아>, <시쿠라멘>, <목단>, <국화>, <펜지>, <창포>, <들국화> 등을 위시한 꽃을 소재로 한 명제가 단연 가장 많은 분포를 차지하고 있다. <화실에서>, <바위>, <봄 풍경>, <가을 풍경> 등 풍경화가 이 사이에 가끔 끼어들고 있을 뿐이다. 첫 개인전 작품 목록과 99년 개인전에 나온 <민들레>, <엉겅퀴>, <할미꽃>, <호박꽃>, <봉숭아>등의 소재들과 비교해보면 그의 대상에 대한 관심은 별로 바뀌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올 해 한국구상대제전에 나온 <4월>, <엉겅퀴>, <활련화>, <민들레>등의 소재와 비교해보면 이 점이 더욱 명확해진다. 신금례의 50년을 넘는 화력이 어떤 일관된 맥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다루는 소재의 일관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바라보는 소재에의 접근은 미묘한 변화를 겪어왔다는 사실에서 그의 작가적 성숙과 표현의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작가에 따라 소재에 대한 관심은 어느 일정한 시기에 집중 현상을 보이는가 하면 생애를 통해 꾸준한 맥락을 이루고 있는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신금례의 경우는 단연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소재는 작가의 선택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고, 소재의 내면성이 곧 작가의 예술세계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면, 50년을 넘는 작품의 맥락 속에서 발견되는 소재의 항상성은 곧 그의 예술의 지향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어느 한 방향으로 진척되어왔다면 단순한 소재에의 애착을 벗어나 자기 예술에 대한 강한 의지의 반영이라고 보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초기의 정물화는 다른 소재와 마찬가지로 장르가 지니는 일반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정물화가 지니는 일정한 소재의 범주와 구도의 관례에 충실하고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서양화의 정물의 개념은 정지된 생명에서 출발하고 있다. 자연 속에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식물이 아니라 꺾어서 화병에 꽂아놓은 식물이다. 그러나 그의 80년대 이후의 작품에선 이 같은 서양화로서의 정물의 개념에서 벗어나 풍경으로서의 각도를 유지해주고 있는 경향을 발견하게 된다. 꽃들은 한결같이 들녘에 피어있는 상태대로 화면에 옮겨진다. 예컨대 꽃이 정물로서의 소재가 아니라 풍경으로서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화라는 재료의 개념에서 본다면 정물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지 모르나 내재적 정서의 면으로 본다면 살아있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화조화라고 명명해야 되지 않을까 본다. 그러니까 그가 바라보는 자연에의 인식은 어디까지나 동양인의 자연관에 바탕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선택하고 있는 화조가 근래에 오면서 야생화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이 점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들녘에 피어있는 야생화는 들녘이란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욱 풍경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 이 경우, 야생화는 작가와 대등한 존재로서 만나게 되고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존재하는 대상으로 위상 되는 것이다. 북한산을 모티프로 다룬 웅장한 풍경도 이의 연장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의 최근작 가운데 많이 등장하는 것은 <엉겅퀴>, <봉숭아>, <호박꽃>, <민들레>, <할미꽃> 등이다. 이 같은 소재의 선택은 어떤 특별한 감회와 정서를 동반한 것이 되는데 단순히 아름다워서 선택된 모티프라기보다 우리와 삶을 같이 하는 존재에 대한 애틋한 눈길에 연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것으로서 말이다. 소박하면 소박한대로 별로 눈에 띄지 않으면 않는 대로 절절한 연민의 감정을 자아내게 하고 점차 이국종에 밀려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에 더욱 정감을 자극하고 있는 것으로서 말이다. 화려하고 은성한 이국종에 비하면 소박하고도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들 식물은 이 땅에 뿌리내린 한국인들의 심성을 닮았다고 할까 우리의 내면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애정을 갖게 한다.




자연 속에 놓인 꽃들은 자연이란 배경으로 인해 더욱 자연의 일부로서 독특한 존재감으로 되살아난다. 따라서,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꽃이란 독립된 존재로서 보다는 자연의 일부로서 파악되지 않으면 안 된다. 풍경으로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컨대 민들레는 봄의 들녘, 파릇파릇 풀들이 돋아나는 봄의 언덕의 잦아드는 기운 속에 피어나고, 엉겅퀴는 짙어가는 늦여름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탄력 있는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다. 식물과 배경의 공간이 만드는 독특한 계절의 기운이 화면을 가로지르면서 풍부한 정감을 자아내게 한다. 양지 바른 무덤가에 으레 피어있던 할미꽃도 이제는 보기 드물게 되었다. 그래서 할미꽃을 보게 되면 잃어져가는 것에 대한 애틋함이 더욱 되살아나면서 꿈꾸는 듯한 봄 언덕의 나른한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꽃으로 인해 계절의 감각을 느낄 수 있듯이 계절의 색채에 의해 꽃의 향기가 더욱 생채를 띠게 된다. 식물의 생태적 존재감에 대한 특징들이 정확히 포착되는가하면 조형의 자율성에 의해 부단히 지워지고 있다.




그가 그리는 대상은 때때로 구체적인 형태의 파악과 암시적인 표현 그리고 투명한 색채의 톤으로 인해 깊은 차원을 만든다. 그래서 화면은 사실적이지도 평면적이지도 않다. 뚜렷한 이미지를 지니면서도 깊은 여운을 동반하고 있다. 꽃과 잎과 줄기가 때로 윤곽선에 의해 뚜렷하게 표상되는가 하면, 때로 색면과 분방한 터치로 서로 침투되는 형국을 이루기도 한다. 소담하면서도 활기에 넘치는 붓의 운동감이 화면에 생동감을 자아내게 하면서 화면 전체로 잔잔한 긴장감을 확산시키기도 한다. 투명한 색조는 화면의 안과 밖의 깊이를 조성하는독특한 효과를 발휘하고있다.




대개의 작가들이 연륜이 쌓일수록 자신이 만든 영역 속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창조적 열정이 고갈되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때로 연륜이 쌓일수록 자신의 내면을 더욱 풍부하게 가꾸어가는 예술가들을 만날 때도 있다. 신금례는 이 많지 않은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의 초기 작품들과 근작을 비교해보았을 때 점점 무르익어가는 내면을 발견할 수 있다. 고식적인 아카데미즘의 세계에서 조형의 자율성이 더욱 풍부해지는 열린 표현의 세계로 진입되고 있음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해방 후 제 1세대에 속하는 작가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제 1세대란 그를 포함해서 몇몇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그의 동시대 작가들이 이미 붓을 놓았거나 아니면 자신의 경력 속에 묻혀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는 성실히 자신을 가꾸어왔을 뿐 아니라 더욱 깊어지는 관조의 경지에서 자신의 예술을 되돌아보는 여유로움을 드러내고 있다. 근작인 야생화와 근교의 풍경은 담담하면서도 자신에 찬 내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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