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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베클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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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줄기와 꽃을 주제로 한 그의 2005/2006년 최신작들을 20점 가까이 선보이며, 왕성한 작업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의 작품을 통해, 뉴욕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시
2003년에 이어 두 번째 개인전. 지난 2003년의 전시가 빌 베클리와 개념미술을 한국에 소개하는 목적이었다면, 이번 2006년 전시는 그의 작품이 심미적으로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보여줄 것이다. 작가가 직접 방문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식물의 줄기와 꽃을 주제로 한 그의 2005/ 2006년 최신작들을 20점 가까이 선보인다. 왕성한 작업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의 작품을 통해, 한국 관객들은 뉴욕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자아로 가는 여정



카터 래트크리프


1969년 3월에 빌 베클리는 '조지 워싱턴 시기'로 접어들었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굉장히 바쁜 시기였다. 그 몇 달 전에, 빌 베클리는 펜실베니아의 들판을 가로지르는 선을 그렸다. 그 작업은 이른 아침 하늘이 주황빛 일 때에 그는 주황색 페인트로 그렸다. 이후에, 하늘이 푸르러지면, 파란색 페인트로 바꿔서 칠했고, 해가 지면서 하늘이 다시 주황빛을 띄게 되면 다시 주황색 페인트로 바꿔 칠했다. 다음 프로젝트로, 그는 델라웨어 강을 가로지르는 선을 그리려는 작업을 했는데, 빌 베클리는 페인트 통을 허리띠에 매달고 강둑을 넘어 물 속으로 들어갔다. 점점 작업이 진행되면서, 그는 흐르는 물에 붓으로 물감을 흘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발 밑이 꺼지는 듯 했고, 표면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는 물 속에서 빛과 공기 속에서 정신을 잃고 뒤엉키다가, 페인트 통을 버리고 반대편 강둑으로 겨우 도달할 수 있었다. 몸을 추스리고 난 후에야, 그는 이 지점이 바로 조지 워싱턴이 델라웨어 강을 건넜던 곳이라는 저주를 깨달았다. 역사적인 여정을 쫓는 목적 없이 시작한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서, 빌 베클리는 '조지 워싱턴 시리즈' 작업을 시작하는 상상력을 불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빌 베클리는 조지 워싱턴이 잠들었던 장소들을 기념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펜실베니아 턴파이크의 조지워싱턴 모텔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빌 베클리는 그 자신을 길버트 스튜어트가 그린 조지 워싱턴 초상화에 나타난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분장을 하고, 체리나무를 자르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런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서, 베클리는 미국의 각종 지역 분쟁에 여기 저기 다니면서, 하룻밤의 달콤한 잠을 필요로 했던 워싱턴의 성실한 모습, 미국 교실의 벽에 걸려있었던 거짓을 말하지 않는 정직의 표본인 워싱턴, 즉 미국의 상징적인 워싱턴의 모습을 나타내려 했다. 물론 어린 조지 워싱턴이 체리 나무를 자르면서 나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은 거짓일 것이다. 이 일화는 19세기 초기 미국 어린이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위인전을 지은 작가 윔스가 만들어낸 것이다.

윔스의 꾸며낸 이야기는 결국에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지난 역사만큼이나 수 십 년 간 읽혀진 다음이었다. 반대로, 베클리는 눈에 드러나는 가면을 뒤집어쓴 모습으로 워싱턴을 표현했다. '분명히 내 모습은 조지 워싱턴이 아니었습니다.' 라고 빌 베클리는 올해 초에 분명하게 회상했다. 여기서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것은 베클리가 어째서 1969년에 미국의 아버지를 연기했느냐 이다. 내 생각에 그의 '조지 워싱턴 따라하기' 는 십 년 전 로버트 모리스의 정육면체, 칼 안드레의 사각형, 솔 르윗의 격자무늬 등 말없이 투명한 물체들로 유명세를 얻은 미니멀리스트에 대한 빌 베클리의 반항이다. 프랭크 스텔라가 '보여지는 것이 당신이 보는 그 자체'라고 말한 것처럼, 미니멀리스트의 작업들이 작업 자체만으로도 자명하게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미니멀리스트 미술의 단순함과 엄숙함에 맞서서, 빌 베클리는 멀리서 보면 하나의 정육면체의 모양으로 배열한 나무 줄기를 그렸다. 뉴욕 소호에서 생겨난 첫 번째 갤러리에서 열린 초기 전시에서는 세 개의 가로로 배열한 널빤지와 두 개의 수직 기둥 사이의 공간을 채워 넣었다. 이 작업은 미니멀리스트 조각가 도날드 저드의 아치 작업처럼 모든 공간이 같은 크기의 하나의 단위를 모아서 배열한 것이었다. 이러한 베클리의 작업의 제목은, Rooster, Bed, Lying (1971) 수탉, 침대, 눕혀진 -이었다. 수탉은 중간과 맨 위의 널빤지가 닭장의 철망으로 연결되어 있어, 수탉이 잠시 머물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침대는 작가가 매트리스를 바닥 철판에 진열했는데, 눕혀졌다고 한 것은 배열이 똑바르게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매트리스의 존재는 누구에게나 거기 누워서 잠들고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수탉으로 인해 다시 의식의 세계로 깨어 나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Rooster, Bed, Lying은 피곤한 관객을 작품에 초대해 그 안에서 깨어나도록 하고, 작가의 협력자로 만든다고 볼 수 있다. 눕혀졌다는 것은 영어의 동음이의어인 거짓을 말하다 라는 것과 굳이 연결되지 않더라도, 이 작업은 의도적으로 속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베클리의 Song for a Chin-up(1971) 턱걸이를 위한 노래-는 노래 부르는 사람이 턱걸이를 하는 동안 are 단어를 계속 반복한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 철봉 위에 턱을 올리면 그 톤도 올라가고, 톤이 내려가면 그 노래하는 사람의 턱도 내려간다. 이 작업은 쥴리아드 음대의 테너가 퍼포먼스를 맡았다. 미니멀리스트의 미술에서는 어느 정도의 강직함이 중요하다. 온전히 반복적인 물체들을 배열할 때, 베클리도 똑같이 반복적인 행동을 하였다. 미니멀리스트의 패턴들을 빌 베클리는 정지된 물체에서 몸의 움직임으로 대입시켰는데, 이런 종류의 작업들을 퍼포먼스 아트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베클리, 스테판 칼텐바흐, 윌리암 웨그만 이 세 사람은 퍼포먼스 아트 작업에 자기 멋대로의 위트를 첨가하였다.

미니멀리즘이 예술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형태 자체에 주목하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업적을 숭배하는 자들의 눈에는 이런 작가들의 변형이 이단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 빌 베클리는 거의 5년도 채 지나지 않아 미니멀리스트가 하는 반복을 이용해서 are 을 무의미한 단어로 만들어 버렸다. 턱걸이를 위한 노래 작업은 하나의 단어를 겨우 명료성과 모호함의 경계에서 떠다니는 하나의 소리로 만들어 버렸다. 빌 베클리나 동 시대 작가들은 그 변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무관심은 기존의 끊임없이 이어지던 난해한 추상표현주의의 흐름에서 미니멀리즘 특유의 명확성과 본질을 향한 시각을 미술에 도입한 점에서 미니멀리즘을 신봉하던 자들에게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칼 안드레가 '미술은 불필요한 것을 배제하는 것이다' 라고 선언한 1959년에도 여전히 이어졌다. 도날드 저드는 이렇게 불필요한 것을 배제한 채로, 많은 것들을 담지 않고, 비교 대상도 없고, 분석하거나 생각할 여지도 없는 미술을 했다. 로버트 모리스는 많이 보여주지 않는 미술에 대해 분해되지 않고 나눠지지 않는 객체 라는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a good gestalt '훌륭한 형태' 라고 정의 내렸다. 모리스가 하나의 물체가 통합적으로 전시될 때, 동시에 보여지게 된다고 지적한 것에서 출발하여, 아넷 미켈슨은 '훌륭한 형태'가 가장 강력하게 암시되는 작품을 명쾌하게 보여줬다. 미켈슨은 모리스의 말에 전적으로 기대어 Slab 1962 얇은 네모난 회색판 조각-을 제작하였고, 그 작품에 대해 '내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다' 라는 존 케이지의 말을 선언한 작품이며, 이런 종류의 선언들은 논쟁이 불가능하고 거부도 할 수 없는 필연이라고 말한다. 단순하게 slab 작품을 바라보는 것 자체도 작품 속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필연이다 라는 것은 해석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미술 작품에 대해 해석하는 것은 호머가 아킬레스의 방패 문양에 대해 설명한 것 만큼 오래된 것이다. 만약 1960년대 미술 작품이 어떠한 해석도 필요 없다면, 그것은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다. 미니멀리즘이 바로 그런 종류의 미술 작품을 생산한다고 믿는 자들에게 그것은 새로운 세기의 도래 같은 것이었다. 지긋지긋하게 모호한 해석들에서 미니멀리즘의 필연 같은 명료함이 구원해주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빌 베클리의 성향은 말 그대로 이해가 안가는 것이었다.

1971년에 빌베클리는 네모난 갑판을 갤러리 출입구에 장착시켰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 하얀 편편한 면 때문에, 괜찮은 미니멀리스트 작업 같아 보였다. 갑판 위를 열어서 그 안에 상자 같은 내부를 보면,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있었다. 왜 양서류가 이 안에 있을까? 이런 말도 못하는 동물을 가지고 예술은 진리를 만들어 낸다는 필연에 대한 선언들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당연히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렇다면 왜 베클리는 미니멀리스트의 명확한 형태를 도입해서 형태를 재현한 것도 모자라 전혀 기하학적이지 않게 배열했을까? 왜 필연의 논리를 훼손 했는가? 그는 보존해야 한다고 느끼지 못했는가? 시간이 흘러 갈수록 이런 질문에 대해 그의 무관심이 더해져 아예 즉각적인 반대파가 되기에 이르렀다. 베클리는 논쟁을 좋아하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중반에 그는 텍스트와 사진을 병행하는 작업을 하면서 필연적인 진리를 실현하는 이상적인 예술-미니멀리즘-에 대해 대답할 수 없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 세기가 끝나가면서, 이상적인 예술은 갤러리의 오브제에서 멀리 떨어진 대지나 서부의 사막, 맨하탄 이웃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 작업에 대한 다큐멘터리 사진들로 바뀌었다. 필연의 제국, 그것은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지속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에게로 확장된 것처럼 보였다. 비토 아콘치- 미국의 설치조각가-는 거대하게 제목을 붙인 사진들을 제작하면서, 그의 퍼포먼스 작업에 대한 다큐멘터리 사진 속에 아콘치는 그의 액션과 그에 따른 개념들 간에 완벽한 자기 대응을 완성하였다. 다큐멘터리 방식에서는 진리였고, 미니멀리스트 작업이 명료하다는 모리스가 제안한 그 컨셉을 믿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칭찬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만약 모리스가 옳다면, 아콘치는 퍼포먼스 예술가이면서 개념 미술가이다. 베클리 역시도 그가 사진과 텍스트를 병행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 개념미술가로 통했다. 이런 꼬리표는 전체적으로 개관할 때는 필요하겠지만, 그 예술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아콘치가 퍼포먼스 작업으로 자기노출의 극단으로 치달을 때, 그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무리하게 확장시켰다. 진실의 기록은 이상적이었지만, 그는 사진들을 격자로 배열하였고, 미친 듯이 날려 쓴 글씨도 더 순서대로 정렬하였다. 이러한 정신분열적인 증거들이 늘어나도, 그는 자신의 예술을 미니멀리즘의 명료함과 전체성의 흔적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았다. 아콘치는 미니멀리즘을 진지하고, 확실하고, 의심할 여지 없는 진실의 기준으로 삼았다. 베클리는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미니멀리즘은 완벽한 각도, 사각형, 정육면체 등 완성된 형태의 예술이었다. 베클리는 그것들의 명료성을 좋아했지만, 단순한 도형이 그들의 개념을 눈에 보이는 작업으로 만들어 준다는 미니멀리스트의 견해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베클리의 예술에서 반듯하게 정리된 표면은 감각적인 배열을 하는 장소로서 중요한 것이었다. 밝은 색의 작업 Hot and Cold Faucets with Drain 1976-뜨겁고 찬 수도꼭지와 배수관-은 세가지 시바크롬 프린트작업을 가로로 배열한 것이었다.

왼쪽에는 물이 흐르는 수도꼭지가 푸른 배경색과 대치되는 이미지가 있다. 푸른 신호들은, 아마도 차가운 수도꼭지를 의미할 것이다. 오른편에는 또다른 수도꼭지가 있는데, 이것은 뜨거움을 암시하는 빨간 배경색과 대치가 된다. 이런 것들은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된다. 그러나 가운데에 밝은 노랑 싱크대에 있는 배수관을 보면 이성적으로는 납득이 안 된다. 이런 종류의 논리는 이 작업이 표현하는 사물에 대해서는 하나로 설명한다. 수도꼭지는 물론 배수관과 어울리고, 세 개의 주색-빨강, 노랑, 파랑- 은 친숙한 세가지 화음을 만든다. 그러나 무슨 논리로 주제와 색깔 설계의 연관성을 설명하는가? 이 작업이 어느 정도의 이성적인 원칙에 의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의 이상에서 추론한 것에 불과하고, 베클리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이다. 우발적인 것을 생산하고, 미니멀리스트의 영원성에 대한 요구, 개념적으로 연결된 '형태 gestalt' 를 무시하면서, 베클리는 도형을 필연적인 연결로 보는 시각에서 자유롭게 해방시켰다.




1976년 이후부터 벽에 거는 작업들은 불규칙적인 윤곽선을 지녔다. 여전히 네모난 패널을 사용하지만, 전체적인 배열은 더 이상 대칭적이 아니다. 그 다음해에는 원형도 나타났다. The Kitchen 1977 -부엌- 작업에는 캠벨 수프 캔의 동그란 윗부분을 사진 이미지로 사용했다. 측면에서 보면 그 수프 캔은 동그란 프린트를 지지하고 있는 기둥의 일부처럼 보인다. 나머지 기둥은 흰색 빛이 돌고, 짧은 텍스트가 배열된 상하로 긴 조각이다. 왼쪽에는 다른 조각이 아래로 처져있다. 첫 번째 기둥보다는 짧지만, 이것은 창문으로 본 자연 풍경과 반만 그려진 그림자가 있는 조각이다. Kitchen 의 텍스트는 창문이나 부엌을 보는 사람들에 관한 것으로, 정확히 작업 중에 어느 한 부분에 적용되는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또한, 텍스트는 캔 따개의 45도 기울어진 모습과도 연관되어, 전체 작품이 배열되도록 한다. 그리고, 이런 복잡하게 암시하는 내러티브의 조각들에 대해 더 이야기 하자면, 어느 부분은 Kitchen 작업의 이미지와 어우러지면서 나타나고 시각적으로 대치되면서 감춰져 있다. 캔 따개는 캠벨 수프 캔을 열수는 있지만, 이 작업의 신비를 풀 수는 없다. 풀려질 수 있다면 신비가 아니다. Kitchen은 진리나 다른 타당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생각의 놀이 공간이 되고 가능성의 장이 된다.

1970년대에 성적인 주제가 드러난다. Shoulder Blade 1978 어깨 뼈- 작품은 여성의 젖꼭지가 잔뜩 곤두선 채로 클로즈업된다. 자연풍경과 텍스트는 중간에 배치되어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길이 막히고, 마침내 경계를 넘었다'라고 말과 이미지로서 표현한다. 황량해지거나 혹은 풍성해진다고 해도, 이런 자연 풍경은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조각조각 남아있어서 그 주제는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이어지는 상상 속의 여정처럼 보인다. 빌 베클리의 작업이 미니멀리스트의 선례-네모난 패널-에서 출발하면 할수록, 더 복잡하고 감각적인 연결이 나타날 수 있다. 1970년대가 끝이 나면서, 에로틱한 특성은 베클리 작업의 이미지에서 그 형태로 전이 되었고, 더 미묘하게 그의 예술 방식에 적용되었다. The Living Room 1997 리빙룸- 작업에서는, 곡선으로 사각형을 구부러뜨렸다. 격자무늬 방식에서 벗어나와서, 마치 가장 흡족하게 연결되려는 것처럼 부분 부분이 서로 자유롭게 배열된다. The Dining Room 1977 식당- 에서는 관능적인 암시가 쭉 뻗은 풍차의 모습에서 모호하게 연결된다.

사진에 투신한 이래로, 빌 베클리는 카메라라는 매체 특유의 실증적인 공신력을 훼손하기 위해서 사용했고, 그 대신 상상 속 놀이의 쾌락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초기 작업에서부터 사진 속 진실에 대한 무관심은 나타난다. 그는 1969년 델라웨어 강을 지날 때부터 카메라를 소지하고 있었다. 발을 헛디디면서, 카메라를 잃어 버렸고 나중에 그가 의도했던 사진 작업의 목적은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술계는 대지 사진 작업, 퍼포먼스 사진 작업 등 기록 사진 작업들이 난무했습니다. 그 작업들이 저한테는 맞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미지이거나 이미 발생했던 일에 대한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즉, 미술의 사진 작업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나는 내 사진 작업이 주된 것이 되게 하고 싶었습니다. ' 라고 베클리는 말한다. 이렇게사진 작업들의 실증적인 특성을 해방시킬 때에만 그의 작업은 가능하다. 사진은 간단명료하고, 세밀한 초점을 유지한다면 기록 사진으로 인정 받는다. 1970년대를 통틀어서, 빌베클리는 한정된 의미들을 해체시키는 작업을 한다. The Dining Room 작업에서 양초는 남성 성기 같고, 음울하며, 공식화된 형식이다. 전체적인 작품의 모양은 양초 주변의 다른 요소들과 혼합하여 보면 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아무 형태도 갖지 않은 듯하다. 이 작품을 보면 누구나 베클리가 미니멀리스트의 진리에서 나온 무생물적인 명료성을 높은 단계의 의미수준으로 진화시켜서, 전체적으로는 모호하지만 에로틱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이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는데, 거기에는 다른 작가들도 포함된다.

1960년대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피터 허친슨은 멀리 떨어진 자연 풍경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작업을 했다. 그의 사진 작업에서만 존재하는 일시적인 대지 미술 작업을 양산했다. 한 예로, Paricutin Volcano Project 1971-파리쿠틴 화산 프로젝트- 는 멕시코의 화산 분화구 끝을 따라 100 야드 이상의 빵 조각을 진열하여 대지의 모양을 보여주는 커다란 컬러 프린트 작업이다. 여행을 하면서 동시에 사진을 찍으면서 허친슨은 그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연결하여 내러티브를 구성했다. 그러나 서로 연결되도록 구성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 구성하는 원칙이 작가 임의로 만들어낸 알파벳 순이거나 두운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허친슨의 예술에서 관객은 그 떠다니는 의미 조각을 모으도록 하여 스스로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게 하는 방식으로 초대되었다.
흑백 작업에서, 맥 아담스의 사진은 1970년대 범죄사진 기술자가 찍은 듯 필름-느와르 스틸샷 작업을 했다. 그의 이미지는 B급 추리영화를 모아놓은 듯 보였다. 그래서 이 사진을 보고 실마리를 찾아 갈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조합되지는 않았다. 아담스가 1978년에 비평가에게 말하길, '미스터리에는 관심이 없지만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와 무엇을 알고 있는가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이미지를 통한 의미론에 관심이 많다.' 아담스가 인식론에 관심을 가진 심리학자는 아니고, 개념미술가도 아니지만, 그 작업의 형태와 구성은 미니멀리즘의 엄중한 성향에서 출발했다. 지식은 그의 테마이며, 지식과 결전을 벌인다. 그러나 절대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않다. 작가나 우리 모두에게나 그의 예술의 핵심은 지식과의 싸움 그 자체이며 그 만큼 즐거워진다. 베클리처럼, 아담스는 관객들을 인식론의 세계에 끌어들였다. 1970년대 중반에 제임스 콜린스, 엘레노어 안틴 등 몇몇 예술가들이 이미지와 텍스트를 병렬하는 작업을 하였다.

이런 예술가들은 미니멀리스트의 형태와 개념미술을 사용하되, 미니멀리즘의 '자명한 진리의 이상'을 무시하고, 작품을 통해 관객이 추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미니멀리즘이 진정한 미술은 단지 진리를 드러내는 것 뿐 이라는 목적으로 전시한다면, 이렇게 완전하게 드러나는 것에 대해, 베클리와 다른 예술가들은 예술을 보편 진리와 무관하며, 과거 어느 때보다도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예술이 진리와 무관하다는 가능성이 무엇이 그렇게도 새로운가? 플라톤이 시와 미술과 모든 현실을 모방한 예술은 매혹적인 거짓말로 보는 이를 홀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물론 그렇게 말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에 어떤 예술, 특히 비극적인 시 문학은 단지 혼란 시키는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플라톤의 현실 모방의 예술의 가치에 덧붙였다. 이는 우리의 계몽에 대한 능력과 연관된다. 지적인 예술을 발견하는 것은 현재 세상의 이치에 대해 더 알아가는 것이다. 미술과 명료성의 관계에 대해 더 파고 들어가면, 플로티누스는 플라톤의 예술에 대한 불신을 신플라톤주의적 개념인 궁극적이고, 절대적이며, 시대를 초월한 사실로서의 예술로 변형 시켰다. 플로티누스가 예술에 대한 개념을 변화시킨 이후로 거의 2000년이 흐르는 동안, 이 신플라톤주의는 서양인들의 정서 속에 자리 잡았고, 어거스틴의 신학에서 벗어나 샐리가 주장한 '미술을 이상적인 개혁'으로 바라보게 했다. 최근에는 미술 평론가들이 어떤 시대를 초월한 본질이나 궁극을 논할 때 마다 플로티누스의 세대를 초월하는 '지식과 지혜'가 종종 거론한다. 물론 독일 이상주의자들 사이에서 다른 예술과 진리에 관한 사상들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순간의 정신성을 포착하는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를 칭찬할 마다 미술 평론가들의 글에서는 헤겔이 말한 '시간이 가미된 본질성' 이 반복되곤 한다. 인상주의자들이 빛의 세기를 정확히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것과, 초현실주의자들이 자동기술의 무아지경에 몰두했던 것 들도 예술 속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예이다. 미술이 현실을 드러낸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너무 친숙한 것이라, 플라톤 뿐 아니라, 미술의 목적이 원래 그것이 아니었는가 라고 물을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미니멀리스트의 진리는 단지 이상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난 세월 동안 예술 작품은 해석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회화는 이런 필요조건하에 생겨났다. 항상 거리를 유지하긴 하지만 관객 앞에 놓여진 예술 작품은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 항상 말할 거리가 있었다. 관객이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다른 종류의 미술품처럼, 미니멀리즘은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그러나 미니멀리스트의 작품은 관객의 입을 다물게 하고 해석을 불허하는 예술로서 그들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미니멀리스트의 작품은 그 의미가 확정적이고, 확실성을 방해하는 어떤 요소도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설명할 수가 없다. 미니멀리즘에 대해 즐겨 논하는 평론가들은 왜 작품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가를 설명해야 하는 모순에 직면한다.

베클리는 미니멀리즘과 이에 저항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젊은 작가중의 한 명 이었다. 그는 관객이 말 못하도록 제압하려는 유혹에 저항했다. 그의 작품은 미니멀리스트의 명료성에 영향 받았지만, 미니멀리즘 특유의 암울한 필연성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발견했다. 만약 미니멀리스트의 작품이 진리를 드러내는 것 이외의 목적이 아예 없었다면, 그는 다른 종류의 작업을 했을 것이다. 그는 미니멀리스트의 판형을 침대로 만들었다. 미니멀리스트의 갑판을 수탉의 닭장 바닥으로 이용했고, 거북이가 노닐게 놔두었다. 1970년대에, 미니멀리즘의 상자와 격자무늬를 통한 명백한 진리는 철학적인 탐구와 제도적인 비평을 하는 기록의 진리로 변모했다. 베클리 역시 이미지와 텍스트로 넘어가서, 패턴들을 배치시키고, 이미지와 텍스트의 기록적인 가치를 해체시켰다. 그는 다른 종류의 가치에 관심이 있었다. 1980년대에 이제 그는 물체로 돌아왔다. 작가 특유의 이미지나 모호한 경향들을 완전히 벗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일은 어림도 없다. 고비 식물과 목공예를 배치한 사진 이미지를 혼합시킨 작업 Front Porch 1987 앞 현관-은 지독히 모호한 사진 작업에 3차원의 사물을 부착했다.

미니멀리스트의 전성기에 작품 속 물체는 그 자체가 진리의 증거로 인정 받았다. 베클리는 여기에 굴복하지 않고, 아침 햇살에 서리가 사라지는 것처럼 증명성이 사라지도록 물체를 정교하게 제작했다. 그의 작품 중 Jack in the Beanstalk 1980 잭과 콩나무-는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다른 물체들이 모인 커다란 벽면 작업이다. 갈색 패널에 있는 검은 에나멜색 물감 흔적은 잭슨 폴락을 연상케 한다. 도깨비와 마술이 난무하는 동화 속 주인공 잭은 아마도 오른쪽 패널 쪽에 흩어져있는 식물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다른 쪽 패널의 가장자리를 따라 '페-푸-피'라는 음절이 연속적으로 배치하여, '영국사람의 피'에 관한 도깨비의 노래를 반영한다. 작품의 윗 쪽 가장자리를 따라 5개의 철판이 왜 정렬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갤러리 공간을 확장 시켜보면, 그것들이야 말로 1980년대 다른 벽 작품에서 언급한 잭슨 폴락의 집의 일부분이 아닐까 한다. 불규칙적으로 대략 봤을 때, 그것들은 도깨비의 구름 속 쓰러져가는 집의 한 부분일수도 있다. 이 부분이나 혹은 잭과 콩나무 작품의 다른 부분에 대한 한가지 해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작품의 목적은 해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적용해보고, 그 가능성대로 작품을 바라보는 것이다.

잭슨 폴락과는 다르게 자의식이 강한 베클리의 검은 애나멜 물감흔적은 올챙이나 정자처럼 보인다. 물결치듯 위로 향하면서 Jack in the Beanstalk 에서 나온 콩의 사촌쯤 되는지, 무제한의 육체적 힘을 상징하면서, 멈출 수 없는 의지와 인간 의지에 선행하는 어떤 원초적 힘 혹은 그 이상을 표현한다. 콩나무가 어떤 의미이든지 간에, 그것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 하늘에 닿으려는 건가? 그런데 하늘은 어디에 있나? 내 생각에 베클리는 우리가 하늘을 인정하는 관점으로 불러들인다. 육지의 희망을 넘어선 풍부함의 근원, 그것은 폴락의 물감 흘림의 회화가 암시했던 무한의 공간과 아마 비슷할 것이다. 이는 굉장히 위험한 공간이며, 베클리가 의도적으로 정형화하지 않은 신화는 미술 세계를 지배하는 폴락의 이미지를 살며시 보여준다. 잭은 누구이고, 그의 역할을 무엇인가? 다시 베클리의 작업에 대해 얘기하자면, 한 반쯤 가닥이 잡혀진 상태에서도,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확실한 진리이거나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그림 읽기가 가능하다면, 내가 그림 읽는 방식이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클리의 작업은 그림을 읽는 방식이 엄청나게 열려있어서 하나의 방식이 불가능하다. 부분부분들은 하나로 맞춰지고, 그들 사이에는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로 모아지는 결론을 내기가 힘들다. 잭과 콩나무 작품은 원리상, 마치 폴락의 흘림 회화처럼 무한히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개별적인 관객은 가장 그럴 듯 하거나, 흥미 있거나, 유용한 정도에서 작품을 읽는다. 베클리의 어떤 작품들은 처음 단계부터 해석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도 있다. Front Porch 작업으로 돌아가보면, 그 작품의 디테일에 관해서 상징과 암시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 그 작품 특유의 조용한 실내의 분위기는 상상력을 약하게 하고, 해석하는 걱정을 줄여주며, 고비 식물 냄새에 눌려서 보는 이는 쉽게 공감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미술 작품을 보면, 격정적으로 사고하게 되고, 어떤 작품들은 사람을 행복하고 차분하게 만들며 그 불가사의한 깊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두 경우 모두 예술가가 전달하려는 그 확실한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는 그런 경지는 아니다. 반대로 얘기 하면, 시각적 이미지는 서로 다른 해석이 끊임없이 잠재할 때에만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기록 이미지를 보면, 기록되는 증거들이 사리판단의 근거가 된다. 우리는 오즈의 마법사 책을 읽을 때마다 그 삽화를 정성스럽게 보지만, 그림과 글 사이의 삽화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면 그렇게 정성스럽게 보는 것도 지루해진다. 예술작품을 보는 것은 절대 지루해 질 수는 없다. 물론 어떤 미술 작품은 상상력을 지치게 하고, 이미 해왔던 생각을 반복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원칙상으로는 지루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예술 작품은 지루하지 않는다는 그 이유 때문에 예술에 질리게 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같은 이유 때문에 힘이 나서 더 예술과 소통하게 된다.

예술 작품을 빨리 혹은 천천히 해석하든지 간에 절대 하나의 결론에 귀결되지는 않는다. 예술은 진리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리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결론에 도달한 이미지와 발표에만 집중해야 한다. 게다가 시험이 가능한 종류의 결론들이 있어야만 한다. 만약 내가 '고양이가 매트에 있다.'라고 하면, 이 문장을 이해하는 당신은 주위를 둘러보고 당신이 보는 것과 내 말이 일치하는지 확인할 것이다. 만약 고양이가 매트에 있다면 내가 말한 것이 맞고, 아니면 틀리다. 진리와 의미는 직접적으로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가름하는 선언문이 가능하도록 서로 얽혀있다. 기록 이미지는 이와 같은 방식이지만, 미술의 이미지는 다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예술가는 보는 이가 진실을 찾지 못하도록 모호하게 덮는다. 예술품은 진실일수도 없지만, 17세기의 청교도나 현재의 이슬람교도들이 뭐라 하던 간에, 예술품이 가짜라고 결론 지을 수 없다. 예술품은 그저 창작물인 것이다.

20세기 미술의 위대한 창작 중의 하나는 미니멀리스트의 물체가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과 그 작품 자체로 명백하기 때문에 해석이 필요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 마음에 해석의 여지없이 전적으로 자기 증명만이 빛나는 창작이기 때문이다. 지적이기 위해서는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해석은 너무 일상적이라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육면체로서 인정할 수 있는 어떤 물체에 대해 우리가 해석할 필요조차도 없다는 진리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것은 오히려 진리에 대한 좋은 영감이 되었고, 미니멀리즘의 물체들이 진리를 드러내는 근원이 된다고 찬양하는 동조자들을 이끌었다. 미니멀리스트의 동조자들은 미니멀리스트의 물체는 의문의 여지 없는 권위를 내뿜기 때문에, 그 자신들 스스로가 그 권위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 스스로가 위대하다고 느낀다.

모든 미학은 도덕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미니멀리즘의 도덕성은 자세히 보면 이중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니멀리스트의 물체는 선한 영향력이 있다. 미술과 진리에 대한 질문을 그들이 항상 받았던 것처럼 냉정하게 초점을 맞췄다. 베클리와 다른 몇몇 작가들은 이에 대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이에 대꾸한다. 그들은 미니멀리스트의 형태와 구성을 뽑아서 쓰고는 절대적 진실과 명료성에 대한 선언들을 무시했다. 이런 무관심 때문에 미니멀리스트 물체의 마술과도 같은 아우라를 무너뜨리고 속임수를 해체하였다. 기하, 대칭 등 미니멀리스트 개념미술가들의 레퍼토리는 이제 창작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베클리의 자화상 Juggler 1990-저글링하는 사람-은 흑백사진을 늘려서,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하고 손가락을 잡아 늘여서 중간에 배치한 작품에는 무언가가 있다. 손 이미지 자체는 그 주변 공간의 다른 이미지를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공의 이미지가 있고, 검은 타이프에 쓴 것 같은 글씨가 담겨있는 하얀 원 같은 둥근 형태의 이미지가 더 있다. tween이라는 글씨는 between 사이-의 부분이며 전체 이미지를 아우르는 단어이다. 언제나처럼 각각의 요소가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빈약한 연결 관계가 중요하다. 다양한 재질, 질감, 요소들은 작품의 아랫부분에 인접하고 있다. 아래 부분의 이미지는 작품의 받침대를 이룬다. 나머지 하나의 손 바로 위에 놓인 손은 마치 또 하나의 받침대인 것처럼 확장되어있다. 어느 한 요소도 두드러지지는 않고, 전체적인 Juggler의 구성은 요술부리는 사람이 만드는 어떤 정교한 패턴을 이루지 않는다. 베클리는 행위예술가가 아니라, 서로 전혀 다른 이미지들을 눈에 편안한 연결 방식 이외의 것을 알고 있는 예술가 이다.

Checkmate-on-Pond 1996-호수의 체스 장군- 작품은 두 개의 네모난 체스 판을 매치했다. 각각의 체스 판은 가로 8, 세로 8의 하얀 격자무늬가 검은 판에 새겨져 있다. 1960년대 미니멀리스트의 회상과도 같은 이 네모난 판은 체스 말 몇 개가 놓여져 있는 체스게임 판 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극도로 축소하여 위에서 내려다본 모양이다. 하얀 체스말은 꼭 유령처럼 빛나지만, 검은 판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체스장군이 판에서 이기고 있는 상황인지는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 판이 투명해서 검은 부분에 금붕어가 확실히 보이는데, 우리는 이를 두 가지 방식으로 읽는다. 딱딱한 겉 표면이 체스 말을 받치고 있고, 그 안에 액체 속에서 금붕어가 움직인다. 병졸, 주교, 장군은 규칙대로 움직이지만, 물고기는 아니다. 그들은 체스 판의 격자무늬에서 자유롭게 노닐고, 마치 작가의 대리인 같은 모습이다.




2000년 봄, 베클리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작업을 흑백 사진이 아니라 복잡한 줄기 사진을 찍으면서 단순하게 만들었다. 장미와 제비꽃 줄기를 이용한 1974년 작업 Roses Are, Violet's Are, Sugar Are 장미가 있고, 제비꽃이 있고 사탕이 있는-이 연관되어 시작되었다. 최근의 줄기 사진은 더 녹색이고, 피어있는 꽃들이 연결되어있다. 배경색은 다양하게, 빨강, 분홍 빛 나는 노랑, 파랑, 하양, 회색, 베이지 등 정확히 규정할 수 없도록 변화를 준 색들이다. 이 화려한 색깔들은 디지털 기술이 만드는 것만큼 정확하고 뚜렷하게 형태를 채운다. 시바크롬 사진 작업이 가능하게 된 1970년대 초기부터 베클리는 누구보다도 먼저 이 방식을 이용했다. 기술의 문제만이 아니라 미적 감각에서도 혁신적이었는데, 항상 흠잡을 데 없는 표면처리를 유지했다. 최근작은 새로운 단계로 정제되었다.
이런 이미지들은 빛이 나고, 처음 보면 빌 베클리가 극 다큐멘터리 작가인 것처럼 그 놀랍도록 정확한 모습에 매혹 당한다. 기록 사진은 증거의 일부분이지만, 이런 사진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종종 작가가 무슨 꽃을 찍었는지 조차도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줄기는 수직으로 서있고, 베클리의 가로로 넓기 보다는 세로로 긴 패널에서는 이러한 줄기는 방향성을 담고 있다. 단독으로 서있는 것도 있고, 시리즈로 수평적인 형태를 유지하면서 시리즈로 줄지어 서있기도 하다. 종종 이런 작업들은 벽면 크기인데 이는 폴락이나 바넷 뉴만의 회화와도 같은 크기이다.

Old Warrior 2002 늙은 전사-시리즈에서 줄기는 가늘고 길다. 어둡고 시들어진 꽃들은 구부러져 있고 어떤 것은 꺾여있다. 바로 이 식물들은 스스로 사진에 찍히기에는 너무 약하게 보인다. 베클리는 그것들을 거꾸로 세워서 사진을 찍었다. 완성된 작업을 벽에 걸기 위해서는 이런 식물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빌 베클리 최근작의 모든 식물과 꽃들은 사진이 찍힐 때는 거꾸로 세워져 있고, 마치 한번도 그렇게 뉘여 있지 않았던 것처럼 수직으로 돌려지면 너무나 쉽게 우아하게 보인다. 이런 종류의 위장은 이 사진들에 녹아있다. 더 미묘하게 해석하면, 베클리의 꽃은 그 은유적인 제목만큼이나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Gothic Attempt, 2002-4 고딕 유혹-은 쭉 뻗고, 호를 그리며, 서로 교차되는 녹색의 줄기를 보여준다. 종종 두 개의 줄기가 서로 휘어져 나가면서, 그것들이 고딕 아치의 형태를 이룬다.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는 항상 정확하진 않고, 대략적이다. 올가닉한 형태는 아무리 고딕 양식이 곡선의 나뭇가지와 포도나무줄기가 서로 교차되는 형식이라 할지라도 건축양식의 모양을 정확히 모방할 수는 없다. 제목에 대해 집착하자면, 베클리의 고딕 사진 속 줄기들은 종종 성당의 천장과 기둥 모양을 닮았다. 이제 제목도 바뀌고, 크기도 변화하는데, Three Grace 2003-4- 세가지 우아함-의 줄기는 Gothic Attempt와 유사한 패턴이다. 그러나 Three Graces가 고전적이라면, Gothic 시리즈는 건축적인 규모가 아니라 인간적인 규모로 고전적이지 않다. 이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작가는 제목에 따라 다른 암시가 내포하고 있을 것 이라는 상상력을 갖게 하고 이미지 자체에 더 접근하도록 만든다.

베클리의 줄기는 바넷 뉴만이 zip이라고 불렀던 그 회화 속의 얇은 수직선을 제안한다. Stations 2001 역-은 뉴만의 작업인 Stations of the Cross 십자가의 역-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뉴만은 그의 zip이 위치를 선정하는 행위, 화면의 색과 그 부분을 결정하는 장치라고 말했다. 베클리의 꽃 zip은 정확히 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뉴만의 분할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색을 구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적용된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회화 대 시바크롬 사진간의 대결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종류의 구획과 관련이 있다. 뉴만은 경계를 무너뜨리는 노력을 통해서 그의 성숙한 스타일을 발견했다. 그가 zip을 색면에 배치하면서, 프레임을 무시하는 리듬을 발견했다. 보는 사람은 그 색면들은 서로간의 경계 사이에서 확장된 에너지를 조율하면서 구획되지 않고, 잠재적으로 영원하다는 것을 안다. 대조적으로, 사진 이미지는 무한한 일상 공간의 부분부분을 기록하는데, 이는 잠재적이지 않고 일반적인 사실이다. 사진 이미지의 가장자리는 다소 자의적이고, 베클리는 이를 규정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선의 형태-줄기-를 이용해서 우리 모두가 함께 존재하는 규격화되지 않은 공간의 한 부분에 우발적인 질서를 만든다. 그러면, 뉴만이 드로잉 선으로 무한을 획득했다면, 베클리의 업적은 대조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선들을 가지고 무한대를 개척했다는 것이다.

줄기는 나긋나긋해서 호와 아치, 곡선 등으로 베클리의 최신작을 구성한다. 질서는 항상 즉흥적으로 만들어 진 것처럼 보이고 절대 위험한 명백함으로 고착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줄기가 건축적이고 비유적일 뿐 아니라, 마치 자유로운 손이 발명된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효과를 나타낸다. 크기는 유동적이다. 베클리의 선의 우아함은 집에서 쓰는 작은 스케치북이나 거대한 벽에도 있다. Gothic Attempt 21, 2004 는 벽화 같은 크기의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의미는 다양한 해석을 낳아도, 건축에 대한 암시를 주는 선들은 지도에서 결정되지 않은 지역들을 보는 듯 하다. Shall I at Least Get My Lands in Order 2005 나의 대지에 질서를 잡아야 하는가-와 같은 작품은 제목만으로도 가지 않은 경계에 대한 가능성을 제안한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백합들은 애잔한 느낌을 준다. 이 분위기는 양귀비 꽃 작품으로 전환되는데, 작가는 아름다운 꽃 이미지에 아프가니스탄과 헤로인을 제목에서 언급하여 음산한 연관을 낳는다.

Oh To Be Young Carefree and Gay 2005-6-오, 젊고 걱정 없고 명랑하게-등의 작품이 어떻게 양귀비 시리즈의 제목이 되는가는 이해하기 힘들다. 지칠 줄 모르게 아름다운 이런 이미지들이기 때문에, 그런 제목은 무언가 문제 있는 연관이 아닌가 의심이 들게 한다. 몇몇 제목은 당연히 자전적인 의미도 있다. 2005년에 베클리는 거의 단색에 가까운 양귀비꽃 사진에 The Marriage of Reason and Squalor 합리와 부조리의 결합- 같은 제목을 달았다. 그 제목은 미술사의 범위에 대한 자서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는 미니멀리스트 화가 프랭크 스텔라를 위해 미니멀리스트 조각가 칼 안드레가 만들어냈다. 안드레가 이성이나 부조리, 그 결합으로 정확히 무엇을 지적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 그는 스텔라의 디자인을 대칭으로 보고 이를 '이성'이라 생각하고, 그의 소재, 검은 에나멜, 정돈되지 않은 캔버스, 작가의 패턴이 마음속에서 융화되는 그런 문제들을 '불합리'라고 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대치가 종종 데카르트 학파나 구성주의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플라톤의 글에서 이것은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물론 플라톤 전 세대의 고찰에서도 이미 나타났다. 오랜 역사 동안, 우리는 마음과 물질을 대치하고, 현실과 보여지는 것, 진리와 의견이 반대라고 생각한다. 미니멀리스트의 물체는 화해할 수 없는 것을 화해시키도록 하였다. 물체와 정신-개념-을 하나로 만들면서, 진리를 드러내고자 하는 강압적인 외형으로 다른 모든 의견을 숨죽이게 했다. 베클리는 초기 작업활동에서 이런 개념들의 유혹에 직면했다. 그는 그런 개념들을 상자 안 에서, 미니멀리즘의 격자무늬에서 구체화시켜서 그 마음대로 사용하고, 뛰어넘어서 더 이상 방해 받지 않았다.
베클리의 지난 5-6년간의 작업은 새로운 시대만큼이나 새롭지만, 이미 수 년 동안 그는 미니멀리스트의 선들을 줄기와 가지의 선을 이용해서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사용했다. 지난 1960년대와 70년대에 나무를 칠한 후부터, 그는 나무와 가지들을 사진작업에 썼다. 1980년대에 그는 나무잎사귀를 초록색 알루미늄 파이프 길이로 변용했다. 오랜 세월 동안 은유법은 진화했고, 암시는 가지를 쳤다. 하나의 작품에서 절대 하나의 의미를 뽑아낼 수 없기 때문에, 해석의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있다. 이치에 맞으려는 노력을 하고 또 그 노력을 피해가면서, 작품은 결과적으로는 그 작품 자체가 새로운 이치가 된다.

베클리의 아름다운 양귀비 이미지를 계속 바라보면서 공포감을 느끼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 내가 이 이미지들이 완전히 공포스럽다고 느끼는 내 감정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또 이렇게 그림을 읽고 있는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미술은 진실과 거짓의 문제, 진리와 실수의 문제를 낳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는 하나의 미술 작품이 관객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다. 베클리의 작품은 그것을 초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굉장히 자신있게 끌어당기고, 너무 자애롭기 때문에, 셀 수 없는 여정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일상적인 해석에서 벗어나서, 그는 우리의 빛을 향한 기분과 생각들을 유혹한다. 그의 작품은 우리의 인간성에 초점을 맞추게 하고, 인식하게 하고 세련되게 만든다.





빌 베클리(미국 펜실바니아 1946년생)는 초기에 페인팅으로 작업을 시작하였지만, 이후 사진의 매력에 빠져 1960년대 이후부터 사진과 텍스트를 병렬한 photo-text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개념미술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전체적인 작품의 성격은 색감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바크롬사진 Cibachrome photograph 작업을 통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과 식물의 줄기 사진을 사람 키보다도 크게 확대하여, 미세한 식물의 잔털까지도 포착하는 작업을 하는데, 이는 생명의 숭고함을 강조하고,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에 시선을 돌리게 한다. 또한, 조형적인 면에서는 추상 미술의 대가 바넷 뉴만의 색면(Zip)에서 영감을 받아 식물의 줄기를 거대한 기둥처럼 전체 화면에 배치하는데, 이는 미국 추상미술의 전통을 따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품에 제목처럼 병치되는 텍스트는 낭만주의 사조에 영향을 받아, T S 엘리엇 등의 낭만주의 시의 한 구절을 따오거나, 별자리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데 낭만주의의 텍스트와 생명을 표현하는 사진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게 된다.

소장처
현재 뉴욕의 MOMA,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 구겐하임 미술관, 워싱턴의 국립 박물관, 휘트니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스위스 바젤 쿤스트 박물관, 영국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 등 세계의 중요한 미술관과 박물관등에 소장되어 그의 작품의 예술사적 의미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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