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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가다가 - 한강르네상스, 서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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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동시대에 이르는 예술가들의 다양한 재해석을 통해 한강의 역사적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현재와 미래의 환경을 가늠해보는 전시이다. 다양한 매체와 심리적 접근으로써 한강을 재해석한 시대를 초월한 근·현대 작가 40여명의 작품60여점으로 구성된 전시는 관람객 각자의 꿈길 속 뱃머리를 여유 혹은 생각 폭으로 잠시 돌려주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배를 타고 가다가
한강르네상스, 서울展에 부치는 글



조주현 |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또 다시 “배”가 우리 삶의 중대한 이슈가 되어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뱃길을 되살리는 것으로 엄청난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것이라는 기대와 생태계,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양립하는 가운데, 각계각층의 다양한 시각에서 이 새로운 물길의 흐름을 관측하고 있다. 미술인의 입장에서 한편, 그 뱃길과 관련된 문화와 그로인해 양산될 문화 인프라는 과연 어디에서, 어디로, 어떻게 흐르게 될 것인가에 관심이 기우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호기심 내지는 일종의 문화의식의 발현으로 이 전시는 시작되었고, 그 어떤 정치적 사회적 가치판단을 더하기 보다는 작은 돛단배로 한강을 주행(舟行)하여 서울의 역사와 풍광, 가치관의 변화를 거슬러 올라가며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한강의 새로운 내러티브를 찾아내기 위해 출발한다. 본 전시를 관통하는 모티프인 “주행(舟行)”은 조선시대 최고의 풍류 시인이었던 백호 임제(林悌 1549~1587)가 지은 한시의 제목에서 차용한 것으로, 이 시에 감도는 전반적인 분위기와 같이 꿈 결 같은 뱃길을 홀로 여행하다 잠시 멈추어 비가시적, 공감각적 장소로서의 한강을 발견하고 새롭게 느끼며, 서울을 주거지로 살아가는 우리 일상 속 모퉁이에서 끄집어 낸 개개인의 기억 또는 역사를 되새기는 기회로 이 전시의 의의를 두고자 한다. 더불어 다시 숨을 가다듬고 새로운 상상의 장소를 향해 뱃머리를 돌릴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할 수 있기 바란다.

먼저, 그동안 한강이 우리에게 어떤 장소였는지 짚어보자. 삶의 터전이자 민족의 젖줄이고 생명과도 같은 의미를 지님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자명하다. 문제는 2008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 곳이 얼마만큼 특별함을 주는가이다. 글쎄, 특별함의 기준은 각기 다르겠다. 그럼 얼마만큼 신선하게 다가오는지 묻는다면? 2006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한강에 서식하는 괴물 한 마리를 등장시켜 한강을 일상성에서 벗어난 상상 속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평가되고 있다. ‘한강’하면, 오직 반짝이는 수면 위에 일직선으로 뻗은 교량과 자동차 행렬이 떠오르던 시민들은 이제 비 오는 동작대교 둔치에서 강두 가족이 괴물에 맞서는 사투씬이나 옥수빗물펌프장에서 현서를 찾는 강두와 희봉의 하수구씬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곧, 이 전시는 ‘한강’을 소재로 한 미술사적 고찰이라기보다 ‘한강’이라는 장소성을 바탕으로 역사를 거슬러 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공간의 재탄생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 상상의 장소, 문학과 영화, 생태학 등 다양한 접목을 통해 항상 곁에 있어 온 한강, 무관심 속에 내몰려 왔던 한강에 즐거운 상상, 진지한 목소리, 어렴풋한 희망과 신화를 부여하는 예술가들의 그러한 역할에 주목한다.

전시 구성은 시대 변화에 따라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먼저 전시장 1층에서 전시되는 는 조선시대부터 근˙현대를 지나오며 변화해온 시대상과 가치관의 흐름을 “도강(渡江)”에 초점을 맞춰 전개해 나간다. 객관적 사실주의나 자연주의 시각의 풍경화를 위주로, 고지도, 사진, 영상 작품들을 선보이는 첫 번째 파트는 서사적인 측면과 더불어 일정부분 도큐먼트적인 요소가 혼재해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한강 주변의 사라져 가는 풍경을 채집하고 기록하는 작업들, 한강을 정신적 고향(Heimat) 또는 민족의 정체성을 머금고 흘러 온 역사의 현장으로 인식하는 작업들, 인생의 동반자로서 휴식과 위안을 주고 시심(詩心)을 불러일으키는 한강의 모습을 시각화한 작업들로 구성되는 PART I.은 특히 당대 문학작품들과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한층 직접적인 내러티브를 전달한다. 한 편, 동시대미술가들의 한강 작업은 좀 더 심리적인 접근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시장 2층에 구성되는 에서 작가들은 한강이라는 장소를 보다 신화적으로 바라보고 장소 특정적(site specific)인 행보, 리서치 내지는 퍼포먼스로 인간과 자연의 조우를 시도하며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는 “유토피아 - 생명 - 신화 - 기억 - 르네상스”를 키워드로 전개된다.



PART I. 시간의 강을 건너

광나루, 삼밭나루, 동작나루, 노들나루, 양화나루 등 예전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뒤로하고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나루터. 도강(渡江)을 위한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한강의 나룻배는 1970년대 이후 강 위에 많은 다리가 개통됨에 따라 점차 그 자취를 감추며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 갔다. 홍순태의 60년대 사진에서 가장 최근까지 남아있던 양평 근처의 나루터 정경을 볼 수 있는데, 나룻배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 선 행렬과 냉차와 막걸리를 파는 노점상의 모습 등은 이제 사라져버린 연민의 풍경으로 기록되고 있다. 나룻배를 띄워 뱃놀이를 하던 모습을 그린 이철이의 수채화, 건설될 당시 서울의 큰 명물로 장안의 화제였던 한강 인도교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박득순의 <한강대교>, 6ㆍ25전쟁 때의 서울 시민들의 필사적인 피난 광경을 그린 이응노의 <한강도강>, 개발되는 강변의 풍정을 그린 박상옥의 <한강소견>과 같은 작품들은 이렇게 근대화과정을 거치며 급격하게 변해가는 도강(渡江) 풍경을 그려 한강의 내러티브를 만들었다. 이후 지금까지 27개의 교량의 건설로 이어지는 이 시간의 강을 건너는 동안 예술가들에게 ‘한강’이라는 소재는 끊임없는 애착과 연민의 대상으로 화폭에 담겨 왔다.



사라져가는 풍경에 대하여

르누아르가 그린 <퐁 네프>나 반 고흐의 <쎈느 강변의 봄> 등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보아 온 파리의 센느 강은 프랑스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파리를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누구에게나 그 이름만으로 설렘과 낭만,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그 곳의 정취를 그려 온 예술가들의 작품은 시간이 흘러 그 시대상을 들여다보게 하며 잠시나마 시간여행을 가능케 한다. 겸재(謙齋)를 비롯하여 서울을 근거지로 활동해 온 수많은 화가들 역시 한강의 풍류를 읊었다. 특히 개발의 과정을 바라보는 예술가들은 사라져가는 풍경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나 연민의 감정을 갖고 오래된 풍경의 발자취를 찾아 그렸다. 미술평론가 이구열은 “이러한 풍경을 그린 것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많은 시대적 변화를 보게 됨으로써 ‘옛날의, 또는 예전의 풍경’으로 기록성과 역사성을 스스로 내보이게 되는 것이다”라고 서술한 바 있다. 더불어, 이러한 풍경화는 역사적 기록의 차원을 넘어 장소의 특징과 이해를 가능케 함으로써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예컨대, <한양도>와 같은 고 지도는 도상학적 측면에서 장소의 특질을 반영한 상징화로, 서울의 옛 모습을 통해 미래의 풍경을 가늠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서울은 80년대에 들어서며 대대적인 한강개발이 시작되었고, 그전의 자연경관은 본격적으로 사라져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90년대 이후 증폭되는 강변도로 건설로 강은 이제 자연의 강이 아니라 인공의 강이 되어 사람들의 삶으로부터 더더욱 멀어져가게 된다. 원종철의 60년대 사진작품들은 오늘의 한강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휴머니즘을 담고 있다. 나룻배를 타고 일터에서 귀가하는 나른한 샛강의 오후 풍경, 차가 다니지 않는 수색철교에 수레를 이끌고 가는 상인의 모습, 빨래하는 여인들, 지게를 등에 지고 물 빠진 강을 건너는 노인의 삶의 무게 등을 포착한 사진 속 풍경은 시민들의 삶과 유린된 인공의 한강에서 거의 잊혀져 간 찰나가 되었다. 한강그림도 자연의 풍치와 소박한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정취어린 그림들보다는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개발되어가는 강변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다. 박석환의 공사 중인 강변 풍경을 그린 유화작품, 이동훈의 70년대 광나루와 성산동에서 바라 본 변화한 한강변의 풍경, 개발되기 전 옥수동 한남대교 부근의 강 건너 산동네 판자촌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린 이선우의 한국화,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변모한 난지도 쓰레기 산이 보이는 한강 풍경을 역설적으로 그린 백범영의 <20세기 유적-난지도 패총>, 사라진 광나루의 풍경에 대한 애상(愛想)을 드러내는 안석준의 <너븐나루>등을 통해 변천해 온 한강 주변의 모습과 가치관의 변화, 그 곳의 내일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Heimat. 고향의 강

[고요한]을 자리인 양편 [흐름] 우에
식은 심장같이 배 한 조각이 떳다.

아- 긴 세월, 슬픔과 기쁨은 씻겨가고
예도 이젠 듯 하늘이 저기에 그믄다.

- 김상용 <황혼의 한강> -

고향. 특히 ‘어떤 풍경이나 기후에 대한 향수’를 지칭할 때 해당하는 독일어 “Heimat(하이마트)”는 다른 언어에서 특정 단어가 정확히 대치되지는 않는다. 인문학에서는 주로 ‘인간이 그 안에서 살고 성장하는 삶의 총체적 상황이며, 개인의 정신세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원동력’으로 간주된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그리고 개인의 인생 여정 곁에서 유장히 흘러 온 한강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정신적 고향으로 자리해 왔으며, 역사적으로 시나 소설, 설화, 가사 등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그러한 비 물리적 실존으로서의 한강의 잠재력을 실감할 수 있다. 위의 시 <황혼의 한강>에서 시인 김상용(金尙鎔, 1902~1951)은 고향을 잃어버린 채 유목 생활을 하는 서울시민들에게 위안의 장소, 마지막 불변의 존재로서의 강을 묘사하고 있다. 평생을 바쳐 ‘한강’을 그려 온 혜촌 김학수(金學洙, 1919~ )와 창천 이억영(李億榮, 1923~ )의 작업도 이러한 맥락에서 상통할 것이다. 한강의 옛 모습을 그려 사라져가는 문화를 복원하고자 1960년부터 한강스케치를 시작한 김학수의 한강 그림들은 50여 미터에 달하는 긴 횡권의 두루말이에 연결된 작품들로 한강의 발원지부터 서울 한강에 이르기까지 지나간 역사와 삶의 모습을 장대하게 펼쳐내고 있다. 이억영 또한 70년대부터 한강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한강연작(漢江連作)을 그리기 시작하여 역사의 흔적이 배인 한강을 현재의 모습으로 그린다. 한강을 그림의 소재로 택한 이유에 대해 ‘우리 민족의 아득한 역사와 함께 태고시대부터 유유히 흘러온 국토 중심의 한강수와 오늘도 보게 되는 곳곳의 강변 마을 및 오솔길과 논밭의 생활 숨결은 우리에게 영원한 친근감의 대상이다. 그 영원한 친근감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말한 바와 같이, 한강은 민족의 체취와 품성을 형성해 온 근원이며 동시에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감수성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모티프인 것이다.

한편 시인 이근배의 서시에서 한강은 ‘어머니의 강’으로 비유되며, 우리 근현대사를 거쳐 오는 동안 어머니의 생애만큼이나 설움과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머금고 흘러 온 역사의 현장으로서 부각된다. 이러한 민족의 정기를 표상하는 작업은 사진작가 박홍순이 그의 일생의 프로젝트로 진행해 오고 있는 <대동여지도 Project>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김정호의 발자취를 생각하며 북한강의 남쪽 시작점인 평화의 댐과 남한강의 시작점인 정선의 아우라지부터 시작해 두물이 만나는 양수리 그리고 그 물이 합쳐져 한강이 되어 강화도로 빠지는 서해까지를 소재로 삼은 작가는 이 땅, 이 시기에 태어난 한 사람으로서의 숙명 내지는 사명감으로 변해가는 우리의 산하를 기록해간다. 또한, 붉게 물들인 한강을 영상작업으로 선보이는 심철웅의 <한강 in Red>에서 한강은 민족의 "피"로 상징되며, 생명의 순환의 원천이다. 그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한강은 오래전부터 서울의, 서울시민들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자리하며 정체성을 형성하였고 정신적 평안과 위로를 받는 장소로 곁에 있어왔다. 푸른 하늘 아래 평화롭게 떠다니는 유람선의 정경을 그린 최낙경의 유화, 춤추는 수양버들 사이로 보이는 한강의 여유와 푸근한 행복감을 전달하는 이인실의 <한강>, 한가로이 한강 둔치를 산책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그린 박득순의 <한강풍경>, 넘실거리는 푸르른 물결 뒤로 보이는 절두산 성지의 모습을 묘사한 최예태의 풍경화 등은 강물에 대한 향수를 북돋아 주고 있는 동시에, 낯설음을 초월하여 새롭게 삶을 확립해 나가는 곳으로의 한강을 표현하고 있다.



PART II. 한강에 누워

“우리는 자신이 점토로 빚은 형상을 위해 과감히 하늘로부터 생명을 가져오고자 했던 프로메테우스를 모방해야만 한다. 우리는 혹 원재료에만 만족한 채 나머지 모든 것은 우리가 잠자는 사이에 영혼이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 에라스무스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던 중세의 도시국가는 토지는 없지만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도시로, 도시는 곧 두뇌집단이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물길은 그 도시 사람들의 관계, 생각, 일련의 활동, 그밖에 소통하는 마음이 어우러져 고유한 물결을 형성하고 있다. 물길이 가시적으로 서울과 한강의 문화, 사회상을 따라 보여주고 있다면, 물결 위에는 한강을 둘러싼 수많은 요소들이 서려 비가시적으로 공유된 문화적 가치가 부유하는 것이다. 두 번째 파트에서 보여 질 동시대미술가들의 작업은 그러한 한강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시도들이다. 이들의 작업은 한강이라는 장소를 어쩌면 매우 이상적으로 바라보고(비록 그 곳에서 디스토피아를 그릴지라도) 끊임없이 상상력을 실어 서사성이 있는 신화적 장소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또한 그 미래를 제시하는 데 있어 다양한 학제적 연계 등 능동적이고 실천적인 태도로 접근한다. 이들은 장소 특정적(site specific)인 행보 내지는 퍼포먼스를 통해 끊임없이 인간과 자연의 조응을 시도하며 관조적인 입장에서의 사생보다는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새로운 내러티브를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유토피아 - 생명 - 신화 - 기억 - 르네상스

회색 콘크리트로 뒤덮인 한강 둔치와 한강 조망권을 향해 일렬로 늘어선 강변의 아파트 담벼락들은 과거 나루터 시절과 다르게 한강을 접근하기 어려운, 쉽게 가질 수 없는 그런 곳으로 만들었다. 아마도 이러한 것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서울시민들에게 한강을 더욱 ‘이상적’인 것으로 머물게 할 것이다. 박홍순의 사진작업 은 바로 그런, 철저한 유토피아를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그의 주관적 시각을 통해 재구성된 화면은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풍경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좋은 곳으로 보여 진다. 한강시민공원과 수영장, 농구장, 테니스장 등 한강주변 일대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은 분명 그것을 이용하고 있어야할 사람의 부재로 더욱 더 유토피아의 이미지를 극명하게 설명하며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끔 한다. 이러한 부재의 이미지는 사람들이 사라진 쓸쓸한 한강시민공원의 풍경을 그린 노충현의 회화작업 시리즈 <살풍경>에서 일종의 무기력감, 활기 없음 혹은 죽음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디스토피아(Dystopia)의 세계로 드러난다. 강을 사이에 둔 많은 고가도로들의 교각들과 그 교각을 버팀목 삼아 자라나는 이름모를 풀들을 재구성한 송명진의 상상의 풍경화 시리즈 역시 이러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 지점을 그린 것이다. 색이 바래고 부스스한 형체만을 남긴 식물들을 그리며 작가는 이러한 실재 풍경에 ‘손가락 인간’과 ‘초록실’을 매개로 사적인 상상력을 개입시켜 유토피아를 꿈꾸게 한다.



한 편, 도시 생태학적 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환경 문제를 클로즈업하여 미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김준현의 작업, 사람과 동물을 위한 보행전용 다리인 ‘생명의 다리’를 제안하는 김주현의 작업은 학제적 연계를 통한 실천적인 태도로 이상향에 접근하고 있다. 김준현은 보스턴의 찰스 강 유역에서 채집한 야생 초본류 수십 종과 서울 탄천의 서식 종을 비교, 관찰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두 지역에 분포하는 코즈모폴리턴 잡초인 외래종이 상당수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그 중 20가지 초목류를 고화질로 스캔하여 프린트하고 그 위에 드로잉하는 방식으로 현재 탄천의 모습을 보이며 메시지를 전달한다. 건축가, 생태학자, 도시환경전문가들과의 협업으로 진행될 김주현의 <생명의 다리> 프로젝트는 그물구조의 특수한 형태로 이루어져 사람, 동물, 미생물만 다닐 수 있는 일종의 생태다리를 제안하는 예술가의 상상력을 실현시켜가는 과정으로, 이를 통해 한강 주변의 미래 환경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또한, 채미현은 객관적 실천의 방식과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한강의 모습을 신화화하고 있다. 그것은 한강을 비롯한 1080군데에서 채취한 자연수를 각각의 실린더에 채집하여 전시장 바닥에 설치하고 레이저 빛의 파동을 이용해 “Life”라는 글귀가 사이클을 만들어 공간을 순회하도록 한 레이저 설치 작업 <시지프스의 신화-200801>로 시각화된다. 이는 강물이 흘러 바다로, 다시 구름 그리고 빗줄기가 되는, 끝없는 순환의 과정을 인간의 굴레, 숙명에 빗대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맥락으로 자연 회귀에 대한 사색의 여지를 제공한다.

2층 복도에 설치되어 양 편의 전시실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김승영의 <물징검다리>는 서울의 중앙을 가르며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한강의 모습을 은유하는 것으로, 한강을 일상적 삶의 부분으로 침투시켜 휴식과 회상의 장소로 표현한다. 서울 시민들의 수많은 사연을 기억하고 있을 한강의 벤치에 주목한 공공엘피는 우선 태양빛을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광합성 의자를 만들어 일상에 지친 시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며, 한강시민공원을 찾은 시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김승영의 작품 물징검다리는 수면 위로 비춰지는 주변 환경의 민감한 조응을 통해 현실에서 묻어나는 흔적과 시간의 흐름을 명상적으로 느끼도록 한다. 염동철과 강이연은 역사 또는 무의식 속에 묻힌 우리의 기억을 재편집하고 있다. 염동철의 다큐멘터리 영상 작업은 우리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진 꽃 섬 난지도에 대한 기억을 재탄생시키기 위해 과거 문헌과 자료를 바탕으로 이미지와 영상을 제작하여 난지도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인식시키고 있으며, 강이연은 무한한 속도감을 지니고 종횡으로 팽창하는 한강의 다리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영상을 통해 일견 낯설고 서늘한 서울의 풍경을 재탄생시킨다.

그럼, 이제 다시 배를 타고 가보자. 수천 개의 익명의 군상들이 얼기설기 돛단배를 만들어 허공을 가르는 김지현의 설치작업 <하얀 배>는 한강의 물결 속에 부유하는 민족성, 관계, 사회통념, 이상향을 찾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또한, 한강 유람선을 타고 강남과 강북의 아파트들을 마주한 서울의 강변모습을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든 이득영의 <한강프로젝트 3:Every Building>은 인간성이 배제된 도시 풍경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오늘의 서울을 느끼게 한다. 요즘 서울 시내 곳곳에서 상당히 자주 볼 수 있는 단어, ‘르네상스’는 분명히 많은 대발견이 이루어진 새로운 시대였다. 그것은 문명화된 인간성의 진정한 전통으로의 복귀였던 것이다. 오늘날 한강을 그리는 동시대작가들 중 겸재의 진경산수 정신을 이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많이 볼 수 있다. 그가 남긴 경교명승첩(간송미술관 소장)에 실려 있는 한강변 모습의 특징적 요소는 화면 속의 인물로, 주로 뱃일에 관계되는 상황을 묘사하며 서민들의 일상적 모습을 담고 있다. 생명력 넘치는 삶의 참모습을 묘사한 겸재의 진경 산수 정신을 오마쥬(Homage)하는 현대작가들의 작업은 김현철과 여 운의 작품에서 보이듯 그의 발자취를 따라 사생하며 그 시대를 제고(提高)하거나, 김보민의 화면에서 보이듯 전경에는 현재의 도시풍경을, 후경에는 겸재 시대의 자연풍광을 배치해 어울리지 않는 충돌을 만들어 서울에 대한 관념적 이미지와 실제 공간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며 새롭게 재현하고,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을 꿈꾸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시대부터 동시대를 잇는 예술가들의 다양한 해석과 접근방법으로 바라 본 한강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요구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해 온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 오늘의 한강은 또 다른 시대적 요구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한강은 우리의 공유된 가치를 반영하는 문화적 결을 비추는 동시에 생기 넘치는 내러티브를 담아 살아 숨쉬는 강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러한 시대, 새로운 도시를 창조할 수 있도록 자신이 빚은 형상을 위해 하늘로부터 생명을 가져오고자 했던 프로메테우스의 정신을 닮은 예술가들의 역할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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