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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 동시성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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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의 각인(刻印), 그 공시성(共時性)의 풍경


장동광 | 미술비평,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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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의 유리조각 작품에는 모순적 상황이 각인되어 있다. 흐름과 움직임에 관한 어떤 정황이 순간의 정지된 상태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마치 빙하 속에서 부패되지 않고 남아있는 생명체의 화석처럼 과거의 현존성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순간 포착의 기계장치-카메라나 현미경 등과 같은-를 통하지 않고는 도저히 구현이 불가능한 현상을 재현(再現, represent)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그의 근작들에서 주된 표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물방울’, ‘물의 파동’, ‘색의 자연적 흐름’ 등이 바로 그러한 구체적 근거들이다. 주지하다시피 물방울이나 물의 파동은 특별한 조건 속에서만 입자의 형태를 포착할 수 있는 지극히 유동적인 자연의 본원적 질료 중의 하나이다. 일찍이 그리스 자연주의 철학자들은 자연의 네 가지 원소로 물(水), 불(火), 흙(土), 공기(空氣)를 제시하였다. 르네상스기의 천재화가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도 파도와 소용돌이를 형성하는 물의 움직임에 관한 연구의 과정으로써 적지 않은 소묘를 남긴 바 있다. 물은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절대적인 요소이면서 자연의 섭리를 가장 극명하게 반영하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하다. 순수한 물 없이 우리 인간은 어느 누구도 존엄한 생명을 존속해 나갈 수는 없다. 그래서 물은 생명의 시작이자 종착점이며, 인간이 희구하는 유토피아(Utopia)를 구축하는 영원한 모성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상민은 프랑스의 명문 아카데미인 스트라스부르그 조형예술대학교에서 유리예술을 전공하고 돌아와 유리라는 매체가 가진 질료적 특성을 조형적,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는데 주력해 왔다. 주지하다시피 유리(琉璃, Glass)는 석영, 탄산소다, 석회암을 섞어 높은 온도에서 녹인 다음 급격하게 냉각하여 만든 물질로서 투명하고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한자로는 ‘초자(硝子)’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 역사적 유물을 통해 밝혀진 바로는 기원전 15세기부터 이집트에서 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유리 제작기술이 발명된 이래로 인간의 문명 속에서 유리공예는 도자기와 같이 그 제작과정의 난이도로 인해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귀족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값비싼 호사품의 제작에 국한되었다. 유리는 다른 어떤 재료도 흉내 낼 수 없는 투명성과 빛의 투과성으로 인해 성당과 같은 건축공간을 장식하거나 장신구의 치장에 소용되거나, 내용물이 비치는 액체를 담는 유용한 용기로 제작되어 우리의 생활문화를 채색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19세기경부터 판유리에 색안료를 부가시킨 스테인드글라스가 일반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했고, 유리공예 본연의 기능이었던 실용적 도구성에 머물지 않고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새로운 경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세기 들어서서는 유리공예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를 비롯한 동유럽이나 미국의 유리예술가들이 나타나 유리를 회화, 조각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데 괄목할만한 기여를 했다.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유리예술도 디자인 산업제품의 영역에서나 예술적 표현의 지평에서 국제무대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 희망적 징후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물결 속에서 이상민은 프랑스에서 귀국한 지난 2000년도 이래, 유리의 예술적 표현가능성을 탐색하는 가운데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견 유리예술가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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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은 유리를 매체로 다루고 있는 작가들 중에서 주로 판유리 제작기법에 천착하고 있다. <2001 MANIF>전에 기성 유리병 제품에 실리콘 몰드작업으로 귀를 캐스팅한 설치작업을 발표한 것을 제외하고는 판유리를 사용하여 뒷면을 파내어 음각의 조각적 형태가 시각적으로 양각화되어 보이는 일루전(Illusion)의 미학을 실험해 왔다. 이 일루전 미학에의 천착에는 몇 가지 주제 특정적(theme specific) 사유가 반영되어있다고 여겨진다.





첫 번째는 ‘물의 파동(wave of water)’에 관한 조형적 탐색이 그의 근작들을 관통하고 있는데, 이는 유리가 가진 투명성(透明性)과 투과성(透過性)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대상성에서 주목한 것이라 해석된다. 물의 파장이라고 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현시적(非顯示的)이고 동태적(動態的)인 자연의 현상이다. 지구의 중력이라는 물리적인 현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물은 액체성, 유동성과 같은 존재론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고체(얼음), 기체(수증기)로 변이되는 순환적 관계성의 산물이다. 이러한 물이 파장이나 흐름, 물결 등과 같은 또 다른 지각성(知覺性)과 연결되면 문제는 한층 다른 층위로 전개된다. 이상민은 이러한 물에 관한 지각성, 현시성, 시각적 고형성(固形性)을 드러내기 위한 조형적 각인(刻印)을 시도해 오고 있는 것인데, 이는 그가 오랜 동안 추구해 왔던 주제의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즉 그의 스트라스부르그 조형예술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주제가「예술에서의 감각들의 기억놀이」였다. 그는 석사학위 과정에서부터 이미 ‘감각’과 ‘기억’에 관한 문제를 탐구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바 있다. 2001년도 개인전이 청각 즉 음의 파장이나 소통의 창구인 귀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이었다면, 이후 그의 작품은 물의 파장에 관한 조형적 천착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의 작가노트에 의하면 “유리라는 질료의 맑음과 투명성과 유리라는 물성을 통해 어린 시절 강가에서 물수제비 뜨며 놀던 동심에서 연유된 교차, 물결, 파동, 흐름과 같은 추상적 형상을 이미지화하려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그는 물의 파동은 타자의 개입으로 인한 새로운 형상이라고 말한다. 이 타자와의 관계성이 그에게는 중요한 조형적 관심사인 셈이다. 그의 근작들이 이러한 맥락에서 <기억의 흔적>, <시간의 흐름>, <반영의 연속성>, <에고>, <자기반영> 등과 같은 제목을 수반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두 번째는 이상민에게 있어서 ‘시간의 흐름(Flow of Period)’은 중요한 주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2005년도 헤이리 MOA건축갤러리에서 열렸던 개인전이 그 자명한 실체를 보여주었다. <움직임>, <반영>, <현재>, <심상의 흐름> 등이 작품에서 그는 미묘한 색채의 흐름이 유리사이에 흐르는 가운데 물의 파장이나 동적인 유동성이 시선을 사로잡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것은 마치 해저(海底)의 심연(深淵)을 부유하는 어떤 생명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작품을 비치는 조명의 각도에 따라 형태의 부조성이 차이를 가지면서 가변성을 지닌 물체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개인전에서 비평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그것이 물의 파장이던, 어떤 요철의 형태가 미지의 물체성을 상기시키던 간에 그것이 지닌 정지된 형상성이 유동적 지각을 파생시킨다는 것이었다. 이 가변성과 불변성의 간극 사이에서 그의 표현적 특징은 결국 시간의 흐름의 시각화로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끝없이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가 구현해 낸 형상들은 가변적인 빛이 빚어낸 허상들, 일루전의 거듭된 지각적 혼돈성이라 할 것이다. 이 지각적 혼돈성은 심상용의 표현처럼 ‘존재의 너무나 확고한 제한이면서 동시에 숭고한 두 질서, 즉 시간과 자연의 교차’라는 지적과 동일한 지평선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이미지와 물질성, 실재성과 환각성을 교호시키면서 이상민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선형적 인식을 조형적으로 현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허상과 환영들에 내재한 시간의 질서, 무의식의 내면에 유목하는 심상적 이미지의 표층화는 이상민의 유리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가변성의 불변적 형상화, 음각의 돌출적 지각과 같은 이 모순의 극단화가 그의 작업에서는 미학적 의미를 발현하고 있다.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가 천착하려고 하는 조형의식의 근저에는 자연의 내재적 질서와 기억의 현존성을 교차성의 평면에 재구조화하려는 시도가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얘기했던 ‘주름(Pil)’론과 관련하여 “밖은 안을 만드는 주름과 접힘이다. 안이란 바깥의 다름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밖의 안이다”라는 언급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할 것이다. 이상민의 시간의 흐름은 이처럼 자신의 내적 기억들에서 생성된 유동적 이미지를 주름을 접듯이 외재화한 것으로, 더 깊은 곳을 향한 바깥의 사유인 것이다.



세 번째는 이상민의 이러한 바깥의 사유로서 주름공간은 공시성(共時性, Synchrony)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공시성은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자신의 기호학에서 제시했던 것으로 통시성(通時性, Diachrony)와 비교되는 개념이다. 공시성이 구조적이라면, 통시성은 역사적인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의 역사적 기원 혹은 통시적 차원에 주목했던 기존 언어학과는 달리 언어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무의식적 구조 즉 자율적 공시체계로 보고, 시간적 선후에 관계없이 나타나는 불변적인 현상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이상민의 근작들은 하나의 파롤(parlole)과 다른 체계 즉 랑그(Langue)와 같은 기호체계나 법칙 혹은 구조로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가 진행해 온 물의 파동이나 시간의 흐름과 같은 주제의식들은 하나의 무의식적 기표로서 작용하며 자체의 내재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자체의 내재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표현의 양상이 되었던 간에 유리의 투명성이라고 하는 물질적 특성 혹은 구조를 벗어나면 그 의미를 발생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상민의 작품이 통시적 개념에 합당하려면 자신의 물의 파동에 관한 조형적 주제가 그것이 회화든, 조각이든 혹은 도자, 금속, 섬유 등에서도 그 의미전달이 가능해야 한다. 이 통시성의 개념인 특정한 배열의 연속선상에 위치하려면, 자신의 예술표현의 맥락이 다른 구조로의 이행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근작 유리작품들은 투명성, 투과성, 안료에서 연유된 색과 형태의 교차성과 같은 자체의 자율적 구조 안에서만 의미생성이 가능하다. 이처럼 이상민이 지향하고 있는 예술적 좌표는 유리의 물질적 특성인 투명성, 투과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소재로서 물의 파동, 그 가변적 현상의 형상화에 집중해 왔다. 그리고 그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Mirror drop>이라는 거울의 효과를 부가한 새로운 연작들을 발표하게 된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앞과 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모순적 상황으로의 잠행(潛行)이자, ‘주름과 접힘’에 관한 바깥의 사유를 더욱 확장해 가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장 멀리 바깥으로 나가, 가장 깊은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것”으로서 이상민의 유리작품들은 “생동적으로 움직이는 질료”와의 향연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은 불가분의 세계, 시간과 자연의 흐름조차 정지된 세계이다. 이상민은 이 공존의 질서 속에서 빛과 어둠, 실상과 허상, 안과 바깥이 더떤 차이를 빚어내는 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그것은 초현실적 평원에서 생성되는 구름처럼, 저 닿을 수없는 해저의 심연에서 부유하는 생명체의 호흡처럼 우리의 시선을 향해 다가섰다가 사라진다. 그는 유리를 통해 이 존재의 생성과 소멸의 가없음, 다가섬과 사라짐의 환영, 중심과 외곽의 끝없는 흔들림과 같은 필연적 관계성들에 관한 사유를 예술의 영토에 새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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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것은 흐른다. 그것은 가역(可逆)될 수 없는 시간과 변화의 숙명성이 우리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상민은 유리예술을 통해 이 시간의 흐름, 그 현재적 지각을 화석처럼 고착화시키고 있다. 그 현재적 지각의 대상은 물의 유동적 흐름이며 파동의 순간적 포착이다. 이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현상의 포착이 그의 조형적 현시이다. 이 허상과 환영의 미학이 그에게는 기억의 표면화로, 끝없이 교섭하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성으로 재맥락화되고 있다. 물은 또한 순수성의 표상이며, 생명의 근원이며, 물리적 순환성을 지닌 자연의 질료이다. 그는 이 근원적으로 유동적인 물의 파동을 조형적인 형상으로 고착화함으로써 가변성과 영원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흐르는 것이고 무엇이 정지된 것인가.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이미 존재론적으로 허상의 그림자가 아니던가. 우리 곁에 흐르는 물은 얼음의 후행성(後行性)이며, 기체의 선행성(先行性)이 아닌가. 이 선형과 후행의 중간지대에서 물은 우리의 삶의 행적을 그대로 반영하는 환경의 거울인 것이며 또한 우리의 현실을 관류하는 생명의 영토, 그 내면의 혈관이다. 이상민은 유리의 질료가 가진 자체투명성과 불순물을 허용하지 않는 판유리의 순수성에 기대어 우리 삶의 찰나성, 영원성의 문제를 새롭게 환기시키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이 비고정적이고 비형상적인 물의 존재성에 관한 철학적 자각(自覺)이자 조형적 헌시(獻詩)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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