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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민 조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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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칭: 최병민 조각전

전시기간; 2008년 12월 10일 - 12월 16일

전시작품: 40-50여점의 조각

전시장소; 모란갤러리(현재 화봉갤러리로 명칭변경)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7-28   전화. 02)737-0057




최병민의 작품 소개 - 본 개인전 이전의 작업에 대하여


최병민의 작업은 지난 30년 동안 그 내용에 있어서 일관되게 진행되어 왔다. 모더니즘이 맹위를 떨치던 70년대 중반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인간’, ‘운명’, ‘신화’, ‘일상’ 등의 소재를 통해 그가 다다르고 싶은 ‘인간형’을 조각으로 구현해 왔다. 



가. 첫 번째 개인전--음각부조(陰刻浮彫)


최병민은 30대 후반인 1988년 첫 번째 개인전(제3 미술관)에서의 음각부조의 독특한 형식과 느낌을 통하여 우리나라 인체조각의 한 부분을 개성적으로 드러낸 작가란 평가를 받았다. 당시 미술평론가 성완경은 리뷰(국민일보 1989. 1. 12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본질적으로 죽음과 존재, 인간의 유한함과 현실이 거역할 수 없는 힘들에 대한 명상을, 체관화 허무, 분노와 연민을 표현하고 있다. 능숙한 기량의 그의 음각부조에서 빛과 어둠으 교차가 거꾸로 빚어내는 어둠의 허상 --존재의 허공에서 존재의 환영을 읽게 해주는--은 존재와 비존재, 탄생과 스러짐이 교차점에 불안정하게 붙잡혀 있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또 다른 메타포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나. 2, 3, 4회 개인전--환조


이후 최병민의 작업은 그 내용적 기조나 주제는 그대로지만, 조각 형식에 있어서 환조로 전환한다. 1992년 금호미술관, 1993년 나무화랑에서의 마께트(Maquette)전, 1995년의 나무화랑의 개인전은 당시 불 붙었던 최병민의 조각적 기량과 독특함이 거침없이 보여진 전시였다. 뼈와 살을 훝어버린 최병민 특유의 인체해석과 고대의 신화, 전설, 샤머니즘 등의 나이브(Naive)한 배경의 결합으로 현대 인체조각에 있어서 한국적인 근원과 형상성을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화단의 많은 작가들이 최병민의 작업을 ‘작가주의’적 이라 평가하며 주체적이고 한국적인 조각의 원형(原形)으로 인정하였다. 출세주의 상업주의와 타협하지 않은 채 뚝심으로 자신의 작업을 견인한 시기였다. 이때에도 마찬가지로 미술평론가 성완경은 개인전 서문(1992년)을 통해서 최병민 작업의 진행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 중략 … 새로운 ‘열려짐’ 비슷한 것이라고 해야될지 모르겠다. 이전의 그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경지로 ‘전개되어’ 나아가는 것이 감촉된다. 이제 우화는 하나의 신화로, 보편적 윤리와 세계관으로 통합되어진 하나의 문화로, 변모되어 가고 있는 중인 느낌이다. 문화적 완충효과의 장치같은 것도 추가되었다. 문화, 전통, 상징 같은 것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추가된 기술적 장치라기보다는 문화의 원형(原形)을 느끼게 하는, 원형을 찾아서 그 원향을 통해 얘기하려는 예술적 장치 --단지 장식이나 기술로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문화의 원형에 대한 환기를 통하여 세상사와 우주에 대한, 삶에 대한, 작가의 세계관이나 윤리같은 것을 드러내려는 그런 장치--인 것처럼 보인다. 명상적이고 은둔적인, 다소 운명론적인 체관을 느끼게 하던 그런 허허로움이나 냉소적 달관의 느낌 대신에 보편, 세계의 긍정, 문화의 긍정 또는 보다 저극적인 문화의 표정 같은 것이 느껴지고그리고 그 표정의 풍부함이 감촉된다. 우화, 상징, 표정 등은 보다 구체현실적인 세계와 만나고 문화의 열려진 표지와 그 다양함에 결합되어 드러간다. 이 결합은 은둔적, 관조적이 아니라 동적이고 적극적이다.단지 현실을 바라보는, 세상사와 보편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변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변했다. 보다 극화(劇化)된, 극적 연출의 방식을 따름으로써 문화적 표정의 보다 풍부한 형식들에 결합되어 들어가고 있다.  … 중략 … 

<성완경, 최병민 개인전 서문 ‘구름을 훔친 사람들’중에서, 1991>


1회 개인전에 나타난 최병민 작업에서의 인간상보다 긍정적이며 전향적인 내용변화를 포착한 것이자, 그 내용에 더불은 형식적 진일보를 포착한 것이다.



다. 공백기


95년 나무화랑에서의 개인전을 끝으로 최병민은 길게 침잠한다. 물론 작업은 꾸준하게 진행하고 다수의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했으나 개인전은 좀처럼 열지 않았다. 느린 변화를 모색하는 시기였던 모양이다. 물론 최병민 개인적으로도 오랫동안 근무하던 보성고등학교 미술교사를 그만두고 경기도 양평에 작업실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몇 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개인전을 열지 않은 결정적 이유는 보다 성숙한 변모로의 모색이 무엇보다 중요해서 였을 것이다. 최병민만의 냄새와 내용전개야 일직선상으로 흐르고 있지만 조각적인 새로운 맛에 대한 작가적 부담이 그를 주저케 한 것으로 유추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작업에 대한 모색과 실천은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라. 5회 개인전(2008) - 모란갤러리


이렇듯 두문불출하며 암중 모색기를 보내던 2003년부터 새로운 형식과 표현의 맛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신작이 시작된 것이었다. 바로 이번 개인전의 주가 되는 작업들이다. 인체는 유연하게 부드러워지고, 그러면서도 보다 확장된 상징성을 보여준다. 

더불어 인간존재에 대한 작가의 인식도 더욱 능동적으로 나타난다. 건강성과 미적이상이 표징된 인체는 세계에 대한, 그리고 우주에 대한 원형적 인간과 문화를 보여준다. 거기에서의 인간은 보다 순수하게 자연과 우주와의 합일을 시도하는 때 묻지 않고 지혜를 구하는 인간이다. 


최병민 조각의 미덕은 바로 그만의 조각적 형식과 더불어, 넓고 광대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인체에 축약해 내는 침묵의 음유(吟遊)와 은유(隱喩)의 발성법과 표현법이다. 소급해 보자면 그 침묵은 작품인물에서의 감각기관인 눈과 입의 생략과도 마찬가지로 일맥상통한다. 그 중에서도 눈의 약화와 입의 생략은 최병민 작품 읽기의 중요한 모티프를 제공한다. 묘사되어 있으나 흐리게 처리된 눈은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그 시선의 방향과 표정으로 작품의 주요 포인트가 된다. 눈은 무언가를 보는 감각기관이지만 눈을 뜨고 있을 때 사물이 저절로 보이기도 한다. 의식/무의식적 감각/지각행위이자 능동/수동을 아우르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병민의 작품에서의 눈은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눈이다. ‘凝視’라는 제목처럼 의식적인 바라보기 혹은 관찰이다.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앎의 의지, 즉 지혜를 구하는 행위다. 거기에는 올바로 봄과 올바로 인식하려는 인간의 지혜를 향한 원형적 본능이자 의지가 전제된다.  

눈에 비하면 입은 아예 묘사되어 있지도 않다. 봉인된 입. 말에 대한 절제, 혹은 묵언. 말을 한다는 것은 철저하게 화자의 의지가 있을 때라야만 가능하다. 감탄사나 비명 등을 제외한 말은 상호소통을 단서로 한다. 이성적 행위란 것이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어딘가 집중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무언가를 응시하며 거기에 눈이 몰입되어 있을 때, 그리고 그 대상과 현상을 분석하고 알고자 애쓸 때 말은 필요치 않다. 오히려 깨우침에 방해가 된다. 깨우친 이후의 말은 지혜가 되지만 깨우치기 전의 말은 군더더기다.  

바로 이 때의 응시는 세계와 현상이 인간의 지식에 의해 개념화되기 이전 원초적 상태에서의 인지작용을 의미하기도 하며, 또 개념에 의해 사람의 순수한 감성과 인식이 방해받지 않아야 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최병민 조각의 이 묵언(默言)을 수행하는 사람이 순수한 상태의 인간형이라거나--춤과 놀이와 사유와 노동을 하는 형상들--세계와 존재에 대한 직관적 깨우침을 지향하며 제의에 참가한 수행자나 예지자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속되지 않고 진리를 구하는 이들은 현자(賢者)다. 그런 현자의 침묵이 절제된 조각형식을 통해서 체현되어 나올 때 소재인 사람과 작가의 정신성이 동시에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2008년 김진하의 개인전 서문 

<투명한 인간, 그 아름다움에의 獻辭 - 최병민의 근작 ‘응시’에 대하여>중에서----



근작에서 최병민은 그의 년륜이나 나이와 비례하는 세계인식을 보인다. 회갑(回甲)이 되어가면서 그야말로 그 뜻처럼 어린 시절의 맑고 투명한 시선으로 회귀한 것일까. 아니면 인생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한 순수함에의 의지일까. 그러나 어느 쪽이든 최병민이 지향하는 인간에 대한 캐릭터는 그의 조각에서 최병민만의 어법과 상징으로 순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경건한 육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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