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한국 미술사 + 화가의 초상'전은 미술사의 기록과 그 기록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한 공간에 풀어낸 전시로 조선 시대까지의 우리 미술사를 다룬 문헌과 현대 작가들이 재해석한 미술가의 초상을 만나볼 수 있다.
한 공간 안의 현대 작가, 옛 화가, 그리고 그들이 만든 미술이야기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2009년 특별기획으로 한국미술사와 회화, 조각을 다룬 저작과 미술사 속의 중요 화가를 현대의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전을 마련하였다. 20세기 미술학자가 그려낸 ‘한국미술사’와 20세기 화가가 상상한 ‘조선화가의 초상’이 한자리에 어울리는 최초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내면을 비추는 거울 화가의 초상김지연 | 미술이론
한국미술의 역사를 문헌자료로 살펴보는 자료전과 함께 열리는 이번 전시는 오늘의 작가들이 조선시대 활동한 화가 10인의 초상화를 그려 선보이는 식으로 구성하였다. 미술사의 주인공인 화가를 앞세워, 까마득하기는 하지만 후배세대 작가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의 초상화를 그려 한국미술사를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만들어본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초상화가 남아있는 작가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는데, 기존의 초상화 고려 및 활용 여부는 자율에 맡겼으니, 초상의 사실성보다는 작가들의 선조화가에 대한 재해석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이 전시는 작품보다 작가가 중요해진 시대에, 다만 작품과 이름만 남아 있을 뿐 그 얼굴을 알 길 없거나, 무심하게 기억 저편으로 밀어버린 선조 화가들의 얼굴 찾아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옛 화가들은 초상화를 제작할 때, 터럭 한 올이라도 일치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라는 가르침 아래 극도의 사실성에 바탕을 두고, 개인의 표피적인 외모 너머에서 보이는 그 인물 내면의 성격, 인품, 교양, 정기 등 정신세계를 반영한 ‘전신사조(傳神寫照)’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초상화는 전통적인 규범과 형식을 따라 ‘원본’에 충실해야만 하는 장르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가의 창의력이 발휘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원본’에 충실해야 하는 족쇄에서 자유로운 오늘의 작가들은 이번 전시에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옛 화가의 ‘전신사조’를 드러내 보인다. 그 속에는 전통과 오늘이 어떻게 조우할 것이며, 역사는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들의 질문이 녹아들어 있다. 이는 작가들 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보아야 할 과제일 것이다. 이 전시가 그러한 문제에 대해 특정한 답을 던져줄 수는 없겠지만, 한국미술의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고 익히며, 연구의 또 다른 방향을 모색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 색을 지워냄으로써 형상을 드러내는 작업방식으로 유명한 석철주는 홍매와 백매 한 가운데 고즈넉하게 앉아 있는 조희룡의 좌상을 대련 형식으로 그렸다. 1861년 유숙이 그린 <벽오사 소집도>에 있는 조희룡의 모습에서 형상을 취해, 조희룡의 얼굴은 드러내지 않고 앉은 자세만을 그렸다. 세부묘사가 지워진, 비어있는 형태를 통해 작가는 인물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 종이부인 정종미는 죽향과 신사임당을 선정했다. 19세기 전기에 이름 높은 명기였던 죽향은 시화에 능했는데, 특히 난초와 대나무 그림에 빼어난 인물이었다. 작가는, 얼마 되지는 않지만 남아 있는 그의 시가 드러내는 정서와, 그림이 보여주는 필체, 선의 움직임, 꽃의 묘사, 화면의 구성을 보면서 죽향의 화려하고 풍부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고 이 느낌을 바탕으로 작가 주변의 많은 여성들 가운데 유사한 이미지를 가진 이들의 눈매, 표정 등을 관찰하면서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여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완성하였다.
● 판화의 판형을 스테인리스 스틸에 양각 세공-포토에칭-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김홍식은 강세황과 김정희의 초상을 보여준다. 작가에 의해서 재해석된 강세황의 이미지는 70세에 화가가 직접 그린 자화상에서 가져왔다. 머리에 사모를 쓴 채, 평복을 입은 자화상의 기이한 복장에 흥미를 느낀 작가는, 그 속에서 강세황의 인품을 가늠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화가의 초상과, 그의 작품 가운데 본인이 생각하는 작가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을 혼성하여, 작가의 내면이 잘 드러나는 새로운 초상화를 제작한 셈이다.
● 오지의 아이들 초상을 그리고 있는 임영선 작가는 우리 회화사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윤두서의 자화상을 선택했다. 작가는 우리 눈이 보지 못하는 윤두서의 상체를 선으로 그리고, 하단에는 작가가 살았던 고택을 그려 넣어 미완성처럼 보였던 초상을 완성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본의가 퇴색되거나 왜곡되기도 하지만, 결국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고 마는 역사의 흐름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연극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신진작가 이정웅은 김홍도 초상을 그렸다. 당돌한 눈빛을 가진 인물의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주변에서 비슷한 인상을 가진 지인을 찾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의복을 입힌 뒤 김홍도의 모습으로 분한 뒤 화폭에 담았다. 중인이라는 그의 사회적 위치, 그럼에도 당당하게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되어 명성을 얻은 그는, 붓을 통해 사회와 세상에 대하여 생각하고 소통하는 화가의 의지를 드러내기라도 하듯이 한 손으로 당당하게 붓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오은희는 부용과 김정호의 초상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하였다. 왼쪽에는 부용의 초상을, 오른쪽에는 김정호의 뒷모습을 설치하여,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두 인물이 만났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그림을 통해 그 둘이 만나는 현장을 꾸몄다.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는 역사적 인물의 초상을 통해 새로운 상상의 장을 펼친 것이다.
● 이진준은 조선시대 화가가 아니라 바로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초상’을 제작했다. 그는 작가들에게 10분의 시간을 주고, 그들이 받고 싶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나갈 것을 요구했다. 현재진행형의 작가들이 자기 스스로 10분의 시간을 통제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변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에 정말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객에게 질문한다. 그의 작업은 횡적으로, 종적으로 소통을 꿈꾸지만 쉽지 않은 예술가의 현실과 그들의 초상에 대한 생각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 미술사 미술사학은 꾸준히 논의되어 광복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 미술사에 관한 학자들의 많은 연구업적이 구축되었고, 미술의 역량 또한 크게 높아졌다.
<한국미술사>전에서는 우리 미술사를 아우르는 통사서를 비롯하여 19세기까지 내용을 담고 있는 회화, 조각 작품과 사조를 연구한 국내외 문헌과 작가론, 미술 교류 및 지역별 미술, 사전류 등을 조명하였다. 수많은 한국미술사 관련 책 중에서 특히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을 엄선하여, 재분류함으로써 우리 미술사의 올바른 정립에 대해 재고해본다.
한국의 미(미학)깊이 있는 연구서와 함께 따뜻한 수필집까지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한국의 미>전시는 일 백 년 동안 추구해 온 조선의 아름다움과 한국미론의 다양하고 풍부한 성격을 확인 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이다. 우리 미술사에서 한국의 미는 여러 학자에 의해 이야기되어 왔다. ‘비애’에서 ‘해학’까지 깊이 있게 오고가는 폭넓고 풍요로운 담론은 그 자체가 우리 미술의 가능성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