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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화가 문복철 추모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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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복철의 두 번째 유작전으로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회고전 형식의 한원미술관 특별기획전
책임기획 | 박옥생

한지 화가 문복철(1942-2003)의 작품세계

유재길 | 홍익대교수. 미술비평


이번 전시는 문복철의 두 번째 유작전으로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회고전 형식의 한원미술관 특별기획전이다. 첫 번째 유작전은 작고 후인 2004년 전북 전주에서의 국제종이조형작가 초대전이었다. 당시 “별은 빛나고”라는 제목으로 열린 초대전은 2000년대 초반부터의 국제종이조형협회(IAPMA) 정회원 활동과 이 단체 총회를 국내에 유치하게 된 결실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는 종이 제작에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주의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초석을 이룬 공로와 미완의 한지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유작전 이였으며, 이번 한원 미술관 전시는 그의 작품세계 전모를 확인하고 재조명하려는 기획전으로 진행된다.

2010년 한원미술관의 문복철 기획전은 무엇보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종이’와 ‘추상성’의 의미를 새롭게 읽어보면서, 나아가 그의 회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조형적 특성과 변화를 확인하고자 한다. 주지하듯이 문복철은 캔버스에 종이를 겹겹이 붙여 나가는 추상표현양식의 회화적 작업을 30여년 넘게 작업을 해왔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는 한지를 사용하면서 형상의 재현이나 대상의 사실적 묘사에서 벗어나, 종이 그 자체의 독특한 물질의 특성 그리고 작가 자신의 행위성을 통한 조형예술로 주목받아 왔다. 그의 한지 작품은 작가의 소박한 감성과 날카로운 감각이 묻어나면서 삶의 소리를 그대로 담아내는 추상표현의 시각적 탐구였다.
누구보다 오랫동안 그는 한지를 이용한 종이 작업을 통해 현대회화에서 형상보다 더 중요한 재료의 중요성을 발견하였다. 1970년대 중반 한지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면서 상승 기류와 같은 물리적 교감의 시리즈 작품을 제작하고, 나아가 삶의 표정으로 춤과 소리라는 감각적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는 현대회화에서 조형의 실험적 탐구와 동시에 삶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숙고하게 만드는 실재의 문제들에 대한 연구 작업이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구체적 형상이나 추상만이 아닌 물질(종이)과 색채,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행위의 기호들이 화면에 자유롭게 등장하면서 다양한 조형적 변화와 양식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어 왔다.

1) 실험기와 앵포르멜 추상(1962-1978) ; 〈Work1962〉, <상황1964-65> <기념비1976-78> 연작시기

문복철은 대학 재학 중인 1962년 10월 국전에 앵포르멜 추상화로 입선을 한다. 습작기에서 그는 앵포르멜이라는 하나의 모더니즘 회화 양식에 머물지 않고 변화를 모색하기도 한다. 1962년 대학 재학 중 무동인(無同人) 그룹에 참여하면서 추상이 아닌 오브제를 사용한 네오 다다적 경향이 그것이다. 앵포르멜에서 벗어나 콜라주와 오브제 작업, 그리고 1967년 7월 서울 중앙공보관에서 있었던 한국 청년작가연립전에서 해프닝 등을 발표하는 실험적 작품들을 제작하고 보여준다.
이어서 앵포르멜 이후 실험기에 진행되었던 네오 다다적 경향은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60년대 후반 고향으로 내려간 그는 7-8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앵포르멜 추상을 다시 시도한다. 석기 시대의 유물처럼 풍화된 돌 형상처럼 그려지는 <기념비1976-78> 시리즈로 추상 회화이다. 1976년 첫 개인전을 통해 보여준 <기념비1976> 연작은 과거 어둔 추상표현과 달리 밝아진 느낌을 준다.



2) 초기 단색조 추상의 한지작업 시기(1979-87) ; <對流convection1979>

1976년 캔버스에 은박지를 사용하면서 형태의 비정형을 실험하였던 그는 처음으로 한지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1979년 서울 첫 개인전에서 보여준 <對流convection> 연작은 한지 회화의 첫 출발로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된다. 이는 한번 보여주고 끝나는 것이 아닌 평생 작업으로 연결되면서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제목으로 사용된 ‘대류’는 물리학에서 상승기류를 뜻하는 것으로 공기와 물질의 상황 변화를 지적한다. 캔버스에 물에 녹인 한지를 한 겹 한 겹 붙여 나가면서 마치 공기 흐름이나 물질의 변화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품세계에 결정적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하는 ‘대류(對流)’가 나타난다.
한지가 갖는 물질의 특성을 살리면서 제작된 <대류> 연작은 1983년 제3회 개인전에서 한층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작가는 한지라는 종이가 갖는 물성과 단색조 추상의 조형적 모색으로 자기 세계를 확립해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조형적 변화에서 평면은 입체적 공간처럼 변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작가는 붓보다 손으로 작업하면서, 화면에 작고 큰 구멍들이 만들어지고, 공간의 깊이를 생각하게 한다.



3) 기하학적 추상과 한지작업 시기(1988-1991) ; <內空inner-space1988>시리즈

1980년대 후반 문복철은 <내공>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한지 작업에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비록 단기간의 실험적 조형 모색으로 미완에 그치고 있으나, 하나의 양식에 만족하지 못하는 작가의 실험정신을 읽어 볼 수 있는 시기이다. <내공> 연작은 캔버스라는 사각의 틀에서 벗어나 공간화를 추구하려는 미니멀리즘 작업과 유사한 경향이다. ‘내공內空’의 의미도 평면에 조형적 변화를 갖는 ‘내부 공간’의 줄인 말로 한지의 물성이나 추상성이 갖는 개념이나 정신적 의미와 거리가 있다.



4) 단색조 추상의 한지작업 시기(1992-98) ; <삶의 춤-붓질>과 <삶의 소리>

1990년대 문복철의 한지 추상회화 작품은 절정기인 동시에 완숙기에 이른다. 이 시기에 그의 대표적 작품들이 제작되고, 아울러 한지 작업이 갖는 물성의 특성과 더불어 삶을 주제로 제작되는 추상 회화는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다. 당시 작가와 대화에서 <삶의 춤>과 <삶의 소리> 연작에 관해 언급하기를 “이것은 서민 생활의 정서가 밴 육자배기 가락을 유희적이고, 작위적인 붓질로 표현한 것” 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처럼 남도의 판소리와 연결시킨 삶의 춤과 삶의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단색조 추상화를 완성시켜 나간다.
<삶의 춤-붓질-소리> 연작에 나타난 표면은 한지가 주는 표면 효과를 극대화시킨 느낌이다. 표면은 부드러우나, 붓질에 의한 터치와 행위의 흔적들은 강인한 표현으로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적 청 황의 밝은 색점들과 어우러진 행위의 흔적은 대지로부터 뛰쳐나오려는 생명의 씨앗을 연상시킨다.



5) 후기 추상표현의 한지작업 시기(1999-2003) ; <시간여행Time Travel>

문복철의 후기 한지 작업은 ‘시간여행’ 이라는 제목으로 <상응(2002)> 연작과 같이 생의 마지막 시기를 장식한다. <시간여행> 연작은 ‘강물이 흐르듯 무위의 시간여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상응>에서 ‘조화와 상생’이라는 부제와 같이 후기 그의 한지 작업은 양식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삶의 소리>와 같이 모노크롬 추상화로 한지나 닥지를 이용하여, 행위의 흔적을 묘법처럼 드러낸다. 전체 구성이 반복된 선묘에서 벗어나 불규칙한 색점들로 짧고 굵게 나타난다.
<시간여행>은 작가의 마지막 시기 연작이다. 그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거나 반복되지 못하고 2003년 막을 내린다. 30여년 넘게 한지를 이용한 추상표현 작가로 그의 ‘시간여행’은 종이를 매제로 자신만의 특이한 정서와 에너지를 토로하여 왔다. 한지의 질감과 손맛과 교감을 이루는 그의 감각적 표현들은 미니멀리즘과 달리 단순함 속에 삶의 체취를 담아내어 왔다.
끝으로 2004년 첫 번째 문복철의 유작전에서 정리된 내용들은 김선태 교수에 의해 1)추상표현주의에서 한국적 미의식으로 전환, 2)환원주의적 경향, 일관성 3) 한국적 미감의 정체성 확립이라고 지적된다. 이러한 미의식 논의는 양식적 분류를 떠나 “그의 한지 작업은 동양의 서체와 한지의 재질감 등이 서구의 추상표현주의 양식과 공통의 기반으로 만남으로서 독자적 영역을 열어나가고 있는 예이다.... 여기에 그의 작품은 한국적 미감과 우리 민족의 숨결과 체취가 녹아 정제되어 있어, 잔잔한 여운과 감동으로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라고 언급된다.
한지 작가 문복철은 분명 한국적 미감과 정서를 바탕으로 현대미술의 추상 양식과 결합을 시키면서 독자적 화풍을 이끌어 나온 작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60년대 초반 한국현대미술의 탄생시기에 앵포르멜의 심취와, 더 나아가 실험적 오브제 및 행위미술 등 누구보다 앞선 전위미술가로서의 의식이 밑거름이 되어, 1970년대 중반 한지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적 정서를 대변하는 한지 작가로 자리 잡게 된다. 그의 독자적 예술세계의 형성은 순간이 아닌 평생의 작업으로 한지라는 물질과 행위가 합치시키려는 탐구였다.
한지의 물성은 단색조의 관조적 성격은 물론, 모더니즘에서 환원적 표현과 일치를 이루며, 결국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자아를 찾아 나서는 것으로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한다. 오랜 시간 내면을 응시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한지를 통해 읽혀지고, 나아가 물질과 작가 자신의 접촉이 긴장감과 여유를 생각하게 하는 미적 대화를 이끌고 있다. 특히 후기에는 누구보다 남도의 춤과 소리를 사랑하면서 삶의 춤과 소리를 표현하는 진솔함으로 우리 시대의 마지막 모더니스트 화가로 기록되는 것이다. *** 2010. 4.



한지의 세계로 구현한 삶의 율동

박옥생 | 한원미술관 큐레이터/미술평론


한지는 한국역사와 함께 해온 문화의 정체성이자 독자성이라 할 수 있다. 서지(書誌)의 질료로서의 한지뿐만 아니라 가옥의 장판이나 공간을 밝히는 창호지는 외부로부터의 보호이자 우리의 삶과 정서를 베양하고 풍부하게 가꾸는 매개체였다. 문복철은 한지회화의 가능성과 질료로서의 회화가 갖는 미적 아름다움의 탐색과 추구에 천착해온 작가이다. 그는 1962년 국전에 입선함으로써 화단에 이름을 알렸으며 2003년 작고 할 때까지 약 40년의 작품 활동을 보이며, 한국현대미술의 변화와 발전에 궤를 같이 한다. 그는 1991년 스위스에서 있었던 국제종이조형협회(IAPAM)에 초청작가로 초대됨으로써 한지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듯하다. 그의 화작이 이루어진 전(全)시기를 미술사적으로 본다면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작가라고 하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국적 정체성을 추구해온 민족성이 강하게 반영된 작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활동 시기는 앙포르멜과 네오, 다다적인 성향을 반영했던 초기(1962-1978)와 단색조의 본격적인 한지 작업이 완성되는 중기(1979-1987), 모노톤의 전면회화에서 탈피하여 회화적 공간과 표현으로서의 한지회화의 모색을 추구하는 후기(1988-2003)의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의 초기작들이 당시의 서구 미술사조의 영향아래 실험성을 선보인 것이라면, 중기와 후기의 작품들은 한지를 통한 한국적 정체성을 모색하고 이해하며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것이다. 사실 그의 화작의 절정기라면 1996년의 <삶의 소리>에서 화려하게 선보인 대작의 작품들일 것이다. 역동하는 생의 환희가 구현된 화면 속에는 육자배기, 아리랑과 같은 질펀한 질곡의 민족의 소리가 배어있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그림 속에 온전히 몰입한 민족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는 것이며 또한 깊은 감동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문복철의 회화의 오랜 항해는 시각과 촉각, 표면과 공간, 있음과 없음 그리고 삶과 자연, 우주와 존재에 관한 끊임없는 문답의 결과들이다. 그 결과들은 미묘한 우주의 파동과 생의 율동으로 일관되게 드러난다. 그 세계는 너무도 깊고 아득하여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별처럼 관자의 마음에 스치운다.(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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