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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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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라는 행위를 통한 자연의 기록과 채록


세계 각지를 직접 걸으며 현지의 자연물을 이용해 환경에 동화되는 특정한 모양을 만들고 이를 조각 및 사진, 글과 기호 등의 매체에 담아온 영국 태생의 대지미술(land art) 작가 리차드 롱(Richard Long)의 한국 전시가 오는 2월 18일부터 4월 2일까지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소재 'MC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는 20대 초반인 1964년 작품 <눈덩이가 지나간 자국(A Snow-Ball Track)>을 야외에서 실험한 이후 약 40여 년 동안 자연을 자신의 예술적 이미지로 삼은 그의 대표작들이 선보인다. 

1989년 터너프라이즈(Turner Prize)를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리차드 롱은 1967년 <걸음으로서 생긴 선(A Line Made by England)>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제작한 후 ‘걷기’를 통한 실외 작업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에게 있어 ‘걷기’는 작가만의 조형언어를 생성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그 자체로 미적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그는 '걷는다'는 행위를 매개로 자연에 대한 동경과 예찬이라는 오랜 화두를 탐구해 왔으며, 이러한 행위는 새로운 형식의 퍼포먼스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문화를 연결시키는 일종의 생태학적 알고리즘(algorithm)으로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의 훼손 없는 자연주의적 사고와 자본주의적인, 또는 인공적인 것의 인위적인 배제는 여타 미국 중심의 대지미술 작가들과 구분되는 지점으로 규정되고 있다.

어느 낯선 곳에 지표를 세우고 나무나 돌멩이를 직선 혹은 원의 형태로 구성한 다음 그 순간의 기록을 전시장으로 가져와 재배열하는 일련의 작업에는 그가 머물렀던 지역에 존재한 찰나의 기억과 자연 공간의 느낌, 인공적이지 않은 여백들이 이입되어 있다. 여기엔 시간과 속도 등의 일시적, 경험적 서사가 투영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론 인간과 자연의 만남에 관한 기록자의 역할을 철저하게 일궈나가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다. 작가는 이와 같은 실외 작업을 '보이지 않는 작업'이라 말한다.

리차드 롱의 MC갤러리 전시는 ‘보이지 않는’ 실외작업을 ‘보이는’ 실내 작업으로 전환한 것이랄 수 있다. 1968년에 독일 뒤셀도르프 '코퍼나드 피셔'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현재에 이르는 중요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 그는 수십 년 간 일관되게 추구하며 이루고자했던 ‘자연친화적인 태도와 그것의 회복’을 예술로서 새롭게 승화시켜 놓고 있다. 대지로 나가 자연에 포박된 채 걷다가 그곳에서 가져온 재료를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원’이나 ‘직선’ 등으로 설치한 작업, 자연 속에서 이루어진 대지미술작업의 흔적인 사진 등이 그것을 증명한다. 

일예로 2010년 신작 <Dragon Circle>과, 1987년 작 <Vermont Georgia South Carolina Wyoming Circle>은 미국에서 수집한 돌들을 일정한 공간에 쌓거나 나열한 것으로, 이는 1969년 뉴욕에서 열린 대지미술 그룹전에서의 작업과 1971년 아일랜드 더불린(Dublin)에 있는 박물관에 갔을 때 보았던 선사시대 돌 조각에서 힌트를 얻은 <콘네마라 조각(Connemara Sculpture)>, 그리고 1988년 사하라에서 제작한 <아침 원(A Morning Circle)> 등의 연장에 해당한다. 이 전시에서는 물론 그의 화력에 고금을 막론하고 등장하는 ‘원’은 근본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재료를 통한 그 장소성과 연관되는 모습의 반영이며, 작가의 말에 따르면 ‘서로 공유되는 지식의 순환’을 뜻한다. 

조각 외 스페인 네바다에서 14일 동안 도보로 다니며 주워 만든 재료로 제작한 작품을 촬영한 2009년 작 <A Fourteen Day Walk In The Sierra Nevada>를 비롯한 2점의 사진작업도 출품된다. 이 사진들은 그가 행한 대지의 행로 가운데 우연히 발견한 각 지역의 흔하고 고유한 재료를 이용해 원, 나선, 지그재그선 등의 기하학적 형태를 남겨놓고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일시적인 현상을 기록한 시공의 궤적이랄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사진들을 통해 관람객들은 작가와 함께 하는 도보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으며, 그 도보의 기록과 여정에도 동참하는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전시에는 주로 우리 일상에서 접하기 쉬운 간단한 모양들로 구성된 기하학적인 패턴을 종이 위에 진흙으로 규칙적으로 찍은 프린트 작품들도 내걸린다. <Untitled>로 명명된 이 연작들은 손가락 프린트 작품으로써, 작가의 손(정학히는 지문(검지))으로 만들어졌으며 2종류의 원료를 바탕으로 한다. 하나는 중국 양쯔 강의 진흙이고, 다른 하나는 윤안(Yunnan)주에서 나는 파란색 안료이다. 

진흙은 작가가 쓰촨성(사천성)의 양쯔 강가를 걷다가 취합한 흙을 비닐 백에 담아온 것으로, 1971년 그의 발자국으로 만들어진 나선형 흙 작업과 개념적으로 연속성을 지닌다. 또한 1981년 작품 <애번강의 진흙으로 만들어진 벽 작업>을 잇는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그는 자신의 육체와 감성을 모두 이용하여 자연세계와 관련지었음을 이 진흙작업으로 나타냈는데, 관람객들은 이번 전시에서도 그 독특한 여운을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 속에서의 진흙을 가져와 자신의 손이나 발을 이용해 대지에서 직접 걷기로 행한 것을 실내에서 다시 재현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는 진흙 작업과 더불어 중국 일부 지역에서 흔하게 쓰이는 파란색 안료로 제작된 작품들도 선보인다. 이 안료는 작가가 중국 윤안 주를 여행하다 발견했다. 작가는 그 파란 색깔의 오묘함에 매료되었고 이번에 출품되는 작품에도 사용되었다. 한편 출품작 중 빨강, 흰색, 회색, 녹색 돌로 구성된 설치 작품 <Vermont Georgia South Carolina Wyoming Circle(1987년 작)>은 2월 18일부터 오는 3월 19일까지, 그리고 검은색 점암판 석회석으로 제작된 <Dragon Circle(2010년 작)>은 3월 22일부터 오는 4월 2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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