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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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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서문 - 권력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회 곳곳에 다양한 형태의 권력이 존재한다. 오랫동안 유교적인 전통을 지켜온 한국사회에서는 국가 통치자의 권력을 특정한 가정 내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권위에서 비롯된 가부장적인 권력과 구분하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또 국가나 사회집단에서의 권력도 있지만, 가정 내에서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권력도 엄연히 존재한다. 임선영은 이러한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매개로해서 풀어냈다. 이번에 작가가 펼쳐 보이는 전시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 그것을 찍은 사진과 아버지의 부재에 따른 작가의 심리적인 충격을 상징적으로 재현한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결과물들은 작가의 표현의지에 의해서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특정한 사회적인 현실을 상징하는 결과물로 변환됐다.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관련된 물건 또는 공간을 통하여 또 다른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구형텔레비전, 동물박제, 넥타이를 비롯한 여러 소품 및 정원에 심어져 있는 나무 등이 작가와 아버지를 심리적으로 연결하는 매개로서 역할을 했다. 

 작가는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있지만, 어려워하고 두려워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이번전시에서는 작가의 이러한 이중적인 심리가 확대 재생산되어 국가통치자의 권력이나 사회에서 수시로 만나는 불특정한 여러 형태의 권력에 대한 심리를 상징적으로 재현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작가가 아버지에 대해서 이중적인 심리적 태도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이와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오랫동안 독재정치를 펼친 특정한 정치지도자에 대한 반감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이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아이러니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전시에서 임선영은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통하여 한국사회의 이러한 현실을 환기시킨다. 

 작가가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 중에는 연극 혹은 문학적인 장면을 연상시키는 작품도 있다.

또 작품에 따라서는 극적인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언어나 문자로는 표현하기 애매모호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영상언어 그 자체로서 보는 이들을 정서적으로 빠져들게 한다.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시각적으로는 사실적인 재현을 시도했다. 하지만 현실 그 자체를 모방하는 것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우의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표현대상의 세팅이나 특정한 극적인 장면의 연출을 통하여 주제를 상징하는 여러 시각적인 장치들을 구성한 것이다. 또 무게감이 느껴지는 톤으로 인해 좀 더 주제가 강조되었다. 그 결과 작품의 표면이 작가의 정서를 충실히 반영해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 할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됐다. 작품을 이루는 여러 소품, 그것이 존재하는 공간, 작품의 전체적인 톤 및 컬러 등이 효과적으로 어우러져서 작가가 표현의도를 구현한 것이다. 동시대 작가들은 이전시대의 작가들과는 다르게 거대담론보다는 미시적인 담론과 사적인 일상에 더 관심을 드러낸다. 임선영도 마찬가지로 사적인 경험 및 기억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좀 더 시각을 확장해서 동시대의 사회적인 현실을 표상했다. 이지점에서 이번전시의 당위성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사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당대의 특정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물을 생산 한 것이다.


글: 김 영태(갤러리 아트사간 디렉터)


○ 작가 노트


  걸어 걸어 다시 결국에 도착한 곳은 시간이 멈춰진 듯한 이 장소이다. 죽음에 관한 기억이 곳곳이 깃들여져 있는 이 곳. 어린 시절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던 박제들은  아직도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마치 죽음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 것같이 긴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한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여기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다시 되돌아온다. 프로이트가 여러 번 반복해서 같은 장소로 되돌아오는 현상을 ‘숙명 성’이라고 인식한 것처럼 두렵고 낯설면서도 한편 거부할 수 없는 어떤 그리움이 물밀듯이 올라오는 것을 나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나보다. 

  그래서 나는 여기로 다시 오나보다. 두렵다. 내가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불안해진다. 하얗고 깨끗한 눈밭에 디딘 나의 두 발끝에서 차가운 기가 온 몸으로 퍼져온다. 이 찌르는 듯한 차가움이 나의 온 몸을 흔들게 하고 있다. 재빨리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재촉한 발자국들만이 뒤로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그 누구라는 것을 대변해주지 않는다. 나의 존재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 오지만 그냥 그렇게 발자국으로 대신해야한다. 아무리 유품과 같은  강한 흔적을 남겨도 그 존재는 미묘할 뿐이다. 그렇듯 불안의 연속은 나의 기나긴 여정을 재촉하고 반복되는 이 여정은 멈춰질 시간을 향해 가고 있다. 시간은 이렇게 늘어지고 피곤한 나의 발걸음은 집으로 다시 향해 가고 있다.


글: 임 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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