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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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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회화전
事物의 意味
-이지숙의 ‘꿈꾸는 책가도’





기획의 변
민화는 단연코 세계적인 미감을 갖고 있다. 민화의 단순성과 표현성은 서구 인상주의 이후에 등장한 큐비즘의 다시점과의 연관성과 선구성을 보이고 있으며, 의미의 상징성 또한 민중의 삶을 대변하고 마음 깊숙한 곳에 이르는 염원을 담고 있다. 따라서 민중의 삶과 정신을 담고 있으며 세련되고 매혹적인 조형성은 미술애호가들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시선에 단연코 간과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민화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이지숙의 작품세계는 흙과 민화의 만남을 보여준다. 이러한 신선한 만남은 민화의 발전적 모색이며 아름답고 깊고 넓은 감동을 자아낸다 하겠다. 이에 민화를 차용한 많은 미술들에 전통과 현대의 만남에 하나의 방법론을 보여준다 하겠다.■ 갤러리 예담 컨템포러리




事物의 意味: 일상, 존재, 매혹
-이지숙의 ‘꿈꾸는 책가도’


長江 박옥생, 미술평론가, 한원미술관 큐레이터


1. 테라코타 책가도: 고전에서 일상으로

민화는 한국현대미술의 전개에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어 왔다. ‘민화’라는 용어와 개념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1937년 발표한 <공예적 회화>라는 글에서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유통되는 그림”을 민화라고 부르자며 그 개념을 발생시켰다. 그 이후 1960년대 후반부터 겨레그림으로서 민화를 재인식하기 시작하였으며, 80년대 민중미술의 재인식과 발전을 거치면서 현재까지 민화의 의미와 가치를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 팝아트의 결합과 발전은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화가 가진 전통 모티프와 단순성, 표현성과 같은 조형적 특징을 차용하거나 응용하는 시도는 비단 팝아트뿐만 아니라 미술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민화의 의미와 조형성이 인간의 기원적인 소망과 꿈을 담고, 정신을 달콤하게 매혹시키는 부정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있음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흙으로 사물들의 가치와 의미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재구조화하는 작가 이지숙 또한 민화의 세계에 주목한다. 이지숙의 테라코타 작업은 서책이 쌓이고, 고전과 현대 문명의 사물들이 이야기를 하듯 중첩되고 구축된다. 서안, 서갑, 연적, 필통과 같은 선비와 문기(文氣)를 상징하는 문방구류들이 구성되고, 그 주위로 모란, 포도, 가지, 연꽃과 같은 부귀, 영화, 다산과 같은 인간 삶의 깊은 염원을 담은 식물들을 배치한다. 이는 전통 책가도의 책의 의미와, 부귀 · 다산의 과일과 꽃 그리고 수집과 완상(琓賞)으로서의 고동기(古銅器)가 어우러지는 고전 민화의 특징들을 농도 짖게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테라코타 책가도가 만들어지기 까지 흙은 몇 가지의 삶으로 변환된다. 흙이 성형이 되면 건조되고 다시 가마에서 구워진다. 구워진 흙은 화판에 부착되고 성형된 흙의 형태에 맞추어 화판도 정교하게 잘려진다. 그리고 터지고 갈라진 부분은 메우고 수정되어 그 위에 아크릴로 밝고 경쾌한 색조로 채색된다. 작가의 테라코타 작업은 여간 수고로운 일이 아니다. 흙의 육중한 무게감과 건조된 흙이 빨아들이는 안료는 명징한 조형과 밝고 경쾌한 발색에 어려움을 준다. 그러나 흙의 무게감과 조형은 조각과 같은 남성적인 힘과 3차원의 환영을 주고 있으며, 발색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명도는 동양 채색화에서 경험하는 것과 같이 여러 번의 채색을 올리는 과정에서 도달하게 되는 정신적인 깊이와 승화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물 하나하나의 형상과 의미들이 숨을 쉬는 듯 움직이고 강조되고 있다. 이는 곧 조각 같고 회화 같으며, 고전이면서 현대가 미묘하게 만난 새로운 책가도의 탄생인 것이다.
사실, 작가의 책가도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가 폭넓게 읽어낸 서책들이다. <엄마를 부탁해>, <식물의 정신세계>, <성경>, <오래된 미래>, <내 이름은 빨강>, <농담>, <아직도 가야할 길> 등, 이들 책들은 모두 우리에게 익숙하게 읽혀져 오거나 명저로써, 작가가 오랜 시간을 책과 함께 지낸 시간의 증표이자 작가의 삶 속에 숨 쉬는 일상의 흔적들이다. 이러한 책들은 고전 책가도의 고착화된 상징성과 역사성을 지금의 시제로 변환시키고, 고전에서 일상으로의 신선하고 열려진 역사인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책 속에 담겨진 풍부한 인생의 지혜와 명저들이 함의하고 있는 바다와 같은 생명의 울림, 시간이 축적된 그들만의 고유한 힘들이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의 빗장을 열어준다.
즉, 테라코타 책가도는 범우주적인 시간과 세계의 모습이 주저리주저리 보따리를 펼치고 사랑, 소망, 꿈, 행복과 같은 삶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렇듯 작가는 민화라는 주제를 끌어안으며 작품의 과정 속에서 재발견하고, 그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듯하다. 그 현재의 의미는 곧 작가가 숨 쉬고 지나온 지금의 일상이며, 그 일상은 책과 사물을 통해 구체화되고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2. 사물의 의미-역원근법: 정신의 표정

작가 이지숙이 테라코라 책가도를 새롭게 탄생시키듯, 민화는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과 조형성을 검증받으며 많은 이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민화 가운데 책가도는 조선의 성리학적 정치 이념과 궤를 함께 하며 적극적인 수용과 인기를 보인 그림이다. 남공철(南公轍)의 <금릉집(金陵集)>에는 정조가 화공에게 명하여 책거리를 그리게 하여, 자리 뒤에 붙여 두시고 책 읽을 여가를 내지 못할 때에는 그 때마다 그림을 바라보고 즐거워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유학의 근본으로서 책을 읽고 서실에 들어가 책을 쓰다듬으며 뜻을 음미하는 삶의 실천들이 책가도로서 유행한 듯하다. 책가도에는 학문으로의 꿈과 소망 그리고 그 주위로 일어나는 인간의 꿈과 소망들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책가도에는 역원근법과 다시점을 통해 세계와 사물을 구조화하고 있다.
역원근법은 책이나 책상위의 사물들이 가까운 것은 작고 먼 것은 크게 묘사되는 것을 말하는데, 주로 위가 더 길게 그려진 사각형 형태로 그려진다. 쌓아올린 서갑이나 꽂혀진 모란꽃들에서도 동일하게 위가 더 강조되고 있다. 또한 사물 하나하나들이 뚜렷한 형상을 유지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지는 다시점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개개의 사물들은 마치 무대 위에 여러 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조명을 받고 주인공으로 부각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동양의 독특한 화면을 인식하는 무의식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데, 어떤 이념이나 정신과 관계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개개의 사물들이 눈(目)을 달고 자신이 존재하는 그 지점에서 주인공으로서 화면 밖을 내다보는 듯하다. 그렇다면 화면에 그려진 개별 사물들은 모두가 주인공이며 소중하며, 모두가 존재의 이유를 갖고 있는 세계의 중심들인 것이다. 어쩌면 이는 동양의 세계관에서 인간과 자연, 나와 세계가 합일(合一)된 관계 속에서, 주체와 대상이 분화되지 않은 상태를 조형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상 그 자체가 생명을 갖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두에게 생명이 있다는 범 우주적인 생명론을 가시화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는 작가가 주목하는 <에녹의 서>의 구절 “우주의 모든 것은 제작기 고유한 혼과 정령을 가지고 있다”와 동일한 것으로, 책가도의 사물들은 곧 그들 고유의 혼을 담고 있으며 작가는 그 사물들이 가진 의미와 가치들을 찾고 음미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문명이 발생할 당시 이미 사물에는 영원한 본질, 변하지 않는 본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철학적 인식의 기원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 정신적이고 무의식적인 민화의 조형성에는 일상에서 발견한 사물의 의미, 그 본질적인 근원성을 탐구하고 음미하는 우주적인 정신의 세계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간과할 수 없는 현재의 삶, 일상성이 그 존재론적인 가치를 담고 범 세계의 본질, 정신계로 나아가는 인식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민화에서 보여주는 단순성은 사물의 본질적, 정신적 의미를 극대화하고 그 정수를 채집하는 조형적 방법이다. 이미지가 단순하면 상상력은 자유로워지고 ‘순수’해 지며, 의미를 ‘원초적’이고 직접적으로 파악하기에 성공하게 된다고 현상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렇듯 민화의 단순성 또한 역 원근법, 다시점과 같이 대상의 본질, 사물이 내포한 진실성을 드러내기 위한 정신적인 모색인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책가도는 사물의 본질과 진실성, 혼이 담긴 존재론적인 가치를 보여주고 확인하는 과정이며 결과인 것이다.



3. 흙 그리고 진리(眞理)를 향하여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존재론적인 사물의 의미는 흙으로 빚어 완성되고 있다. 작가에게 흙은 민화의 조형성을 넘어서는 자신의 인생을 닮고 또한 닮아가야 하는 인격적인 존재로서 다가온 듯하다. 따라서 작가는 불어 구워 낸 흙이 줄어들고 터지고 휘어지는 과정 속에서 그것을 바로잡고 수정하며, 자신이 원하는 형상으로 고쳐 나아갈 때 인간의 삶의 여정을 보는 듯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규정되지 않은 흙의 거친 본성을 지키기 위해 불에 굽는 테라코타로 그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곧 작가가 흙의 본성에 매료되어 있으며 자신이 발견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세계의 본질이 흙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흙은 고향이며 기원이며 본질이며 시작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흙은 어느 것보다 더 강력한 기원과 본질로 회귀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민화의 조형성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세계의 시선, 정신의 눈이 민화 안에 조형화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작가는 이를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재료의 물성과 조형의 과정에서 인간의 삶, 자신의 삶을 보았던 것이다. 즉, 오랜 시간의 궤적으로 축적된 민화의 조형성과 흙으로 빚어 구워내고 색을 입히는 자신의 작업 속에서 세계의 진리, 본질을 찾는 여정이 교차되었던 것이다. 작가가 읽어 낸 수많은 책들은 일상의 표정들을 담고 있으며, 또한 이들은 작가가 찾아 떠나는 로고스의 세계, 신(神)의 세계, 진실한 세계의 이야기들을 함축하고 있는 증거물인 것이다. 또한 깊게 사색된 사물들은 뚜렷한 형태와 색을 갖고 구체적인 자신의 기원과 쓰임, 현재의 존재를 과감히 드러내고 있다.
Claude Monet의 수련(水蓮)을 연구한 어느 글에는 “세계는 보아주기를 원한다. 보기 위한 눈들이 존재하기 전에는 물의 눈, 고요한 물결의 커다란 눈이,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바로 물의 눈에 반영된 그 모습 속에서 세계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최초로 자각했다.”고 쓰고 있다. 이는 곧 세계는 자기를 인식하는 화가의 시선 속에서 진실한 자신의 본질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지숙의 테라코타 민화에는 작가가 찾고자 하는 삶의 본질, 진리의 세계가 재료와 내용을 만나는 고립되고 함몰된 정신의 과정에서 스스로 눈을 뜨고, 소중한 기억으로, 꿈으로 행복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본질로 끌고 가는 흙과 사물의 정신성을 가시화하는 민화의 만남에서 작가의 작품세계가 진리와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여정에서 빛나는 가치들을 잡아두고 음미하는데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흙과 민화의 만남은 논리적인 타당성을 확보한 것이기도 하다. 그 조형 속에서 사색적이고 구체적이며, 매혹적인 사물의 표정들이 살아 숨 쉰다. 책가도에 조합된 고전과 일상의 사물들은 마치 오랜 꿈을 꾸고 있는 듯 선명하고 깊다. 이들은 세상의 아름다움이며 인생의 깊이와 가치이며, 인간의 오래된 소망과 꿈인 것이다. 이는 곧 사물의 의미이다. (2011.11)




전시장 정보
갤러리 예담 컨템포러리 02-723-6033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26-2번지(버스 11번 종착역)
-오전 11시-오후 8시
-초대일시 2011.12.1(목) 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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