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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열의 조선그림을 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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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릴로 그린 한국화전
이재열의 謹賀新年 展
조선그림을 훔치다.





이재열의 창작전략: 조선그림의 패러디(parody)



우주의 보이지 않는 기운의 작은 싹은 생명을 잉태하는 기초가 된다. 이 움직이는 힘을 기(氣)라 하였고, 기는 바람을 움직이고 구름을 만들고 생명을 자라나게 한다. 이를 두고 일본학자 이노우에 다다시(井上正)는 운기화생(雲氣化生)이라 이름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기운이 만물을 생장시킨다는 것이다. 이재열의 작품세계에도 운기화생의 흐름이 포착된다. 작가는 하나의 씨앗과도 같은, 눈이 있는 생명의 돌기들을 유기적인 하나의 생명체로 확장시키고 있다. 변화된 생명의 움직임은 영상과도 같이 순간적이며 역동적이다. 힘차게 자신의 생명을 확인하며 만물의 근원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듯, 힘의 기원과 움직임을 보여준다. 돌기는 싹을 티우고 뿌리를 내리고 날아다닌다. 이들은 식물처럼 자라나고 생각하며, 숨을 쉬고 생명이 도는 듯 살아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 속에는 돌도 나무도 바람도 커다란 눈을 달고 순간적인 꿈틀거림이 있다. 이는 작가가 우주의 본질, 생명, 맥박 그 자체를 정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확장시킨 결과이다.




이러한 이재열의 화작(畵作)들은 조선의 그림에서 출발한다. 생명의 돌기들과 확장된 유기적인 살아있는 생명들, 그리고 곳곳에 숨겨진 동물의 캐릭터들은 조선시대 회화의 명작에서 재조합 되고 있다.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어진(御眞)과 같은 초상화는 구조적 형상을 기초로 하되, 닮지 않은 현재적 어법의 화면으로 변모된다. 생명과 캐릭터 그리고 고전의 만남에서 새로운 컨템포러리로 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의 창작전략은 조선그림의 패러디(parody)에 있는 것이다. 고전의 명작들에서 구조를 빌려와 캐릭터와 화면자체의 내용을 새로운 창조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환상적이며 극적인 연극성까지 동반하고 있는 작품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현저하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어법을 빌려오고 있다. 이것을 패러디 또는 전용이라 할 수 있는데, 1970년대 이후의 네오지오(neo-gio)나 차용미술, 시뮬레이션 회화들이 이를 근간으로 형성되어 왔다. 할 포스터 (Hal Foster) 와 같은 비평가는 이러한 차용미술을 두고 “스타일의 개혁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남아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난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제 더 이상 원작의 고유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원작의 고유한 아우라는 해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문영대, 포스트모던 패러디 현상 연구, 재인용) 이 해체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본질적인 의미와 내용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핵심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미술이 원본을 재창조함으로써, 새로운 미술창작으로의 회의와 비판에서 시도된 결과인 것이다. 이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은 과거의 형식을 빌려와 새로운 내용, 본질적인 작가가 의도한 세계를 드러내는 것에 중심을 두는 것이다. 이렇듯 이재열의 패러디에는 조선그림이 갖는 원본의 신화성을 해체시킨다. 그리고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만평과도 같은 풍자와 유희의 세계를 드러낸다. 들판을 뛰노는 아이의 천진함과 순수함, 즐거움이 폭발하듯 터지고 있다.




엣지 있는 깨끗한 형태와 화려한 색의 연출, 사물의 재구조화는 분명코 팝 아트의 연관성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무라카미 다카시가 자신의 역사와 고전을 현대문화를 꼬집어 설명하는 장치의 극대화로서 사용하듯이, 작가 또한 현대의 징후와 인간의 표정들을 드러내는데 있어 고전을 차용하고 있는 듯하다. 얼굴이 둥근 “동글 맨”이 생명의 돌기들을 마치 손에 드는 홀(笏)처럼 들고 있다. 이러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에는 모종의 패러디 안에 감춰진 자아의 유희와 그 형식 속에 녹여 낸 현대인간의 진실이 고전의 무게에 교묘하게 대립한다. 허구이면서 가벼운 것, 진실이지만 진실이 아닐 수 있는 모순관계에 있는 현대인의 초상을 말해 주는 듯하다. 고전을 가장한 텅 빈 인간의 실체, 깊이로의 끊임없이 강요받는 철학과 역사들이 작가에겐 단순한 놀이의 과정처럼 도구화되고 표피화 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현대인이 직면하고 있는 지식과 본질, 존재와 인식에 관한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사실 작가의 캐릭터 가득한 요동치는 화면에는 하나하나 감상의 과정이 숨겨져 있다. 그의 화면에는 전통산수화가 구현하였던 삼원법(三遠法)의 고원(高遠) · 심원(深遠) · 평원(平遠)을 오르내리는 자재(自在)로운 시선의 흐름이 간취된다. 산재(散在)된 눈빛의 표정들을 따라 곳곳에 숨겨진 생명체들을 찾아내는 재미는 유년기의 놀이와 같이 화면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작가의 유희가 펼쳐진 세계로 말이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를 뒤틀고 희극화 시키며 자신이 처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현대의 역사성과 표면화된 인간 정신의 본질을 경쾌하게 전환하는 것이, 작가가 지향하는 그리기의 본질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유희와 생명의 흐름들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우리의 파편화되고 부유하는 자아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사실 이는 유희 속에서 차가운 냉소의 시선을 던지는 작가의 내면의 소리와 표정이기도 하다. 이 슬픈 인류의 단상들은 이재열의 패러디 속에서 유쾌함과 시원한 정서의 팽팽한 긴장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역설, 고전의 본질을 해체하고 새로운 작가의 세계와 사유로 대체하는 것이 패러디의 본질인 것이다.




비평가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컨템포러리 미술을 정의하는 부분적인 특징을 예술가들이 과거의 미술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이렇듯 이재열의 작품세계는 컨템포러리의 ‘정의’를 관통하는 내용과 조형성을 드러내고 있다 하겠다. 그리고 컨템포러리를 잉태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모방과 해체라는 창작전략을 흡수하고 해석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세계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즉, 작가의 <조선의 그림을 훔치다> 시리즈는 시선을 사로잡는 현대미술의 매력적인 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팝아트와 같은 어법과 현대인의 정서를 포착하고 음미하는 반어와 역설 그리고 동양 사유의 생명론에 이르기까지, 모방이 창조에 이르는 긍정적 모색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는 놀랍고 즐거운 상상력과 짜릿한 감정의 유쾌한 즐거움을 동반하고 있다 하겠다. (2011.12)


長江 박옥생, 미술평론가, 한원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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