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간격을 두고 건 작품 풍경이 익숙하지만, 초기 미술관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하게 작품을 걸었다. 온습도 유지시스템을 미술관이 갖춘 건, 전쟁 공습을 피해 채석장으로 작품을 옮겨 얻은 교훈 덕분이다. 이처럼 물을 데 없던 궁금증을 대신 묻고 답해주는 책은, 미술관 곳곳의 예사롭지 않은 매력을 찾고 발길을 두게 해준다.
책소개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는 미술관 이용법
그림보다 더 흥미진진한 미술관 이야기
요즘 미술관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영화관이 쇠락하고 서점도 하나둘 문을 닫고 레코드점은 일찌감치 사라졌지만 미술관은 전성기다. 국립미술관의 분관도 속속 개관하고, 아트페어도 셀 수 없이 늘어났다. 인기 전시는 이제 아이돌의 콘서트 못지않게 성황을 이루며 제때 표를 구하려면 부지런함 이상의 열정과 노력을 바쳐야 한다. 미술관은 가히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거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미술관의 매력은 뭘까? 도대체 미술관의 정체는 뭘까?
미술관이야 그림이나 조각을 감상하러 가는 장소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술관은 물밑에서 팔과 다리를 세차게 휘젓는 싱크로나이즈 수영 선수처럼 쾌적하고 평온한 풍경 이면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우선 전시를 열기 위해서는 작품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연구해야 한다. 새로 소장할 가치가 있는 작품을 판단해야 하고, 관람자들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슨트도 양성해야 한다. 소장한 예술품들을 더 오래 잘 보관하기 위해 수시로 수리하고 복원해야 하고, 작품과 관람자가 더위와 추위에 영향받지 않도록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관리하고, 작품과 전시 공간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미술품은 포장과 운송도 전문적이어야 한다. 미술관은 이 많은 일들을 수행하는 복잡하고 거대한 기관이며, 무엇이 미술인지를 정하는 하나의 제도이다. 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다. 소장품들로 굿즈를 만들어 팔고, 카페와 식당도 운영하며, 요즘은 관람자들이 인증 샷을 찍어 올리는 포토존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미술관에 관심을 가질수록 시시콜콜한 궁금증이 더욱 발동한다. 온도, 습도, 공기 질까지 상큼하게 유지되는 공간인데도 전시장을 돌아다니면 왜 이내 피곤해질까? 루브르 박물관을 제대로 보려면 정말 일주일이 걸릴까? 그렇다면 작품을 보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까?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는 게 좋을까? 아니면 아무런 정보 없이 작품을 감상하는 게 좋을까? 작품에 붙어 있는 라벨을 하나하나 꼭 읽어야 할까… 미술관은 이 모든 것을 관람자의 몫으로 정해둘 뿐 아무런 지침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교양 있게 미술관을 관람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책을 뜯어봐도 이토록 사소한 지침은 알려주지 않는다.
이 책을 쓴 저자는 미술관에 다가갈 수 있는 좀 더 가볍고 유쾌한 방법을 찾아 골몰했다. 온갖 사소한 것에 질문을 던졌고, 한번 호기심이 일자 궁금한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그리고 그 사소한 호기심들이 미술관을 구석구석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포인트로 다가왔다.
“이 책은 미술관의 가장자리를 더듬어 그 진지하고 육중한 본체를 가늠해보려는 시도다. 미술관들은 왜 약속한 듯 월요일에 쉬는지, 다른 날에 쉬는 곳은 없는지 궁금했고, 전 세계에서 제일 멋진 미술관 카페는 어디인지 찾아봤다. 전시는 설렁설렁 봐도 아트 숍에선 심사숙고하는지라 숍을 중심에 놓고 미술관을 살펴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 사소한 호기심들이 미술관의 정체를 살며시 엿보게 해주었다. 먼지 한 톨 없이 말끔한 청소 비결이 궁금해서 박물관용 청소기를 찾아보고, 청소용품 쇼핑몰을 기웃거리다가 먼지 청소야말로 미술관 업무의 고갱이로구나 싶어 깨달음을 얻은 듯 혼자 환호하기도 했다.” (10쪽)
사소한 호기심이 미술관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이 책은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나도 나도 궁금했어!”라는 작은 탄성을 지르게 한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는 새롭고 신기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어떨 때는 “흠, 그랬단 말이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전시를 보러 가면 일정한 간격으로 눈높이에 하나씩 걸려 있는 작품들이 원래부터 그렇게 걸렸던 것처럼 당연시 여기지만 애초에 미술관에서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빼곡하게 작품을 걸었다는 사실. 이른바 '살롱 걸기'이다.
미술관이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에어컨디셔닝 시스템을 갖춘 건 과학의 발전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인 듯하지만 실상은 전쟁이 계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대공습을 피해 런던의 내셔널갤러리가 마노드 채석장으로 작품을 옮기면서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작품을 덜 손상시킨다는 교훈을 얻었던 것.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은 방금 조각한 듯 희고 깨끗하지만, 그런 모습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건 겨우 20년 전 <다비드> 상이 제작된 지 어언 5백 년 만에 장장 일 년에 걸쳐 대청소를 했기 때문이다. 요즘도 두 달에 한 번씩 먼지를 털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오르세 미술관이 원래 기차역이었고 테이트 모던이 발전소였다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영국이 자랑하는 명화를 전시하는 테이트 브리튼이 과거에 감옥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도 수감자를 미치게 만드는 악명 높은 밀뱅크 감옥이 있었다는 사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얼굴이라 할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늘 그 자리에 브라운관을 켜고 있는 것 같지만, 2016년에 가동이 중단되어 2022년 재가동되기 전까지 장장 6년 동안 불이 꺼진 상태로 있었다. 과연 <다다익선>은 언제까지 지금 모습대로 감상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인쇄되던 2024년 1월 29일, 프랑스의 농업정책 관련 시위대가 루브르의 <모나리자>에 수프를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책에서는 최근 몇 년간 세상을 놀라게 한 시위들이 미술관의 작품을 볼모로 삼은 사례를 소개한다. 2022년에는 내셔널갤러리에 전시 중인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토마토 통조림 세례를 당했다. 왜 다빈치와 고흐의 작품이 시위의 표적이 되는 걸까?
“책을 쓰면서 던진 질문들이 다 미술관의 매력 포인트가 되어 돌아왔다. 작품 옆에 붙은 라벨을 한결 다정하게 살펴보게 됐고, 작품을 보고 나면 고개를 젖혀 천장의 조명을 보고, 그 조명의 각도를 조정했을 누군가를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을 통해 미술관을 구석구석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좋겠다. “가고 싶다, 미술관!”이라고 외치며 책장을 덮는 당신을 그려본다.”(11쪽)
이 책을 읽고 나면, 미술관에 놓여 있는 은색 소화기 하나조차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미술관 바닥을 보면서 이곳을 청소했을 누군가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이 이처럼 깨끗한 이유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이유가, 관람자인 우리보다 먼저 작품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에 야릇한 웃음이 지어질지도 모른다. 미술관의 주인은 결국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지은이 | 이소영
대학에서 역사 교육을, 대학원에서 현대미술사를 공부했다. 예술 서점 매니저, 잡지 기자, 웹 기획자로 일하며 과학 칼럼을 썼다. 과학의 눈으로 미술을 읽고, 화가의 도구와 기술을 중심으로 미술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는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미술 분야의 저서로 『실험실의 명화』(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세종도서 교양부문), 『화가의 친구들』이 있고, 독일의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 여행기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세종도서 문학나눔)를 썼다.
책방 ‘마그앤그래’를 운영하며 그림으로 글을 쓰고, 책으로 사람을 잇는 일을 하고 있다.
목차
Intro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은 미술관 이용법
Side 1 전시를 본다는 것
작품 걸기: 살롱전, 눈높이를 차지하라
피로: 미술관에선 누구나 피곤하다
관람 시간: 루브르 박물관의 최단 관람 기록
관람 동선: 동물원을 닮은 미술관
전시 환경: 화이트 큐브 딜레마
전시 조명:빛이 죽이는 그림 빛으로 살리는 그림
작품 라벨: 예고편으로 볼까, 리뷰로 볼까
오디오 가이드: 관람객 손에 쥐어진 소리 나는 기계
도슨트: 작품 해설, 로봇도 가능할까?
건축적 산책: 걸어야지, 미술관이니까
Side 2 관계자 외 출입금지
항온 항습: 전쟁이 남긴 유산
공기 정화: 그림이 편히 숨 쉴 수 있도록
CCTV: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가출하기
운송: <게르니카>의 여행
청소: 2백 년 동안 쌓인 먼지의 무게
지진: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 조각상을 위해
화재: 미술관이 불을 끄는 방식
보존: <다다익선>은 언제까지 에이에스가 되나요?
수장고: 비밀의 공간, 수장고는 왜 문을 여나
Side 3 미술관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
기원: 장식장에서 태어나다
오르세 미술관: 기차역이 미술관이 될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궁과 미술관의 서먹한 동거
테이트 미술관: 발전소 혹은 감옥, 미술관의 과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월요일, 아니 일요일은 쉽니다
스페인 내전: 프라도 미술관에서 보낸 전쟁의 밤
피렌체 홍수: 물에 잠긴 르네상스
집 혹은 무덤: 작품이 오래 사는 집
Side 4 가장자리에서 보는 미술관
입구: 미술관이 시작되는 계단
복사 정책: 드가와 피카소의 미술학교
복제: 런던에 있는 다비드 상
아트 숍: 미술관이 알려주는 쇼핑하는 법
카페: 윌리엄 모리스가 꾸민 세계 최초의 미술관 카페
실험 공간: 앉아서 관람하는 미술관이 있었다
정치적 시위: 미술관은 광장이 될 수 있나
디지털 미디어: 옆 사람이 미워지지 않는 공간
가상현실: 미술관에선 멀미에 주의하세요
주
참고문헌
FAMILY SITE
copyright © 2012 KIM DALJIN ART RESEARCH AND CONSULTING. All Rights reserved
이 페이지는 서울아트가이드에서 제공됩니다. This page provided by Seoul Art Guide.
다음 브라우져 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This page optimized for these browsers. over IE 8, Chrome, FireFox,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