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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오래된 구멍가게 풍경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어린 시절 동네에 위치한 작은 가게를 흔히 구멍가게라고 불렀다. 하긴 그 시절에는 모두 다 작은 구멍가게뿐이었다. 구멍만큼 작다는 뜻이겠다. 그 당시 가게는 점방이라고도 불렸는데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운데 공간에는 물건을 늘어놓았고 그 안쪽으로 작은 방이 있어서 그 방에서 여러 식구들이 콩나물처럼 박혀 살고 있었다. 방에서 일을 보다가 드르륵 하는 문소리가 나면 천천히 나와 손님에게 원하는 물건을 건네주곤 했다. 요즈음 그런 가게를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간혹 변두리나 지방에 갈 기회가 있을 때 그런 구멍가게, 점방을 만나는데 그러면 순간 어린 시절이 떠올라 홀연 추억에 젖곤 한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마음 한구석이 아프고 시리게 그러나 정겹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한 양가적 감정을 동반하는 풍경이 아마도 한 개인에게는 원초적인 풍경일 것이다. 풍경을 그리는 대다수의 작가들 역시 그 같은 근원적인 풍경을 찾아 헤맨다. 그럴 것이다. 모든 풍경은 결국 향수나 추억, 기억과 관련된다. 종국에는 모종의 아픔과 연관된 장소, 공간이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현재의 풍경 속에서 환생하거나 그와 유사한 풍경 앞에서 상처처럼 덧나는 것이다. 일종의 트라우마라고나 할까. 오치균의 태백풍경이나 감나무가 있는 풍경, 김영수의 바다와 섬 사진, 산동네를 그리는 다수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그렇다.


 이미경은 구멍가게를 그렸다. 여전히 남아있는 그 작은 가게들을 발품을 팔아 찾아다녔고 그렇게 발견한 가게를 화면 중앙에 위치시킨 후 공들여 그렸다. 펜촉으로 잉크를 찍어 날카롭고 예민한 선으로 새기듯이 그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촘촘히 긁듯이 선을 긋고/칠했다. 잉크를 머금은 펜촉은 두터운 종이의 피부위에 상처처럼 파고든다. 종이의 피부를 긁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릴 듯 하다. 재료로 인해 이 그림은 흡사 조각적으로도 다가온다. 날카로운 칼(펜)끝이 종이의 단면으로 파고들어 선과 색을 삽입한다. 그것은 평면에 깊이를 주고 그 안으로 잉크를 착색하는 것인데 그로인해 화면은 펜촉으로 인한 무수한 자취가 울울하다. 그것이 상당히 촉각적일 수 있다. 아울러 사선으로 내려 긋는 선의 규칙적인 운율 또한 청각적이다. 슬레이트나 기와지붕, 유리문과 시멘트벽이나 돌담, 나무, 함석 간판과 가게전면에 어지러이 흩어진 각종 사물들을 동일한 간격을 유지하며 다채로운 잉크를 머금은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익숙하고 향수어린 소재를 펜화라는 다소 독특한 재료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대중적이고 매력적이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접한 무수한 펜촉과 잉크병은 이전에 만화가들의 작업실에서 보던 것이다. 요즘은 다들 컴퓨터 작업을 하니까 펜으로 그리는 그림도 드문 경우일 것이다. 이전에는 연필로 그림을 그린 후 펜으로 잉킹을 하고 연필자국은 지우개로 지웠다. 그런데 이 작가는 그 펜으로 더구나 여러 색채를 지닌 잉크와 함께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정교한 펜화는 더러 접했지만 이 같은 펜화는 낯설다. 그래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미경의 구멍가게가 있는 풍경은 온통 선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이다. 그 선은 색과 분리될 수없는 선이다. 이미 선 하나하나가 특정 색채를 품고 있고 그것을 내뱉는다. 그리기와 칠하기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그리는 순간순간이 곧바로 그림을 완결해나가는 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그림이 매우 단호해 보인다. 머뭇거림없이 곧장 칼끝(펜촉)으로 백지의 화면위로 들어가야 한다. 칼을 찌르듯 선을 새기고 집요하게 더듬어가며 하나씩하나씩 완성해나가는 일이다. 그것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 사물의 피부에 들러붙어 이를 탐닉하는 일이고 그것은 추억이란 행위와 조응한다. 작가는 말하기를 그 구멍가게가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고 한다. 어느 날 문득 발견한 ‘양철지붕의 구멍가게’들은 유년의 익숙한 삶의 공간을 연상시켜주던 정겨운 곳이자 이미 사라져버린 상실감을 자극하는 쓸쓸하고 애틋한 곳이며 동시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 자신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조형공간으로 다가온 것이다. “각각의 생경한 느낌을 풍기는 조형적인 구도와 내 어릴 적 기억이 뒤엉켜 그 안에서 에너지를 발산”(작가노트)하는 장소다. 그러니까 두 가지 차원에서 이 구멍가게 그림은 가능했다. 


 작가는 시골로 내려가 살게 되면서 우연히 그 동네 주변에 위치한 구멍가게란 흥미로운 소재를 찾았다. 이른바 매력적인 그림의 소재를 문득 발견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멍가게는 레디메이드이미지다. 그런데 그 구멍가게는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존재였다. 어린 시절 동네에 있었던 친숙한 가게, 그래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동시에 현기증 나는 속도로 질주하는 한국자본주의가 만든 공간 속에서 용케 살아남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본의 논리와 빠른 속도에 마냥 뒤처진 가난한 이들의 생애를 부감시키고 모든 것이 자본과 새로움, 편리함의 논리 속에서 소멸되는데 맞서고 있는 듯한 초상으로도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오래되고 낡고 비루한 가게의 외관에서 풍기는 가난함, 찾아오는 손님이 드문 그 한적함, 그리고 오랜 세월 속에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고집스레 살아가는 어떤 목숨들의 내력 같은 것들이 얽혀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음 등이 지금 현재의 시간대가 강요하는 삶에서 문득 벗어날 수 있는 ‘구멍’ 같은 것을 만들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개인적인 추억과 기억, 향수와 관련되어 구멍가게는 그려졌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한국의 급속한 근대화, 산업화가 빚어낸 상처에 대한 무의식적인 주목이기도 하다.


 또 다른 차원은 이미 구멍가게가 지닌 형태, 색채, 질감, 비대칭적 구도 등이 충분히 회화적인 소재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래되고 낡고 퇴락한 것들에 기꺼이 매료된다. 그것은 시간이 만든 얼룩이고 피부다. 인간은 항거할 수 없는 시간의 힘에 늘 굴복해왔다. 시간은 사물의 피부에 들러붙어 주름을 만들고 색채를 벗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남겨진 흔적이 묘하게 보는 이들의 미적 감각을 자극한다. 그것은 화가들에게는 거의 치명적이다. 이미경 역시 낡았지만 더없이 아름답고(?) 재미있는 구멍가게의 외관에 사로잡혀서 이를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이미 이 낡고 오래된 구멍가게는 그것자체로 무척 ‘쌘’ 이미지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 외관을 따라가 본다. 재현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자체를 단순히 기록하거나 묘사하는 것에 머물지는 않는다. 작가는 구멍가게와 담벼락, 그 옆에 위치한 나무만을 중점적으로 그리고 그 나머지는 사상시킨다. 그로인해 구멍가게는 현실적 삶의 공간, 세계에서 절취되어 고립된 듯 위치하고 있다. 비교적 먼 거리에서 조망된 그 구멍가게는 적당한 거리 속에서 관조된다. 마치 섬처럼 자리한 구멍가게는 마치 사람처럼 그 자리에 홀로 고독하다. 세월이 변하고 무수한 시간이 흘렀어도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렇게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작가는 그런 공간, 그런 사람을 떠올린다. 양철지붕이 있는 오래된 구멍가게 같은 사람 말이다. 자연 속에서 사시사철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그렇게 조용히 늙어가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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