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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호·김도희:한계와 조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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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제목    한계와 조건 Limit and Condition

- 전시작가명 강석호, 김도희 / KANG, Sukho, KIM, Dohee

- 전시기간    2015. 11. 21(토)~2015. 12. 13(일)

- 초대일시    opening : 2015. 11. 21 토요일 02:00pm.

- 전시연계 프로그램
  작가와의 차담 : 매주 수요일 2:00pm~4:00pm

- 관람가능시간 및 휴관일
  화-금요일 10:00~18:00
  토-일요일 10:00~17:00
  월요일 및 공휴일은 휴관

- 전시장정보
  진화랑 Jean Gallery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25
  Tel. 02.738.7570

- 후원 
서울문화재단, 진화랑

- 전시개요
통의동 진화랑에서 <한계와 조건>이라는 타이틀 아래 강석호와 김도희가 2인전을 연다. 강석호는 책에 흰개미라는 생물학적 사회를 이접시킨 뒤, 책에 길을 내고 집을 짓는 과정을 기록한 “Trans-Society Project'를 통해 문명 그리고 인간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김도희는 큰 화재로 전소된 후 10년 이상 폐허로 방치된 집창촌 건물을 장시간 치웠다. 홀로 악취와 먼지 속에서 잿더미와 오물을 치우고 인근 업소와 주택가에서 얻어 온 수십 장의 걸레로 닦아낸 시간의 흔적은 인간 경험의 한계를 직시하고 예술의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강석호, Trans-Society #7-2, 2012, Pigment print on cotton rag paper, 45.5x37.4cm



김도희, 걸레질_Burnt Pink, 2015,단채널 비디오, 11분 53초, sound, color


실재에 관한 두 가지 시선: 《한계와 조건》 작가 인터뷰     


인터뷰 진행: 김정현(이화여대 미술사학)

김정현: 두 분 다 어떤 경향을 따르기 보다는 본인의 시선과 문법으로 꾸준히 작업을 진행하시지만 작업을 구현하는 방식은 서로 명확하게 다르시잖아요? 그런 두 분이 함께하는 전시이기 때문에 《한계와 조건》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이 두 단어를 두 분 작업의 지향점이나 태도를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봐도 될까요?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이 받아들이는 ‘한계’와 ‘조건’의 의미는 조금 다를 것도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석호: ‘한계’라는 단어 자체가 저에게 주는 의미는 ‘결코 초월할 수 없는 것’, 또는 ‘결코 초월될 수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여기서 저는 우리가 한계라고 구획 짓는 두 가지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하나는 일어날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데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서 선을 긋는 것들이에요. 사실 이건 안주하고 평안하기 위해 규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0.0001%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사실 한계가 아닌 거예요.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한계를 뛰어 넘어서 한계점을 설정한 것들이에요. 과학적으로 넘어설 수 있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그래도 될까 싶은 것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결정적으로 제가 한계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건 한계점이 정해지면 그 이상의 영역을 넘지 않는 모든 것들은 가능한 일이 되기 때문이에요. 설령 그것이 내가 실제로 접할 가능성은 희박할지라도 최소한의 일어날 확률이 있고, 그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거라면 그 모든 것들이 다 가능한 ‘조건’이 되는 거죠. 그래서 한계가 확인되면 조건을 알 수 있어요. 전 작업을 통해 그 조건들 중 희박한 가능성의 것들을 끄집어내서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를 좋아해요. 단, 전 항상 한 발 떨어져요. 성격문제일 수도 있고 관찰하고 전체를 보고 싶어서 일부러 체험을 회피하는 걸 수도 있어요. 단지 더 명확하게 보고 싶은 욕구, 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통제해보고 싶은 것. 저에게 있어서의 ‘한계’와 ‘조건’은 그런 의미라고 볼 수 있어요. 


 강석호, 상대적 절대자의 시선 #7, 2015, video, 1분 20초


김도희: 석호씨가 학자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라면 저는 상대적으로 심리적으로 접근을 한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모든 것, 우리의 존재 조건은 어떤 의미에서는 다 한계잖아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도 무엇을 하지 못하는 불능의 상태도, 그것과 연관된 모든 감정의 상태도 거기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어지는 것,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보고 싶은 것, 그리고 항상 억눌렸기 때문에 한번 일어나 보고 싶은 것, 이런 결핍이나 결여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한계를 감지했을 때 욕망이 일어나고 그 전과 다른 에너지가 생기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제 작업에서 ‘한계’를 관련짓는다면 한계가 인지되는 순간 견디기 힘든 불편함과 공포, 가까이 가서 아무리 봐도 알 수 없지만 코는 박아 봐야겠다는 것, 그 지점이에요. ‘한계’는 자기가 불능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것의 한계점에 가까이 가서 뭔가를 확인하면서 그 불능의 상태를 이겨내는, 혹은 소화하는 그런 계기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저한테 한계는 꼭 부정적인 거라고 할 수 없는 거죠. 인간의 조건이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그런 거. 그래서 저는 내 몸이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정말 중요해요. 추상적인 상상이나 기대 말고, 실제 나의 몸과 마음을 확 사로잡고 움직이는 것, 그게 나의 한계나 실체일 수 있는 거죠. 사실 작업할 때 ‘조건’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어요. 작업을 해나가는 내 주변의 환경, 거기서 내가 부딪히고 몸으로 체득하고 느끼는 한계들에 따라 바뀌는 것, 그게 조건이겠죠.



김도희, 불 탄 벽지 아래 닦이지 않는 벽, 2015, 퍼포먼스 기록물, 가변크기


김정현: 두 분 작업을 보면 공통적으로 ‘흔적’에 주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흔적’을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개념적 흐름이 한 지점에 멈춰서 시각화된 것이라 본다면, ‘흔적’을 발견한다는 건 어떤 시간성을 읽고자 함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실제로 석호씨는 흰개미라는 살아있는 개체가 책이나 나무 같이 역사와 시간을 축적한 매체를 오랜 시간 갉아 먹고 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얻어진 ‘흔적’을 결과물로 채집하시잖아요? 또 도희씨는 작가 자신의 감각하는 몸, 그 몸의 경험에서 어떤 ‘흔적’을 발견하고, 그러한 ‘흔적’을 관람자가 여러 감각을 통해 느끼게 하죠. 두 분이 이러한 작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선택한 매개물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야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강석호: 전 어렸을 때부터 유적지 같은 데에 가면 비바람에 의해 산화된 석상 또는 거의 다 흐릿하게 빛바래서 색이 점점 나무색에 가까워져 있는 단청 같은, 수많은 시간이 중첩되면서 인간이 세워놓은 것, 그리고 자연이 지워나가려고 하는 것이 맞닿아있는 상황, 그 자체를 보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묘한 쾌감과 상실감을 느끼며 거기에 남아있는 두 가지 흔적을 읽어나가던 게 작업으로 풀어진 게 아닌가싶어요. 특히 제 작업 중에 흰개미로 하는 작업은 낯설지만 가능한 상황을 보여주는 거예요. 실제로, 책이라는 소재에 흰개미가 구멍을 뚫고 산다는 건 정말 희소한 가능성이거든요. 당장 내가 보던 책이 몇 백 년이 지난 듯 지워져서 오래된 유물처럼 툭 던져진 상황, 내 눈앞에서 같은 흐름으로 존재하던 게 혼자 따로 떨어져서 확 늙어버린 것 같은 느낌, 약간의 허망함까지도 동반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름답게도 보이는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실제로 제 작업은 책이라는 인간이 정한 보기 좋은 규칙 위에 흰개미들의 규칙 하나가 얹히는데, 이 두 규칙은 너무나도 달라서 서로 충돌했을 때의 상황 그 자체가 주는 쾌감이 분명히 있어요. 인간이 계속 유지시키려고 하는 것이 다른 사회에 의해, 다른 존재에 의해 없어지고 있는 상황이 던져주는 질문 또는 시각적 쾌감일 수도 있고요. 그것을 위해 저는 흰개미라는 자연이면서, 생물이면서, 사회이기도 한 존재와 인간의 사고, 정보를 담고 있는 기록물이자 문명의 압축판인 책이라는 물질, 그 두 가지를 그냥 툭, 한꺼번에 던진 거죠.



 강석호, Trans-Society #22-1, 2014, Pigment print on cotton rag paper, 45.5x32.4cm


김도희: 저는 회화를 전공하면서 늘 시각성에 답답함을 느꼈어요. 뭔가를 찍어 바르려고 하면 생각하게 되는 것들, 색깔을 고민하게 되고 위치를 고민하게 되는 그 과정이 저는 너무 싫은 거예요. 아무리 안하려고 해도 내가 고민 없이 배운 것들, 그 한계 안에서 자꾸 맴돌게  되더군요. 일단 저는 인위적으로 만드는 데에 대한 공포가 있어서 흔적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제 작업은 그러고 보면 물질로 남는 게 별로 없어요. 보존이 불가능하거나 보존해서 의미가 지속되지도 않아요. 그렇다 보니까 보존에 무신경해지기도 하고... 말 그대로 정신적인 것을 얘기하려고 남긴 임시적인 흔적이거든요. 내가 이걸 일상품으로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보존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아요. 제가 사용하는 흔적은 보통 몸과 결부되어 있어요. 작품을 볼 때 관람자가 뇌 속에 있는 과거의 개념을 쓰기보다 현존하는 몸을 쓰길 바라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실감’하기를 원하죠. 파편적인 정보나 개념을 쓰는 게 제 작업에서는 무력하길 바라는 거예요. 그 부분이 저한테는 좀 중요한 맥락이에요. 벌거벗은 임금님처럼요. ‘얘도 나처럼 똑같이 실재하는 사람이야, 너도 나도 땀나고 숨 쉬고 물컹거리는 물리적 실재로 분명히 있어!’ 라고 말하는 거죠. 우리는 그걸 알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즐거울 때는 즐겁기도 바빠요. 내 인생을 생각하고 나의 실체를 생각하고, 나를 넘어 너를 생각하게 되는 건, 근본적으로 고통이 매개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가치를 말하기 위해서 고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들, 실제의 물건, 정말 만질 수 있고 서로 연결되어 한 공간에 있다는 느낌이 차단되어 가는 중이라고 느껴요. 하지만 세상이 그러면 그럴수록 예술은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입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 작업이나 선택하는 매개물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직설적이고 야만적으로 읽히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저는 추상적 개념의 공간적 나열이나 가상의 스펙터클을 도피처로 제공하지 않고 세계에 대한 실제감을 회복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김도희, 잿더미를 치워내고 남은 바닥의 손자국, 2015, 퍼포먼스 기록물, 가변크기


김정현: 석호씨를 ‘상대적 절대자’라고 표현한 것을 본 적 있는데, 작업에서의 작가의 위치를 잘 설명해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실험을 진행하는 것처럼 조건과 환경을 세심하고 철저하게 관리하시지만, 흰개미라는 생명체가 핵심요소다보니 통제 불가의 변수가 항상 존재할 텐데요, 이러한 위험 또한 작업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본다면 석호씨가 작업과정에서 경험한 위기 상황은 무엇이 있었고 또 그것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말씀해주셨으면 해요. 


강석호: ‘상대적 절대자’라는 단어 자체는 사실 제가 만들었어요. 제가 완벽하게 상황을 통제하지는 못하지만, 흰개미들이 살 수 있게 습도도 유지시켜주고, 비도 가끔씩 내려주고, 해도 쬐어주고 하는 역할들을 하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흰개미들한테 제가 그런 존재로 비춰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위기 상황이라면... 작업 초기였어요. 책이 나무로 만든 거니까 흰개미들이 살 수 있을 거라는 판단 하에 겁 없이 컬러도판으로 된 책들을 흰개미들한테 처음부터 던져줬죠. 그랬더니 한 일주일 만에 완전히, 깨끗하게 한 마리도 없이 전멸했어요. 그렇게 시행착오를 통해서 ‘적응-진화’라는 걸 알았어요. 조금씩 적응하면 적응이 곧 진화이니까 생존할 수 있어요. 인간과 달리 흰개미들은 급격히 많이 변해요. 세대 주기가 짧으니까 적응이 진화로 바로 이어지는 게 보이는 거죠. 근데 진화가 생존확률을 높일지는 몰라도 생명체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더라고요. 과학자들이 쓰는 용어로 ‘임계전이(critical transition)’라고 있어요. 그 지점을 딱 넘어서면 갑자기 확 변해버리는 거죠. 그렇게 생태계가 재편되며 생존했던 게 멸종하는 것을 눈으로 몇 번씩이나 확인했어요. 임계점을 지나면 제가 아무리 상황을 바꿔주려고 해도 두 달이면 언제 흰개미가 살았냐는 듯이 모든 흔적이 지워져 버려요. 그걸 보며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 도시가 점점 증식하는 그런 과정 자체가 임계점에 점점 다가가는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죠. 우두머리가 중심이 되어 굴러가는 우리 사회와 달리 흰개미 사회는 정말 공생, 공존할 수 있는 절대다수가 중심이 되는 사회예요. 그런데도 임계점에 도달해서 한번 무너지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려요.


강석호, Trans-Society #30, 2015, Pigment print on cotton rag paper, 162.2x124.4cm


김정현: 도희씨의 작업은 너무나도 직관적이어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불편함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곤 해요. 날 것이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지켜볼 때 생기와 공포를 동시에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때때로 관람자가 작가의 곁에 서서 작가 본인이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힘겹게 찾아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실제로 작업을 진행하며 질문의 답을 찾은 경험이 있었는지, 그리고 도희씨가 지금 몰두하고 있는 작업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도희: 저는 사실 어떤 것에 대한 답을 구해보자 이렇게 작업을 한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뭔가 응어리를 풀어내는, 억눌린 것들을 토해내는 과정 같은 것일 수도 있고 극기 체험 같은 것일 수도 있어요. 딱 버티고 앉아서 확인하고 싶은 것. 나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는 그 물컹물컹하고 이상한 그걸 꺼내서 내 시간에 일치시켜놓고 보고 싶은 그런 충동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답이라고 하면 그 시간을 겪었다는 거. 거기서 어느 순간 체증은 좀 사라지고, 그걸 해소라고도 해방감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임시적인 거거든요. 끝나고 나면 또 뭔가가 시커멓고 물컹물컹한 게 다시 오는 거예요. 그럼 그걸 또 이렇게 버티고, 느끼고 관찰하는 거죠. 그게 계속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시간을 몸이 품게 되고 그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다르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안 열리는 걸 알지라도 계속 문고리를 잡고 흔들어보는 것, 저는 그게 생기라고 생각해요. 어떤 상황, 내가 모르는 어떤 것, 내게 주어진 조건, 이런 것 안에서의 최전선까지 가면 마음이 조금 후련, 만족, 그런 이상한 게 있어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떤 앎이 나를 지나가는 게 있어요. 일상에서 인간 노릇하느라고 쌓아 놓은 기만 이런 거 있잖아요. 작업을 통해 그런 것들을 자백하면서 나를 놓고 조금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그럼 눈앞이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 들어요. 
   



김도희, 퍼포먼스 기록물, 2015


김정현: 성향과 구사하는 작업의 문법이 참 다른 두 분이지만, 이렇게 만나서 대화하다보니 두 분이 예술가라는 존재로서 세계를 인식하는 지점이 묘하게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눈을 뜨고 생각을 하고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참 어려운 세상이죠. 그렇기 때문에 예술과 예술가의 소임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요. 두 분은 요즘 어떤 고민을 하세요?  


김도희: 내가 만들고 내가 꺼내 놓는 것, 이 안에 내 모든 생각이 다 들어가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는 게 작업예요. 아무리 틀어막아도 작품은 수다쟁이처럼 계속 떠들고 있잖아요. ‘저러면서 네가 굳이 예술을 하느냐’라는 말은 안 들어야하는데... 아직은 충동과 욕망으로 작업을 하거든요... 그런데 내가 어느 순간 여기다가 딴 거를 기대하기 시작하면, 나는, 그런  예술가 김도희는 세상에 필요 없게 되요. 무서운 일이죠. 저는 그래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물으면 일단 ‘내년에도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게 솔직한 바람이에요. 나름의 욕망과 에너지를 가지고 내년에도 작업을 하고 그렇게 지속만 되도 감지덕지죠. 저는 ‘예술이 사회적 함의를 담아야한다’ 이렇게 믿지는 않아요. 저는 제 욕망과 제 삶을 위해 작업하고 있지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애쓰지 않아요. 그렇지만 내가 속해 있는 현실 그리고 나 자신을 직시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함께 살고 있는 인간에 공명할 수 있는 힘을 갖출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게 예술이고 어떤 태도가 예술가로서의 태도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하며 그걸 잊지 않고 작업하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유일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을 생각하면 예술가인거예요.


강석호: 창작을 하다보면 많은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서 나오고 다시 수많은 것들이 폐기되고 그 중에 정말 가치 있는 걸 찾고 그걸 조형화하는 그런 과정이 계속 이어져요. 그렇게 작품이 완성되고 발표되면 그 순간 그건 저한테서 떨어져 나가서 자기 스스로 까발려져요. 예술가로 살면서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고 괴로운 일들 중 하나는 제가 창작하고 던져져서 까발려지는 걸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 과정에 맞춰져서 둔감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거예요. 그리고 두려워지기도 하고요. 그리고는 창작과정에서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떻게 감상될까’, ‘그렇다면 이 부분은 좀 고쳐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것을 자꾸 생각하게 되요. ‘이러다 내가 몇 년 뒤에 에너지가 고갈되어 완전히 방전된 배터리처럼 변해버리면 예술가로서 더 이상 존재할 의미가 없어지는 거고 그러면 끝나는 걸까? 그러면 난 예술가가 아닌 무엇으로 살아야하지?’ 이런 생각을 해요. 그럼에도 제가 예술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체계에서 벗어나 내 체계, 내 논리대로 살아갈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예술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예술가는 ‘남이 보여 주는 세계와 똑같은 세계를 왜 보여줘야 하는가?’ 하고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추어져있거나 무관심하지만 의미 있는 것들을 노출시켜야하는 거죠.      



김도희, 모질고 질긴 목숨_뿌리, 2015, 퍼포먼스 기록물, 가변크기




강석호, Trans-Society #18-3, 2015, Pigment print on cotton rag paper, 162.2x126.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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