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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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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선(線)과 형(形)을 찾기 위한 변격의 연속



홍지수_미술평론



이동식은 십여 년간 백자대호(白磁大壺) 제작에 매진하고 있다. 2001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연이은 개인전 명칭을 <백자항아리>로 정할 만큼 작가는 작업의 축을 백자대호에 두고 정진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그가 매진했던 기형은 ‘달항아리’였다. 그는 여러 전시에서 달항아리의 여러 요소들(구연부, 어깨각도, 배불림, 굽 등)을 이리저리 바꾸고 각 부분의 합(合)을 맞추면서 형태와 크기, 부피, 선형 등을 다양하게 변주해왔다. 일찍이 학창시절 분청과 옹기기법을 익혀 두었고,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재직하며 사진이 아닌 유물 실체를 일상으로 눈에 담고 이해했다. 그 감각과 안목, 경험을 바탕삼아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 도자에 근해 새로운 조형미감을 구하는 일, 그 중에서 백자 제작에 주안하게 되었다.



달항아리 제작은 단순한 원형에 가까운 형태와 풍만한 부피, 상하좌우대칭이 맞지 않고 기우뚱한가 싶으면서도 안정적인 자태가 기형 특징이다. 여기에 아가리부터 굽선까지 흐르는 유려한 곡선미, 제작 시기별로 다른 미묘한 색온도-명도와 채도 차이 등이 한데 어울려 조화로움과 자연스러움, 담백함을 구현하는 것이 달항아리제작의 관건이다.



달항아리 특유의 ‘자연스러운 일그러짐과 비대칭선’ 은 독특한 제작 방식에서 나온다. 대호(大壺)라고 지칭하려면 높이가 40㎝ 이상이어야 한다. 물레 성형 시부터 재료의 수축률과 내화도를 계산하여 대형 발(鉢) 두 개를 제작한 후 상하접합기술로 항아리를 만든다. 초벌기물은 가마 속 높은 온도 속에서 상부에서 하부로 가해지는 중력과 사방의 화력을 견뎌야 한다. 기물이 견디지 못하거나 작가의 기술이 원숙치 못하면 기물의 가장 취약한 부위(대부분 상하접합 부위)부터 찢어지고, 터지고 결국 주저앉는다. 내화도가 좋지 못하고 번조 기술이 열악한 과거 제작 환경 속에서 옛 도공들이 40㎝ 이상, 온전한 형태, 아름다운 색채 등을 고루 갖춘 뛰어난 물건을 대량 제작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일그러짐과 비대칭선’ 은 단지 두 개의 발을 반대로 겹쳐 붙인다고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재료 준비부터 시작이다. 이동식은 자신이 원하는 색과 질감 그리고 고른 입자분포를 위해 직접 흙을 수비하고 꽃밟기 한 후, 물레판 위에 흙을 올린다. 묵직한 흙 둔덕을 양팔과 두 손으로 힘껏 움켜쥐었다가 손아귀 위로 올라온 흙을 다시 물레 회전 속도에 맞춰 올리고 내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 이내 중심이 잡힌다. 중심에 손가락을 대고 지그시 눌러 수직 구멍을 뚫고 바닥을 수평으로 피며 기벽을 끌어 올린다. 발(鉢)의 크기가 클수록 물레회전 속도를 기물의 수분 정도와 출렁거림에 맞게 세심히 조절하는 것이 기량이요, 감각이다. 물레 회전방향에 따라 흙만 휘도는 것이 아니라 도예가의 숨과 맥동도 물레 속도와 하나가 되어 돌아간다. 손 끝 미세한 움직임에 따라서 항아리의 선이 눕고 혹은 선다. 애써 숨을 참고, 몸을 뉘고, 손끝에 힘주어 항아리의 선이 서고 눕는 것을 지탱하고, 기물이 마르면 발 두 개를 잇고 두께를 가늠하며 굽을 깎기까지 이어지는 지난하고 복잡한 달항아리 제작의 모든 과정은 자신이 목표로 한 선과 형을 찾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처럼 달항아리 제작과정에는 흙 준비부터 미세한 물레질, 그것에 맞춰 뛰던 작가의 맥동과 숨이 나이테처럼 고스란히 기록된다. 묘한 출렁거림과 뒤틀림은 물리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결이 형성된 두 개의 발을 하나는 위에 얹고, 다른 사발은 아래 받쳐 만든 데 기인한 것이지만, 미세한 파동은 흙의 질(質)이 물레의 속도와 원심력에 저항하고 순응한 결과물이고 나아가 작가가 고개와 발끝을 끄덕이고, 얼굴과 몸․손끝에 힘주었다 풀고, 숨 참고 내쉬던 그 모든 과정의 낱낱과 세세함이 만든 것이다. 그것이 백자대호의 미묘한 외곽선 즉, 멈춰있으나 출렁이는 것 같은 선, 운율이 된다. 이동식이 만든 백자대호의 운율은 흙과 자연법칙, 이것을 조율하고 감응한 작가의 고유 기량과 맥동, 숨이 하나가 되어 형성된 고유한 것이다.





같은 유물을 견본삼아도 작가마다 지향하는 바와 선호하는 것, 해석한 바가 다르다. 이동식의 백자대호는 옛 것에 비해 단순미와 절제미를 더욱 강조하여 강건한 느낌이다. 구연부부터 바닥까지 흐르는 선이 굵고 시원하다. 곡률 마디가 부드럽게 흐르기보다 짧은 직선 몇 개로 크게 끊어 내려오는 느낌이다. 기형이 당차고 온전한 부피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이동식은 유달리 남자치고도 키와 손이 크고 손마디가 굵다. 기물이 클수록 부분보다 몸 전체를 써야 한다. 팔이 길고 품이 넓으니 기물을 크게 품으며 기물의 부피를 만든다. 팔이 길고 품이 넓고 키까지 크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손가락과 헤라를 맞대고 발형(鉢形)을 하부로부터 상부로 끌어올리며 벌릴 때, 큰 포물선을 구축하기 좋다. 그의 항아리 선이 유달리 시원하고 크게 기벽이 내부를 크게 감아 시원한 부피감이 돋보이는 이유다. 그는 두 개의 발을 접합할 때도 허리 선을 헤라와 손을 기면과 수직으로 세워 직선으로 대범하게 처리한다. 어깨선으로 흐르는 곡선이 각 마디 직선과 만날 때마다 마냥 흐르지 않고 숨골 역할을 한다. 구연부 목선, 허리선, 굽 선까지 흐르는 선이 자연스럽고 그 선이 품고 있는 부피가 적당히 풍만해야 백자대호의 미감이 산다.



달항아리 제작에서 익힌 자기 선과 형태는 이번 갤러리 완물 개인전에서 새롭게 시도한 입호(立壺)로 발전했다. 달항아리 제작이 내부에서 흙을 밀어 부피를 만들고 그에 상응하는 곡선에 방점이 있다면, 입호(立壺)는 작가가 모종의 어울림, 자연스러움을 만들기 위해 고려하고 신경써야할 조형 요소, 조합의 변수가 더욱 복잡하다. 달항아리가 완전한 구형은 아니더라도 상하좌우 대칭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입호는 상부는 어깨부터 허리까지 풍만하게 곡선을 그리고 하부는 좁아지는 상하 비대칭형이다. 하부의 선은 직선으로도, 매병처럼 곡선을 그리다 하부 즈음에 이르러 반대 곡률을 그릴 수도 있다. 상부의 곡률, 구연부 형태와 너비, 무게와 비율 등을 고려하여 하부의 선과 높이, 굽의 형태나 구경 등을 정해야한다. 상부대비 하부길이가 1cm만 짧거나 길어도 맵시가 없다. 굽 구경이 좁으면 위태롭다. 굽 높이가 너무 높거나 형태가 투박해도 상부부터 유려하게 내려온 외곽선과 어울리지 않는다. 상부 구연부 처리도 마찬가지다. 목을 직선으로 세울 것인지, 입술 각도를 꺾을 것인지, 얼마나 각도를 줄 것인지, 어깨선과 구연부가 맞물리는 턱을 좁게 할 것인지 넓게 할 것인지에 따라 항아리의 미감이 결정된다. 물레 위에서 빚고 깎아 열심히 형태와 비율을 맞추어도 도자예술의 특성상, 불 속에서 수축하거나 발색이 달리 나온다. 번조 전후로 다른 백자대호가 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니 가마 밖으로 가지고 나올 때까지 한 치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동식이 백자대호를 만드는 것은 옛 것의 복원이나 옛 것을 소유할 수 없어 대체제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그가 늘 옛 백자대호를 벽에 붙여 두고 수시로 옛 것을 찾아보며 견본으로 삼는 것은 법고창신(法古創新)-옛 것을 토대로 변화시키고 새것을 만드는데 근본을 잃지 않기 위한 가장 유효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을 전통에 두되 자신이 깨우친 것, 익혀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무한 응용하고 용기있게 시도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 언어를 궁구한 과정이 그의 항아리들이다. 옛 ‘백자대호’는 순백의 아름다움과 단순한 기형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과 풍만함, 단백함은 조선이라는 시대가 낳은 미감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가 새로운 백자에서 보고 싶고, 작가가 필히 그 안에 담아야 하는 미감은 무엇인가. 그것이 이동식이 흙 수비부터 오름가마 번조까지 복잡한 과정을 오롯이 수행하며, 옛 것과 닮아 있되 꾸준히 자신의 원하는 선과 형태를 추구하며 변격을 시도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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