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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도 : 둥근 곳과 너른 빛에 안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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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둥근 곳과 너른 빛에 안녕을>은 용산구 보광동에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 정확히는 재개발을 앞둔 구도심 지역에 얽힌 사적인 기억이나 풍문, 민담 등의 사사로운 이야기들이다. 지난 1년간 나는 이번 전시가 진행될 보광동의 일대를 관찰하는 과정 속에서 대면하게 된 인물들과의 대화, 사건, 사물들의 정보와 이미지를 화면에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리고 이로써 재개발로 인해 우리가 잃게 될 현 보광동의 마지막 모습과 이 지역의 특수한 지역적‧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시각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자 했다.

 이 전시의 제목인 <둥근 곳과 너른 빛에 안녕을>에서 ‘둥근 곳’과 ‘너른 빛’은 ‘둥근(독일어: rund)’이라는 의미의 룬트 갤러리와 ‘너른 빛(普光)’이라는 의미의 보광동을 뜻한다. 앞서 언급했듯 보광동은 재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다. 소위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개발 사업장으로 불린다는 한남3구역을 필두로, 올해 상반기부터 거주자 이주가 시작되는 보광동은 대형 건설사들의 주도하에 한남뉴타운이라는 초고층 아파트지구가 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이 전시가 진행될 룬트 갤러리 또한 올해를 마지막으로 보광동에서의 운영을 마무리 짓는다. 

 보광동은 흥미로운 장소다. 가파른 경사가 그대로 드러난 골목길에 촘촘히 지어진 연립주택들과 높은 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빼어난 풍광은 그 이미지적인 특색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더불어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그 기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거리의 오래된 상점들 사이로 들어선 젊은 감성의 카페나 비교적 저렴한 세를 찾아 이곳에 정착한 예술가들의 공방은 많은 이들을 보광동으로 불러들였다. 또 보광동은 지역 주민들의 국적이 다양한 만큼 한국에선 보기 힘든 종교 시설과 외국 음식 전문점들이 다수 분포되어 있는데, 한국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서울중앙성원과 그 주위의 할랄 음식점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나는 이런 보광동을 관찰하며 관광을 위해 단기거주 중인 타국의 여행객, 하교하는 초등학생, 출장 전문의 철물점 주인, 점(占)집 거리의 보살님 등 다양한 인물들과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들려준 보광동의 이야기를 아카이빙하며 전시의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작품 <둥근 곳과 너른 빛에 안녕을>은 희석되지 않은 흑색의 물감으로 그려져 있다. 나는 이쑤시개를 이용해 캔버스의 거친 표면을 긁거나 문질러 짙은 흑백의 명암으로 보광동을 그려나갔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대도시 풍경 뒤편, 그 어두운 뒤안길로 사라질 장소와 이에 깊이 스며든 삶의 흔적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마늘을 까던 장소, 암묵적으로 정해졌던 흡연 구역, 동네마트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부모님과의 하굣길 등이 이 작품의 주요한 모티브이다. 나는 높고 멀리에서 바라본 도시 풍경이 아닌 그 거리를 직접 걸은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정보들을 재구성해 지도엔 담아지지 않는 이야기들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한다. 또 점멸을 반복하는 LED 조명들을 작품과 연결하여 내가 동네 사람들과의 작은 만남을 통해 보광동을 바라봤듯 관객들이 이 작은 빛들에 의존해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의도했다. 
 
 나는 이 전시를 통해서 보광동에 쌓아 올려졌던 중층적인 감정과 삶의 역사, 장소의 상실로 인해 와해될 관계들을 추적하고 발화해보고자 한다. 사회학자 샤론 주킨은 도시가 ‘기원’과 ‘정통성’ 즉, 그 지역의 삶과 노동의 연속적인 과정, 점진적으로 축적되는 일상적인 체험들, 오늘 이곳에 자리한 이웃과 건물들이 내일도 여기에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을 때, 도시의 영혼이 상실된다고 말한다.(무방비도시: 정통적 도시공간들의 죽음과 삶, 29p) 이 전시는 도시의 영혼, 더 나아가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앞으로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재개발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이에 맞추어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과 정체성 또한 변해갈 것이다. 나는 삶의 질 뿐만이 아니라 영혼의 질을 함께 높일 수 있는 도시개발을 꿈꾼다. 이는 분명 건설사와 행정가 그리고 주민들과의 충분한 대화와 협의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부디 앞으로 펼쳐질 보광동의 빛나는 미래가 안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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