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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암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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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경험과 전후 가난하고 소박한 생활상에 집착하는 오우암의 작품을 서울에서의 첫 전시
기억의 풍경
오우암의 작품들



오광수│미술평론가


미술대학에 들어간 딸이 쓰다 남긴 물감으로 처음 유화를 그렸다는 오우암의 화력은 단순한 아마튜어리즘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말고도 그가 길어 올리는 이미지가 먼 기억의 심연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귄터 그라스가 쓴 <양철북>(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주인공 오스카가 세 살의 어린 나이에 성장을 멈추어버린 것과 같이 오우암은 소년기 어느 쯤에서 완전히 기억을 멈추어버린 기이한 내연을 지닌 삶을 살아왔다. 그가 다루고 있는 소재가 한결같이 먼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낸 것으로 빛바랜 전시대의 흑백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연민의 감정을 자아내게 하는 것들이다. 예컨대, 소달구지에 쌀가마니를 가득 실고 가는<저산 넘어 남쪽엔> 장면이라든가, 아낙네가 물지게를 지고 가는 장면<윗동네>이라든가, 댕기 땋은 처녀아이가 보퉁이를 이고 고개 마루를 넘는<서낭당 고갯길>장면, 또는 우물에 모여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아낙네들의 모습<샘터>이 이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전 시대의 풍속적 단면들이다. 시제로 따지면 50년대나 60년대쯤으로 국한되는 이들 풍경은 우리들 기억의 갈피 속에서 가까스로 떠오를 뿐이다.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풍경이란 현재형이 아니다. 기억의 박제 속에 기념화된 장면들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딘가로 가고 있거나 때지어 서성거리고 있지만 동적인 요소는 부단히 탈각되고 언제나 정지된 양상으로만 남아난다. 이 점에선 기리코나 발튀스의 어느 순간 정지된 장면의 작품과 비견되어진다. 그러나 기리코나 발튀스가 밝고 건강한 지중해적인 공기에 휩싸여 있는 반면, 오우암의 화면은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우울한 내면을 드러낸다. 그것은 오우암이 겪은 어떤 역사의 질곡이 극명한 양상으로 표상되고 있음에서다.





그의 작품에 가장 많은 분포로 나타나는 소재는 길이다. 길에는 철로<귀로><여로><철길 건널목> 가 있고, 들녘에 난 길<귀로1><귀로3><콩밭 메는 아낙><나른한 봄날>이 있다. 그 외 마을에 난 길이 있다. 길은 그의 화면에서 그림을 시작하는 기제에 다름 아니기도 하다. “길들은 풍경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이다. 그림은 바로 이와 같이 길 위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으로서 출발 한다”고 한 세잔의 말처럼 그의 대부분의 그림은 길 위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풍경은 비교적 선명한 선원근법(투시도법)에 지지되고 있다. 유독 멀어져가는 철로가 많은 것도 선원근법의 적용에 기인된 것이다. 원근법이란 인간이 선 자리에서 자연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의 장치이다. 인간이 선 자리에서 자연을 바라볼 수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자연은 인간에 대해 타자화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우암의 그림에선 풍경이 타자화로서의 리어리티를 좀처럼 지니지 않는다. 그의 기억 속의 풍경들이 자신과 대등한 관계로서 상대화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기도하는 것은 풍경과의 관계의 화해이다. 그래서 그의 풍경은 지극히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형국이다. 원근법에 의한 화면의 짜임새가 증진될수록 관계의 화해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역구내>나 <굴다리 주변>같은 작품은 대상과의 바라봄의 관계가 정상으로 되돌아온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의 길은 다분히 심미적인 요체를 띤다. 그래서 그가 바라보는 풍경은 단순한 현실적 장면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어떤 염원을 담은 장치로서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길은 떠나는 것, 또 돌아오는 것을 암시한다. 어딘가로 떠나야한다는 결심을 유도하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귀의의 푸근함이 내장되기도 한다. 길 떠나는 사람은 언제나 돌아올 것을 약속한다. 그러기에 길은 떠남의 쓸쓸함만 남는 것이 아니라 돌아올 기대로 가슴 메이게도 한다. 오우암의 길은 어딘가로 떠나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어느 순간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기억의 장치를 해방 시키려는 욕망의 채찍질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의 길에는 애타는 기대와 예감으로 인해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철로와 역 구내의 풍경이 빈번히 등장하는 것도 이 기대와 예감을 버리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철도는 근대화의 상징이다. 19세기 인상파의 거장 모네가 즐거이 철도와 철교를 그린 것은 근대화로 내달리는 19세기 풍요로운 삶의 감정을 솔직히 구현하기 위해서다. 오우암의 철도 역시 우리의 근대화의 어느 단면을 시사한다. 철도로 상징되는 에너지와 유통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을 가장 극명히 표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리는 철도와 역구내의 풍경은 근대화의 명암이 명증하게 드러남으로서 어두운 한 시대의 풍정을 기록하고 증언한다. 철길은 군대 막사 같은 을씨년스러운 도시 변두리의 판자촌과 창고 같은 건물 사이로 뻗어가고 역 구내의 구름다리와 그 구름다리 위로 무기력하게 오르내리는 군상, 그리고 철로가 지나는 굴다리 아래에 형성된 판자촌은 어두운 한 시대의 자화상을 대하는 느낌이다. 철길을 따라 굴로 들어가는 남정네의 자포자기나 간이식당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사람들의 초라한 행색이나 하릴 없이 주변을 맴도는 군상들은 거대한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인상이다. 그런 반면, 열심히 화차를 밀고 가는 철도역원들이나 일을 마치고 황혼녘에 돌아오는 선로반원들의 씩씩한 모습은 희망을 버리지 않은 서민들의 건강한 삶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코 편향되지 않은 균형 잡힌 대상의 기록이다. 도시 변두리의 풍경이나 철로의 주변은 건조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찾을 수 없다. 50, 60년대 도시 변두리에서 흔히 목격되었던 황량한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느낌이다. 쓸쓸한 황혼녘의 풍경이나 밤의 풍경이 빈번한 것도 이 건조한 장면과 연계된다. 그러면서도 한편, 동네에 악극단이 들어와 화려한 트럼팻 소리가 울려퍼지는 축제와 같은 날도<초저녁 바람 따라> 없지 않다. 가난하지만 가족의 따스한 저녁 한 때를 묘사한 <누룽지 긁는 소리>는 자신 속에 잠자는 훈훈한 인간애의 또 다른 표상임이 분명하다.




최근에 올수록 그의 그림이 밝아지고 있다는 점이 선명히 걷잡힌다. 같은 소재임에도 전에 작품에 비해 색조가 한결 밝아지고 있다. 화사한 과수나무의 꽃이 만개한 사이로 난 들길을 가는 사람의 모습을 다룬 <나른한 봄날>이나, 화면 전체가 초록으로 덥힌 들녘의 풍경<콩밭 매는 아낙>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화사한 색의 향연을 보여준다. 건강한 시각의 회복임이 분명하다. 이순의 나이를 넘어선 그에게 어느덧 달관의 관조적 여유로움이 다가오는 것인가.










오우암은 정식의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싶은 것을 혼자서 그렸을 뿐이다. 그것을 발표한다는 생각도 애초에 없었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에선 제도적 모든 방식에 일체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순수함과 건강함으로 그의 예술을 대변한다. 우리 주변에 이런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다. 입체파시대에 두아니에 루소같은 소박파 화가가 있었다는 것이 피카소와 브락크를 즐겁게 한 것처럼 전자문명의 아우성 속에 이처럼 순수하고 건강한 예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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