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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히로시 스기모토, ‘검은 상자’에서 ‘빛의 공간’으로

심은록

사진작가로 유명한 히로시 스기모토의 개인전에 사진이 한 점도 없다. 베네치아의 레 스탄체 델 베트로(Le Stanze del Vetro)에서 ‘몬드리안 유리 찻집(The Glass Tea House Mondrian)’(6.6-11.29)을 일컬음이다. 전시제목 그대로 몬드리안의 느낌이 풍성한 유리 찻집은 커다란 직사각형 풀장 위에 섬처럼 놓여있다. 바다 위에 떠있는 베네치아 건물들을 연상시킨다. 6월의 태양빛이 내리 꽂히는 베네치아에서 히로시 스기모토를 만났다.


<몬드리안 유리 찻집>을 설치 중인 히로시 스키모토와 제작스케치

The Glass Tea House Mondrian 

ⓒHiroshi Sugimoto+New Material Research Laboratory, Courtesy: Le Stanze del Vetro (Fondazione Giorgio Cini and Pentagram Stiftung). Sponsored by Sumitomo Forestry and Fondazione Bisazza.


Q. 이번 전시에 카메라를 사용한 작품은 없는 것 같다. 몬드리안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A. 이 섬(Island of San Giorgio Maggiore)은 베네치아의 섬들 가운데도 특별히 아름답고 열린 공간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공간에 유리로 된 박스(찻집)를 만들었는데, ‘카메라(Camera)’는 어원적으로 ‘상자’ 혹은 ‘방’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둡고 갇힌 상자(Camera Obscura, 사진기)가 아니라, 밝고 투명한 ‘카메라’이다. 일본의 다인(茶人) 센노 리큐의 미니멀리즘적인 다실(茶室)을 재구성한 이 찻집이 몬드리안의 작품과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Q. 베니스에 오기 전에 파리의 팔레드도쿄에서 당신 전시 ‘오늘날, 세상은 죽었다’를 감동적으로 보았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했고, 미셀 푸코는 “인간이 죽었다”고 했다. 이제 당신은 “세상이 죽었다”고 하는데, 이 전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A. ‘오늘날, 세상은 죽었다’에는 33개의 프로젝트가 펼쳐지고 있다. 일본 속담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그 역사를 말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그리고 나의 화석 컬렉션도 일부 출품되었는데, 화석 역시 ‘시간 기록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서로 다른 시간, 오래 전의 시간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카메라와 화석, 그리고 그 외에 여러 역사적 기억을 담고 있는 오브제들(빈 포도주 병, 잡지 등)을 섞어서, ‘오브제에 대한 역사’가 아니라 ‘삶에 대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Q. <번개 치는 들판> 연작은 카메라를 쓰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A. 이 연작은 렌즈도 카메라도 없고, 단지 순간적 행위만 있다. 40만 볼트의 전기가 순간적으로 금속판에 부딪히며, 사진과 정전기를 결합한 새로운 사진을 얻게 되었다. 이는 19세기 사진발명가 탈보트(W.H.F. Talbot)가 정전기와 전자기 유도를 실험한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Q. 올해 초 파리, 피에르 베르제와 이브생로랑재단 전시에서 5원소의 작품을 보았다. 이 작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A. 오륜탑(Gorinoto)은 일본 불교의 전통과 우주적 근본적인 철학을 드러낸다. 우주의 5원소를 상징하는데, 가장 아래의 모형은 모든 것의 받침처럼 대지(土)를 의미하고, 동그란 구(球)는 물방울처럼 물(水)을, 그 위에 뾰족한 날카로운 부분이 있는 삼각형은 불(火)을, 그 위의 모형은 바람(風)을, 가장 위의 없는 듯 작은 모형은 공(空)을 재현한다. 13세기의 디자인을 현대식으로 재현하고, 물을 상징하는 구(球) 안에 내 사진 연작 <바다 풍경>을 넣었다. 오륜탑은 원래 돌이나 자연석의 크리스털로 만들었는데, 나는 카메라 렌즈를 만드는 재료인 광학유리로 만들었다. 이는 현재까지 발견된 재료 중 가장 순수하고 맑기 때문이다.


사진예술의 대가 히로시 스기모토는 때때로 카메라와 렌즈를 사용하지 않은 사진 작업을 보여준다. 좀더 정확히는, 그는 우리에 카메라를 제공하여, 우리 스스로 사진을 찍게 한다.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재료를 상징하는 5원소를 카메라 렌즈와 같은 재료로 만들어,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렌즈)을 제공한다. 또한 베네치아의 '몬드리안 유리 찻집'에는 이 찻집 자체가 또 다른 세상을 보게 하는 밝고 투명한 카메라(방, 공간)가 되었다. 문자 그대로, 어둡고 닫힌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밝고 빛나는 ‘카메라 루시다’로 이어졌다. 이처럼 그는 ‘사진’이라는 영역을 어원적으로 혹은 공간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심은록(1962- ) 파리고등사회과학원 철학 및 인문과학 박사. 현 감신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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