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김연재/ 인포아트, 데이터 추상화에서 오픈 데이터 팬데믹까지

고충환




김연재/ 인포아트, 데이터 추상화에서 오픈 데이터 팬데믹까지 



각종 그래프와 도표와 도면, 신문 기사,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낸 이미지, 사진과 삽화, 신체의 부분 이미지와 장기 이미지, 생체 실험실을 방불케 하는, 자기 복제하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각종 세포와 미생물, 세균과 바이러스의 원형질 이미지, 단백질분자구조와 유전자 염기서열, 유기적인 형태의 미토콘드리아, 곤충과 유충과 동물 이미지, 지도, 수정체, 환기구, 지구본, 색바랜 고문서, 해골과 신체 해부도, 아랍문자를 연상시키는 알 수 없는 문자와 기호와 숫자들, 알 수 없는 비정형의 크고 작은 얼룩들, 그리고 비정형의 형태들이 어떤 계열도 없이 무작위로 배치되고 콜라주 된, 가히 이미지 다발 혹은 이미지의 폭발이라고 해도 좋을 이 무분별한 이미지들은, 텍스트들은, 기호들은 다 무엇인가. 

이미지들이, 텍스트들이, 기호들이 한자리에 있기 위해선 계열이 있고 계통이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그것들을 한자리에 모은 계열이 있고 계통이 있는가. 논리적 근거가 있고 이유가 있는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종래에는 마침내 그런 것 같은 것으로 판명이 될 것이지만, 이를테면 계열도 계통도 없이 자기를 무한복제하는 리좀 같은 것을 상정해볼 수는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저 우연하고, 무분별하고, 무작위적으로 보일 뿐. 탈맥락과 재맥락을 논리로부터 놀이의 차원으로 변질시켜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 만큼 탈맥락과 재맥락이 무분별하게 마구 수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 

작가는 이 일련의 그림들을 데이터 추상화라고 불렀고, 오픈 데이터 팬데믹이라고 부른다. 데이터와 인포는 그 결이 다르지만, 크게 보아 데이터를 소스로 인포를 다루는(피드백하는) 인포아트 그러므로 정보예술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그러므로 작가는 정보가 세계를 지배하고,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나아가 무의식마저 파고드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한편, 정보의 생태학에 부합하는 자기만의 형식을, 방법론을 제안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진즉에 조지 오웰이 빅브라더의 세계지배를 경고하기도 했지만, 이제 그 경고를 실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경고가 무색하게 지배를 기꺼워하면서,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 지배(수혜?)가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숨조차 못 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개인의 일상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선 사설업체를 통해 개인의 신상을 청소하는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역동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경제(코인)도 정보고 예술(대체 불가 토큰)도 정보인, 그런 온통 정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여기에 팬데믹이 터지면서 관련 정보 또한 봇물이 터진다. 맞으라니 맞고 받으라니 받지만, 백신과 검사의 효용과 실효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여기에 변종은 밑도 끝도 없는 것 같다. 모두가 잠재적인 감염원일 수 있다는 공포증과 우울증 또한 질병처럼 번지고 있는 것도 같다. 모든 정보에는 노이즈가 있고, 정보가 차고 넘치다 보면 과부하도 걸린다. 그래서 차고 넘치는 정보가 오히려 정보를 오리무중에 빠트리는 역설이 생긴다. 무분별한 정보가 오히려 선택과 판단 불능증에 빠지게 하는 역설이 생긴다. 지금 팬데믹이 꼭 그렇지 않은가. 굳이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의 삶의 행태가 꼭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작가는 SF적 상상력을 가동하기로 했다. 극 처방전이라고 해야 할까. 팬데믹으로 인류 대부분이 사망한 평행우주의 또 다른 지구를 상정하고, 지구 연방이 통치하는 지구연합을 조직하고, 바이러스 아카이빙 센터를 설립해 아포칼립스(관련 수사들)를 채집하고 분석하는 창구를 일원화하기로 했다. 이로써 암울한 수사들, 묵시적 수사들, 세기말적 수사들, 불안을 조성하고 불안정을 퍼트리는 수사들, 암적 수사들을 가려내 체계적으로 소거한다면 수사도 정화되고 사회 또한 안정화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형태의 전제주의나 전체주의로의 퇴행을 예상할 수는 있지만, 신인류의 출현을 위해 기꺼이 감수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제안된 신인류가 oo 되기다. 삐져나오는 우레탄 폼을 스타킹으로 감싼, 폐플라스틱 호스와 철사로 되는대로 칭칭 감긴 몸통에, 실리콘 가면을 덮어쓴, 그리고 여기에 방호(방균?) 안경과 방독면마저 눌러 쓴 얼굴을 한, 충분히 오염된 결과로 생긴 내성과 함께 거듭되는 피부이식과 변형으로 더 이상의 감염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완전무결(그리고 무해)한 신인류가 힘겹게 바닥을 기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oo 되기는 질 들뢰즈에서 유래한 것이다.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해서 자본주의인(체제 순응적인) 척하는 것이다.

 그렇게 신인류의 침묵하는 입을 통해 작가가 전해주는 수사는 도로 암울하고, 묵시적이고, 세기말적이고, 불안을 조성하고, 불안정을 퍼트린다. 다시,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무분별한 정보로 매개되는, 팬데믹 공포증과 우울증으로 매개되는 불안하고 불안정한 시대의 우화 같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