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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호 -사랑과 평화를 인류에게 팔고 싶다!

정영숙

설치 조각가 유영호
사랑과 평화를 인류에게 팔고 싶다!

문화.인종.종교 뛰어넘어 인사하는 조각을 통해
한국의 예의범절을 세계인과 공유하고 싶은 이색 예술가 


                                                                                                                    정영숙 | 갤러리세인 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3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다 삼송역에 하차해 유영호 작가와 만났다. 다른 작가를 만날 때와는 달리 인사에 신경이 쓰였다. 그의 조각품 ‘인사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여 정중히인사를 건네자 유 작가도 밝은 표정으로 화답했다. 인사를 나누자 낯섦이 주는 긴장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삼송역에서 작업실까지는 승용차로 10여분 쯤 걸린다. 저 멀리 구파발 뉴타운이 보일 즈음 통일로를 따라 벽제 방향으로 진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운영하는‘고양창작스튜디오’를 지나 시골 길을 달리던 차가 멈춘 곳은 도로가 접해있는 공장 건물앞이다. 주변이 개발되는 바람에 공장 앞마당이 도로가 되었고 그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었다. ‘조각가의 작업실은 어떤 분위기일까? 혹 인사하는 대형 조각이 작업실 앞에서 나를 반겨주지 않을까?’하고 내심 기대했는데 건물 한 채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동료 조각가가 공공건물에 설치할 대형작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유작가의 작품은 벽면 쪽에 일부가 있었고, 대부분은 창고에 보관중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인사하는 조각의 틀(성형체)이다. 
  유작가를 만나기 전, 그를 좀 더 알고 싶어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중 가장 많이 검색된 것은 ‘우루과이에 6m 인사하는 사람 조각물 설치'였다. 작가는 지난해 10월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경계를 이루는 라 플라타 강(Rio de la Plata)을 내려다보고,남대서양이 한눈에 들어오는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 6m 크기의 조형물 '그리팅맨(Greetingman)'을 설치했다. 3년이라는 오랜시간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작가는 이작품에 한국식 인사의 철학적 깊이를 표현함으로써 우루과이 국민에게 우정의 손길을 내밀었다. “많고 많은 도시 중에 왜 남미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 이 조형물을 설치했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어요. 저는 한국에서 가장 먼 곳에서부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거든요. 우루과이 국민에게도 한국을 알릴 기회도 되고요.” 
 그 작품은 일반적인 공공예술작품처럼 기업의 공모를 통해 선정된 것도 아니다. 한국식 인사를 통해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유 작가가 직접 우루과이 정부 측에 제안해서 일을 성사시켰다. 이 작품을 설치하는 데 필요한 2억원가량의 경비는 주 우루과이 한국대사관, 한진그룹, 두산 연강재단의 후원을 끌어내 마련 하였다. 몬테비데오 플라자 델라 코레아 광장에 그리팅맨이 설치되던 날, 현지인들의 관심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컸다. 우루과이 국영 라디오 방송은 7시간 동안 생방송을 내보냈고 행사장을 지나치는 운전자들이 행사장면을 쳐다보느라 여러 건의 접촉사고를 냈을 정도였다. 유투브에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페러디한‘그리팅 스타일’영상이 소개됐다. 그의 작품이 설치된 이름 없는 광장은 한국대사관의 노력으로‘대한민국 광장’으로 이름 붙여졌고, 그리팅맨 주변에는 무궁화 나무가 심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세계적 공감을 얻어낸 ‘그리팅맨’

 그가 처음 ‘인사’라는 콘셉트로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0년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의 유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이 인사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그 작품을 본 교수와 학생들이 굉장한 흥미를 보이자, 그는 한국.아시아.서양의 인사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그는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에 위치한 상상 스튜디오 건축 외관을 디자인하면서 3.5m 크기의 그리팅맨을 설치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조각상에 인사하는 이색 광경이 벌어졌다. 인사행렬에는 국적과 나이구분이 없었다. 3~4세 어린아이에서부터 해외 관광객까지 모두가 배꼽인사를 했다. 고개를 숙이는 한국의 인사가 문화. 인종 뿐 아니라 배경.시간을 뛰어넘어 소통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 왕을 만났을 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장면이 세계 각국에 보도됐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스포츠선수나 연예인의 인사를 본 사람들이 많았어요. ‘유럽식 인사보다 다정하고 평화적인 느낌이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그는 한국식 인사가 세계적으로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한국과  지구 정반대 쪽에 위치한 우루과이에서부터 그리팅맨을 설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그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에 앞서 우선 30cm 크기의 그리팅맨 알루미늄 조각 작품 1000개를 제작해 전시, 판매하기도 했다.
 “작품을 구상하면서 성별, 신체 비율, 색상에 대해 많이 고민 했어요. 성별을 남성으로 결정한 이유는 인사에 인색한 남성들이 좀 더 많이 인사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었죠. 피부색깔도 특정 인종이 연상되는 노란색,흰색, 검은색을 피해 옅은 푸른색으로 선택했죠.”
 그의 목표는 전 세계 분쟁 지역이나 오지, 도시 빈민가 등 소외 지역,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 인류에게 공헌한 인물이 살았던 곳을 골라 1000개의 거대한 그리팅맨을 세우는 것이다. 작가는“그리팅맨이 문화와 종교, 인종, 정치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구축하는 훌륭한 도구”라고 말했다. 그는 우루과이에 이어 강원도 양구군에 세울 두 번째 작품을 구상 중이다.
 “양구는 몬테비데오의 지구 반대편이고 한반도의 정중앙(동서남북 기준)이며 저의 고향이기도 해요. 얼마 전 양구군에 이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했고, 미팅과 현장답사를 통해 긍정적인 뜻을 끌어냈어요. 삼팔선이 가로지르는 곳에 그리팅맨이 설치된다면 공공미술을 통해서나마 남북의 평화를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00년 초반에 유 작가는 한동안 독일에서 설치작업을 했다. 다른 작가들이 갤러리에서 감상용 작품을 전시하지만, 그는 선물가게에서 자신의 작품을 판매했다. 동료작가들의 야유를 듣기도 했지만, 많은 관람객들은 아무런 질문 없이 물건을 구매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관람객들은 미술 작품인지 뭔지 묻지도 않고 제 작품들을 구입해 갔어요.”
 그는 작품에 아우라를 씌워 고가에 판매하는 예술시장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미술은 무엇인가? 미술은 자본 권력의 산물에 불과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오랜 고민 끝에 발표한 작품이 'Price shop'이었다. 미술제도의 아우라가 없는 공간에서 미술과 상품의 경계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는 한국, 일본 등의 가게에서도 작품 당 3만원에서 250만원까지 하는 다양한 가격을 책정하고 자신의 작품을 팔았다. 
  독일에서 개념적 사고로 주목을 끌었던 그는 졸업 작품으로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졸업 발표장은 매해 15만명 이상의 관람객과 세계의 주요 미술관 관계자, 갤러리스트들이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몰려든다.

그리팅맨 우루과이 설치 전경. 4m x 4m x 6m, 알루미늄 주물, 우레탄 도색, 2012
 
진정한 예술은 소통하는 것

 그는 진정한 아카데미란 학생다운 실험정신이 깃든 아방가르드한 작품을 창작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판매만을 위한 목적이나 미술계 주요인사에게 발탁되야 한다는 이유로 실험성이 배재된 작품이 주를 이루는 풍토를 비판하고 싶었다. 
 그는 지도교수인 클라우스 링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방 하나를 빌려 동료들이 전시에 쓰고 남은 재료나 자재들을 안쪽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았다. 당시 학장이었던 신표현주의 대가 루페르츠는 쓰레기를 전시한다고 문을 닫으라고 했을 정도다. 사실 학장보다는 더 큰 장벽은 쓰레기를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던 아카데미의 구성원들이었다. 아카데미를 둘러싼 아방가르드와 미술 자본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기도 했다. 
 작품이 공개되자 관람객은 흥미로워했고 미술계의 저명인사들이 다가와 그에게 인사를 건네며 격려를 해주었다. 언론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그 당시 처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품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정말 황홀한 경험이었죠.” 그는 작업을 기획, 제작, 설치할 때도 특히‘소통’을 중요시한다. 인간과 인간관계가 작업의 주제이기도 하다. 작품을 관람하고 참여하고픈 사람들, 작품에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높다. 그는 휴머니스트 아티스트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영국 탄광의 도시 게이츠헤드에 설치된 높이 20m, 너비                 54m, 무게 208t에 달하는 거대 조형물인 ‘북(北)방의 천사’가 떠오른다. 탄광과 목욕탕 부자에 설치된 이 작품은 10년이라는 오랜시간에 걸쳐 설치됐다. 작업을 진행한 공공미술 작가 안토니 곰리는 조선소의 실직자들을 설득해서 작품제작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폐자재를 이용해 만든 이 작품은 현재 이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며 지역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그는 아티스트의 힘을 믿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진행 중인‘숍 프로젝트’, ‘꿈 프로젝트’, ‘그리팅맨 프로젝트’, ‘더 버스’ 등의 프로젝트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길 바란다. 자신의 작품이 미술관, 갤러리에서 감상되는 대상 보다는 마켓에서 소통하는 작품이거나, 놀이동산의 기구처럼 즐거운 체험을 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길 바란다. 그는 상호교환적인 인터렉티브 아트(Interactive Art)와  광의적인 수용미학을 추구한다. 
  그는 양구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의 교육열은 높았으나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해 미술학원을 다니지는 못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을 만나 미술대학 진학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때 미술선생님은 그의 어머니에게 “작가를 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만족하지 못해도 삶에 대한 깊이는 누구보다 깊을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작가는 미술전공을 하는 자녀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자녀가 가진 예술적인 느낌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겠지만 믿어주세요. 아티스트는 그림을 잘 그리는게 전부가 아니라 사물이나 삶을 달리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합니다.”
 그는 20대 후반, 진리 탐구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명상 수행을 하기 위해 4년 동안 작업을 중단했던 적이 있다. 그때 신비체험도 했고 깨달음의 단계로 나아가는 쿤달리니(Kundalini)를 겪었다. 그때 그는 “큰 사람은 작은 것에서 변화된다.”는 진리를 배웠다고 했다. 인간과 인간이 나누는 예의, 인사에서 작품은 시작된다. 그의 인사 프로젝트가 전 세계로 확장돼 사랑과 평화를 나누는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스페이스 상상 건축 디자인. 헤이리, 2009

 
좌)아카데미-쿤스트. 공간설치, 복합재료,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독일, 2003
우)그리팅맨 숍 전시 전경 부분.  가변설치, 2011




                                                                                                                                            월간중앙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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