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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정영숙의 아트테크-컬렉터의 수장고를 열다(8)] 리각미술관 이종각 조각가

정영숙

[정영숙의 아트테크-컬렉터의 수장고를 열다(8)] 리각미술관 이종각 조각가 


시선을 압도하는 조각 공원, 천안 예술의 명소


작가의 시기별 주요 작품과 국내외 유명 조각가 작품 전시
왕성한 창작활동… 미술관과 관람객 간의 유기적 소통 중시


▎이종각 조각가는 천안에 위치한 리각미술관을 직접 조성했다. / 사진:리각미술관

예술을 창작하는 작가의 컬렉션이 가득한 공간, 리각미술관으로 떠나보자. 미술관은 천안시 동남구 태조산을 등에 업은 곳에 위치해 있다. 천안 나들목을 빠져나가 상명대학교와 호서대학교를 지나면 작은 터널이 나온다. 터널을 벗어나면 바로 오른편에 미술관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푸릇푸릇한 잔디 사이로 키 큰 소나무와 웅장한 조각품들이 보인다. 낮은 언덕 아래 펼쳐지는 조각 정원이 시선을 압도한다. 리각미술관은 이종각 조각가가 설립해 조성했다. 4750평의 야외 조각공간과 실내 260평의 전시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이종각 조각가는 1937년 충북 청원 출신으로 초등학교 때 천안으로 이사 와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직접 용접해 만든 작품으로 국전에서 특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디뎠고, 이후 국전 초대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개인전은 현대화랑·한국미술관·호암갤러리 등에서 열었다. 1972년 상파울루비엔날레 초대작가였고 1988년 서울올림픽 국제 조각 심포지엄에 참여했다. 1995년 미술의 해 기념 파리유네스코전, 2009년 서울 노을공원 야외조각 제작 설치 등 수많은 국내외 초대전과 단체전에 참가했다. 1990년 제4회 김세중 조각상, 1991년 제2회 김수근 문화상 수상 경력이 있다. 1969년부터 경희대학교에 강사로 출강했는데, 이듬해인 1970년 경희대 설립 20주년 기념 조각 ‘경희인의 상 건립’ 공모에 당선됐다. 이를 계기로 조교수로 임명됐고, 이후 대형소조(청동)로 제작한 경희인의 상 ‘팔선녀’는 지금까지도 경희대 캠퍼스 기념사진 촬영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경희대학교에서 2003년 퇴임 후 미술관 운영에 전념하며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작가와의 인터뷰는 전시장 안에서 진행됐다. 전시장 입구에 최근 작가가 조각한 작품이 한 점 놓여 있어 80대 후반의 나이에도 계속해서 작업하는 작가의 열정을 알 수 있었다. 첫 질문은 조각가로서 미술관을 운영하게 된 계기에 관한 것이었다. 작가는 경희대학교에 재직하며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79년 덴마크 정부 초청으로 왕립미술원에 1년 체류하며 작업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미술관 건립의 계기가 된 1979년 덴마크 유학


▎리각미술관 전경. / 사진:리각미술관

1970년대 후반, 해외 일정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기회가 와서 과감히 떠났다고 했다. 그때 덴마크에 위치한 미술관들과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 노르웨이 뭉크 미술관(Munch Museum), 스웨덴에 위치한 조각가 카를 밀레스 정원(Millesgarden) 등을 견학했는데, 마치 신세계를 본 듯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충격과 함께 강렬한 느낌을 받았는데, 가장 부러웠던 것은 한 작가의 작품을 한 공간에서 조망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개인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했다. 20세기 대표적인 추상 조각가 브랑쿠지의 작품이 작가로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됐단다. 통나무의 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갈라진 것을 그대로 작품화하는 것에서 발상을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덴마크에서의 1년은 그의 예술세계 구축은 물론 미술관을 건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미술관을 건립하려면 땅과 작품이 필요하다. 작품은 본인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하면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넓은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작품 활동을 했지만 미술관 부지를 준비할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20대 후반부터 작품을 판매하기 시작해 2년 여 동안 후원자의 지원으로 안정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1964년 군대를 제대한 후 당시 반도화랑을 운영한 고 이대원(작가이자 관장) 선생의 추천으로 일부 소형 조각 작품을 상설전으로 전시하게 됐다. 당시 유대인 출신 미국 화상인 잭 프래거가 작품에 관심을 보였고 전시하는 작품마다 구매를 했다. 이를 계기로 매월 1500달러(약 30만원, 당시 교수 월급은 4만원)를 받았으니 매우 큰 금액이었다. 원화 대비 달러 가치를 감안할 때 2년 동안 그가 벌어들인 외화만 3만6000달러였다. 어려운 용접 작업보다 선 드로잉 작업을 선호해서 많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모은 자금이 미술관 건립의 꿈을 실현하는 종잣돈이 됐다.

이렇게 해서 국내에서는 개인 미술관이 거의 없던 시기인 1983년, 충북 청원에 ‘이종각 야외조각 미술관’을 개관했다. 1993년 충남 천안으로 이전해 재개관했고 1994년 야외조각공원 및 실내전시공간을 완공했다. 천안으로 미술관을 옮긴 계기는 ‘천안의 상’ 조형물을 제작한 것과 당시 천안시장의 추천이 있었다고 했다. 그 뒤 1997년 ‘리각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2007년에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1종 전문미술관으로 등록했다.

미술관 야외에 설치 중인 작품은 중·대형 조각 25점이다. 이렇게 작품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덴마크에 체류한 시기에 갖게 된 꿈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미술관을 짓고 운영하기 위해 대기업과 개인 소장자에게 자신의 작품을 판매했다. 하지만 새로 건립할 미술관에 설치할 작품은 판매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정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 의뢰, 대기업에서 구매 요청이 왔지만 판매하지 않았다. 이렇게 본인 작품을 컬렉션하다 보니 미술 시장에서 적품을 판매하는 데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시기별로 의미가 있는 작품을 미술관에 보여주기 위해 집중했다고 했다.

유럽 미술관에서 모티브 얻어 미술관 건축


▎이종각 조각가의 작품 ‘확산공간’. / 사진:리각미술관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시기별 주요 작품으로는 1950년대 구상작업 시리즈, 1907년대 레일시리즈, 1980년대 확산공간 시리즈, 그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응축형의 변주 시리즈를 꼽았다. 초기의 구상작업 시리즈는 철조용접의 방식으로 힘있는 운동감을 표현한 드로잉적인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발레’, ‘곡예’, ‘현악4중주’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역동적인 모습들을 디테일하게 녹여내고 있다. 이 시기 작품은 앞서 언급한 미국 화상에게서 작품 50여 점에 대한 후원금을 받는 조건으로 판매됐다. 작품 특유의 부드럽고 유연한 동작은 선적인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다. 레일시리즈는 경희대학교 재직 시절 작품으로 토막 난 레일의 부위를 다양한 형태로 변형시켜 하나의 독립된 대상으로 구축한 작업이다. 강철의 본질적 속성을 변형, 왜곡시켜서 안정적이고 지루한 형태를 긴장감 있는 조형 형태로 표현했다.

1980년대 확산공간 시리즈는 레일 시리즈와 다른 매스(mass)감이 돋보인다. 박스형과 파이프형이 서로 연결돼 하나의 전체적인 구조체 형태로 돼 있다. 기술적 형상화에 대한 극복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자연적인 공간과 실제 덩어리가 어우러지며 뿜어내는 확산과 수축의 긴장감을 통해 역동적인 생명력의 원천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응축형의 변주 시리즈다. 대표작인 확산공간은 미술관 입구에 설치돼 육중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일체의 구조적 형태를 배제하고 단순한 덩어리(mass) 자체에 관심을 집중한다. 육중한 구조물이 진흙더미를 밀고 나갈 때처럼 외부로부터 물리적인 힘이 가해질 때의 궤적을 보여주며 물체 내부에서 작용하는 운동과 생명력을 표현했다.


▎이종각 조각가의 작품 ‘응축형의 변주 (1)’. / 사진:리각미술관

리각미술관 건축 설계는 작가의 홍대 후배인 문신규(토탈미술관 설립자) 건축가가 맡았다.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접목하고 출입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자연 채광 등을 고려한 건축이었다. 당시 유럽의 미술관들이 규모가 크고 층고가 높은 것이 특징이었는데 리각미술관도 공장 건물처럼 높은 층고와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당시 선진적 콘셉트를 적극 수용해 건축됐다. 층고가 높다 보니 일부 내부 공간을 2층 구조로 구분해 전시 공간의 변화와 다양한 작품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미술관의 컬렉션은 이처럼 이종각 조각가의 시기별 주요 작품 100여 점 이외에도 세계 유명작가의 작품들과 국내 신진 작가, 중년 작가의 작품들도 다수 설치돼 있다. 그중 2021년 소장전에 소개한 세계적인 작가의 판화 작품들 중에는 크리스토(Christo), 카렐 아펠(Karel Appel), 안토니 타피에스(Antoni Tapies), 아르망(Armand), 알젠스키, 칠리다 등이 있다.

80대 고령에도 왕성한 활동으로 지역과 소통


▎2022년 리각미술관에서 열린 조순호전. / 사진:리각미술관

리각미술관은 개관 이래 현대미술의 중심이 되는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평면, 입체, 그리고 미디어아트 등 장르도 다양하게 구성해 천안의 현대미술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 지역의 특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포스트 천안 기획전을 꾸준하게 이어오고 있다. 해외 작가 초대전으로는 2016년 오스트리아의 젊은 작가 유르겐 클레포트의 ‘쉘퍼크- 불의 정원’전이 주목 받았다. 작가는 층고가 높은 미술관 내부 공간을 적극 활용했는데, 오스트리아 대사와 천안시장도 방문했던 뜻깊은 전시였다. 지난해에는 천안 출신 조순호 초대전이 있었고, 올해는 7월까지 이웅직 회고전을 개최했다.

미술관은 교육 프로그램과 세미나·학술 행사도 진행한다. 교육 프로그램은 학생과 성인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나눠진다. 2022년 하반기에는 그림책 심리 프로그램을 주중과 주말에 운영해 지역 주민과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렇듯 미술관은 시민들과 소통하는 문화센터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한편 미술관만의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커핑 클래스였다. 야외 테라스 등 자연과 예술을 품은 CAFE M에서 원두의 다양한 맛과 향을 느끼며 각자 개인 취향의 원두를 찾아보는 수업이었다.

또한 리각미술관은 이종각 작가의 예술적 열정과 성취를 보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리각미술관만의 특징은 작가가 본인의 중요 작품을 시기별로 소장해 한 공간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준비하지 않았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미술관이다. 지리적으로 자연을 품은 드넓은 조각공원의 아름다움을 담은 미술관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작가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있다. 기존의 미술관 내부 공간과 조각정원을 일부 새로운 콘셉트로 변화시킬 예정이다. 고령임에도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고 있는 작가는 미술관과 관람객 간의 유기적인 소통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중심이 되는 미술관으로 다양한 문화 콘텐트로 소통하며 많은 관람객이 찾아와서 예술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공간에서 제대로 휴식을 갖기를 희망하고 있다.

※ 정영숙 - 갤러리세인 대표. 전 현대백화점 현대아트갤러리 수석큐레이터.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했으며, 추계예술대 대학원에서 문화예술행정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여주시 명장심사 도예파트 자문위원이며 ㈔한국지역문화학회 감사로 있다. 대학과 기업에서 미술시장과 투자 등을 강의하는 한편 미술비평 등 글쓰기와 컬렉터 인터뷰를 병행하고 있다.




원본출처: https://www.daljin.com/index.php?WS=31&BC=cw&CNO=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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