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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비평][GB24] (25) 마리나 라인간츠 Marina Rheingantz

우진영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마리나 라인간츠 :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오고가는 추상적 풍경화 


우진영

기대했다. 2024 광주비엔날레의 타이틀을 처음 접했을 때. 좋았다. ‘판소리, 모두의 울림 (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이란 비엔날레의 명제가. 스스로 소리에 예민한 사람임을 알고 있다. 데시벨이 조금만 높아져도 놀라는 내향형 사람이다. 마침 광주 비엔날레 출장이 잡혔다. (필자의 직장은 미술관이다) 설렘이 차오른다. 다만 걱정이 스친다. 비엔날레는 난해함과 거침없음이 미덕으로 평가받는다. 제목에서 오는 친근함이 잘 지켜질까. 천천히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돌아보며 혼잣말로 되뇌었다. ‘역시 쉽지는 않아. 비엔날레는 내 취향은 아니야’라고. 

올해 비엔날레 본 전시의 테마는 세 개로 나뉘어진다. Ⅰ.부딪침 소리, Ⅱ. 겹침 소리, Ⅲ. 처음 소리 다. (Ⅳ. 소리숲은 본 전시가 아닌 파빌리온에서 이어진다) 기대를 살짝 누그러뜨리며 (?) 둘러보기로 한다. 만나고 싶은 작가가 세 번째 섹션에 있다. 바로 회화 작업을 이어가는 브라질 출신의 작가 마리나 라인간츠(Marina Rheingantz)1)다. 

갤러리 5에 왔다. 세 번째 섹션인 ‘처음 소리’ 의 마지막 전시공간이다. 어서 작품을 만나고 싶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음...조금 불친절하네’ 라고 생각했다. 마리나 라인간츠의 <소리의 초상>(2024)에 대한 첫 느낌이다. (도판1) 실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읽어내고 싶어졌다. 전체적으로 아이보리와 베이지 계열의 색으로 캔버스를 채웠다. 그 위로 다양한 색이 여기저기 흩어진다. 붉음을 물들였고 짙은 초록들이 뿌려졌다. 점찍듯이 모여 있다 제멋대로 떨어져 있기도 하다. 붓질이 거칠다.  

<소리의 초상>이란 작품명이 와 닿지 않는다. 광주비엔날레 공식 작가 소개를 읽어본다. “인간이 살지 않는 공간을 형상화 한다”라는 구절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현실 속 정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캔버스 속 쪼개진 스티치를 연상하게 하는 물감의 흔적들은 모호함을 더한다. 여백이 보인다. 외롭다. 남겨진 듯하다. 풍경화보다 추상화에 더 가깝다. 소개글 속 이어지는 문장을 계속 읽는다. 갸우뚱한다. “어린 시절을 보낸 브라질의 시골 풍경에서 모티브를 얻는다” 현실에 기반을 둔 회화라고? 점점 더 모르겠다. 다시 가까이 눈 맞춰본다. 갈라지는 획들과 정처 없이 뭉쳐있거나 뻗어있는 점과 선들은 비현실에 더 가까워 보인다. 어려워진다. 

동의하고 싶지 않다. 풍경화 장르에 속한다는 서술에는. 이번 광주비엔날레를 위해 그렸다는 <소리의 초상>은 함축적으로만 느껴진다. 그 때였다. 다른 작품에 눈이 간다. <팡파르>(2022) 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일어난다. (도판2)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캔버스의 빈틈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어둡다. 흘러내리는 마티에르는 <소리의 초상>과 닮았으나 화면 속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소리의 초상>이 비어있고 고독했다면 <팡파르>는 반대다. 요동치고 활기를 품었다. 충만한 기운이 서려 있다. 흥미롭다. 그 차이가. 짙고 침침한 색조에도 에너지가 넘친다. 집중해 들여다본다. ‘사람이 있나?’ 형상이 눈에 맺힌다. 캔버스 속 누군가 기척이 느껴진다. 화면의 중심을 물들인 색에 눈길이 머문다. 포도주의 빛깔이다. 

순간이었다. <팡파르> 의 공간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버건디 색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걸어간다. ‘또각또각’ 소리가 들려온다. 구두를 신었다. 그 때 풍경이 펼쳐졌다. 비현실의 세계가 현실로 바뀌었다. 다시금 깨닫는다. 예술 작품을 바라보고 알게 되며 감상한다는 것은 나의 영역임을. <팡파르>의 흩뿌려진 기호처럼 보이던 물감의 흔적들은 어느새 일상 속 한 장면이 되었다. 화면 속 여기저기 던져진 듯 하얀 점들이 눈송이 같다. ‘차갑다’ 피부에 닿은 듯이. 어우러진 색채에서 만개한 꽃들이 떠오른다. 마음이 밝아진다. 꿈인 듯 실제인 듯하고 추상인 듯 구상 같다. 마리나 라인간츠의 풍경화는 이처럼 입체적이다. 

“작업을 말로 표현하기는 늘 어렵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에 관한 것이지 반드시 내러티브를 따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리나 라인간츠의 말이다. 알 거 같다. 이제야. 그의 회화는 움직인다. 거침없이. 붓질을 살려낸 기하학적 기호들이었다가 잠시 후에는 틈새를 뚫고 나오는 빛이 된다. 확장하고 변주한다. 시간을 두고 보아야 보인다. 마법 같은 풍경화의 등장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마리나 라인간츠가 평생 기억한다는 유년의 장소는 어떤 곳일까. 그 장소에 대해 알게 되면 눈앞의 회화를 잘 읽어 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이미지를 검색해본다. ‘브라질 아라라콰라’ 편견 없이 보고 싶었다. 석양빛이 도시를 물들인다. 붉다. 아름답다고 느껴지던 찰나였다. 이내 두려워진다. <Ceramica> (2023)가 떠올랐다. 작년 11월 런던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 열린 마리나 라인간츠의 개인전 작품이다. 우연이었다. 방구석 미술관을 탐방 중이었다. 겨울이 성큼 다가왔던 때였다. 계절형 우울인지 내재된 번아웃인지 모를 침울함이 깊어지던 때였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어떤 추상화를 보았다. 핏빛 같은 색이었다. 흘러내리는 듯도 하고 뭉개져서 짓이겨져 있는 듯도 했다. ‘내 마음 같아’ 라고 바라보다가 빠져들었다.

들떠있는 색감은 부유하듯 유영한다. 흐르는 마티에르는 춤추는 듯도 하고 억지로 휘어져 있기도 하다. 마리나 라인간츠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제 정의하고 싶다. 자유로운 추상화이자 말을 거는 풍경화, 마리나 라인간츠가 그려내는 회화의 세계다. 

이제야 마리나 라인간츠에 대한 텍스트가 이해되었다. 그녀는 기상 현상, 기억과 사진, 장소에서 영감을 얻는다. 패턴과 색채의 규칙적인 질서를 때로 본능적인 무늬와 점들로 결합한다. 풍경에 기억을 얹고 상상의 영역을 통과하며 재가공하는 과정이다. 그의 작품이 디스토피아처럼 불안해 보였다가 익숙한 기억도 함께 불러오는 이유다. 

<우르밤바>(2024)를 마주하면 마침내 라인간츠의 회화가 풍경화임을 인정하게 된다. (도판3) 익숙하다. 기시감이 든다. 짙은 초록과 무채색의 색들은 낯설지 않다. 그 사이의 여백은 물이 흘러가는 강을 연상시킨다. 한국 근현대 산수화가 떠오른다. 물의 소리가 들리고 바람 결이 스친다. 서정적이다. 낮은 음으로 이어지는 단조의 선율 같기도 하다. ‘처음 소리’  ‘Primordial Sound’. 원시의 최초의 소리라는 뜻이다. 라인간츠의 뿌옇게 흐려졌다 드러나는 색채와 형상들이 제목과 어우러진다. 처음에는 각자 따로 존재하던 작품과 비엔날레의 주제의 관계가 마침내 연결된다. 마리나 라인간츠의 작업은 설치와 영상이 주를 이루는 비엔날레 작품들 사이에서 공명한다. 오롯하게 빛을 발하며. 

“우리는 회화를 매개로 그 작품을 그린 작가와 같은 공간에 들어간다” 영국 출신의 미술 평론가 마틴 게이퍼드의 말이다.2)  공간과 기억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마리나 라인간츠의 회화는 바라보는 자의 경험을 일깨운다. 새롭고 낯설게, 때로는 익숙하게. 풍경을 재설정하며.  



ㅡㅡㅡㅡㅡ



- 우진영 (1983- )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한국 근현대미술 연구. 제주도립미술관, 장욱진미술관을 거쳐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근무.



1) 마리나 라인간츠는 1983년 생으로 브라질 출신의 작가다.  주변의 풍경과 개인적인 기억을 추상적으로 재해석하는 회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 개인전으로 《조수(Maré)》, 화이트 큐브 메이슨스 야드(White Cube Mason’s Yard), 런던, 영국 (2023); 《침전물(Sedimentar)》, 포르테 달로이아 & 가브리엘(Fortes D’Aloia & Gabriel), 상파울로, 브라질 (2022); 《마리나 라인간츠(Marina Rheingantz)》, 프락 오베르뉴(FRAC Auvergne), 클레르몽페랑, 프랑스 (2021) 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프랑스; 피노 컬렉션(Pinault Collection), 프랑스; 이뇨칭 미술관(Instituto Inhotim), 브라질; 세할베스 미술관(Museu Serralves), 포르투갈; 보르린덴 미술관(Museum Voorlinden), 네덜란드; 피나코테카(Pinacoteca do Estado de São Paulo), 브라질; 타구치 아트 컬렉션(Taguchi Art Collection), 일본; 마이애미 현대 미술관(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Maiami) 등에 공공 컬렉션으로 소장 중이다. 2024 광주비엔날레 공식 팸플릿 참조. 
(작가 인스타그램 @mrheingantz , 작가에 대한 소개, 화이트큐브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2) 마틴 게이퍼드,  『예술과 풍경』, 을유문화사, 2021, p. 98. 




<소리의 초상>, 2024, 캔버스에 유채, 190×250cm




<팡파르>, 2022, 리넨에 유채, 130×110cm 




<우루밤바>, 2024, 캔버스에 유채, 190×250cm.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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