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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의, 사원에 의한, 사원을 위한 예술품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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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정재숙 선임기자

이건그룹 로비 조형물 ‘희망의 프리즘’

“형편이 어렵다고 예술단체들이 툭하면 기업에 지원을 요청하던 때는 지났습니다. 우리는 배고픈 예술을 하니 돈 잘 버는 당신들이 후원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도 이제는 재고해야지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상호 부조의 도리’랄까요. 경제와 문화가 만나 양쪽 모두가 도움을 받는 예술창조의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김달진(55)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은 기자와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인천까지 가는 한 시간 남짓 내내 ‘보람’ ‘기쁨’ ‘놀람’ ‘새로움’이란 말을 여러 차례 썼다. 인천 남구 도화동 967-3번지 이건그룹 사옥으로 가는 길은 꽤 멀었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니 전국에서 일부러 오는 구경꾼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가 빈말이 아니었다. 이건그룹 본관 로비에 들어선 조형물 ‘희망의 프리즘’이 그 주인공이다. 그룹 관계사인 이건환경의 박성식 상무는 “방문객들이 ‘희망의 프리즘’을 보고 나서 이건을 다시 평가하게 됐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 “우리 손으로 예술품을 만들었어요”

‘희망의 프리즘’은 지난해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과 이건그룹의 계열사 이건환경이 ‘매칭펀드 프로그램’ 교류협력 파트너로 손잡으면서 씨를 뿌렸다. 김 관장은 환경미술가 임옥상(60·임옥상미술연구소장)씨를 초청해 이건 직원들과 맺어줬다. 이건 사옥과 공장을 둘러본 임 소장은 이건의 업(業)이 목재 생산업체라는 점에서 출발했다. 합판과 창호가 주력 생산품이기에 제작할 조형물의 소재는 자연스레 목재로 정했다. 공장은 로비와 연결돼 있었고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일상 모습을 주제로 삼기로 했다.

“사무실 공간과 생산라인이 한 동선에 있는 게 참신해 보였습니다.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뻥 뚫린 사무실, 바로 옆에 통 유리판으로 내려다보이는 공장이 이 회사의 성장과 활력의 힘인 걸 깨달았죠. 그래서 함께 일하며 함께 나눈다는 사원들의 일심동체가 이 회사를 대표하는 조형물에 담기면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디자인만 제가 했지 이 작품의 주체는 이건 사람들인 셈입니다.”

임 소장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이건 사원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남녀 5명의 인체상으로 스케치했다. 남성과 여성, 사무직과 엔지니어·청소부까지, 이건을 이루는 다양한 사람이 두루 등장했다. 임 소장은 합판 300장을 가지고 60개씩 붙여 레이저로 깎아낸 뒤 입체감 나게 붙여 세운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켜켜로 얇은 합판을 쌓아가면 뚫린 그림 사이로 빛이 투과돼 입체적인 장면을 연출한다는 설명도 붙였다.

작업은 이건의 2008년 입사 동기 생산·사무직 13명이 달라붙어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진행했다. 작가의 예상과 달리 합판의 무게가 상당해 지지해 주는 받침대 설계를 거듭 수정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작은 사고도 있었다. 처음에는 과외 일이라고 입이 튀어나왔던 직원 13명은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기쁨에 신이 났다. 아이디어를 보태고 노련한 기술을 발휘해 작가를 놀라게 했다. 예정 시간을 넘겨 새벽 2시에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 모두들 입을 맞춘 듯 “우리 손으로 예술품을 만들었다”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 "올해 대박 냅시다, 아자~”

“지난달 24일 작품을 선보이던 날, 전 직원에게 합판 사이사이에 새해 희망을 적은 메시지를 끼워 넣자고 했어요. ‘장가가고 싶다’ ‘돈 많이 벌자’ ‘가족 모두가 건강하길’ 같은 개인적 소망이 많았지만 ‘올해 대박 냅시다, 아자~’처럼 회사의 발전을 기원하는 메시지도 여럿 나왔어요. 예술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는 뿌듯함에 애사심이 절로 솟아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영신 과장은 “‘희망의 프리즘’은 이건 식구들에게 말 그대로 희망을 주는 상징물”이 됐다고 했다.

희망 메시지는 이건 사옥을 찾는 손님들도 써서 끼워 넣도록 했다. “방문객들이 색다른 체험을 하면서 이건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효과가 크다”는 설명.

김달진 관장은 “박물관 울타리 안에서 전시·연구를 해 왔지만 지역사회나 근로자들의 문제를 예술창조의 과정에 끌어들여 고민해 보는 값진 경험이었다”고 했다. 박 상무는 “이건그룹의 새해 희망이 ‘사람’임을 보여주는 구심점이기에 소중하다. 어떤 유명 작가의 값비싼 작품에 견주어도 ‘희망의 프리즘’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예술지원 매칭펀드(Matching fund)=기업과 예술의 활발한 만남을 유도하기 위해 한국메세나협의회 등이 마련한 제도. 기업체가 재정이 어려운 예술단체에 후원금을 보내면 그만큼의 지원금을 정부가 더 보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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